자동으로 프리랜서가 되

제가 택한 건 방송작가였는데요, 프리랜서가 됐습니다.

by 그웬

“프리랜서야? 너무 좋겠다.”

프리랜서라고 말할 때마다 ‘좋겠다’라는 말을 듣는다. 도대체 뭐가 좋겠다는 걸까? 사람들의 인식 속에서 프리랜서는 아무래도 자유로움(상사도 없어, 출퇴근 시간도 없어, 하고 싶은 일만 해, 일하고 싶을 때 일해, 휴가도 자유롭게 잡아) 그 자체의 고용 형태인 듯한데 현실의 프리랜서는 전혀 다르다. 상사는 당연히 있다. 아니, 오히려 상사면 낫지. 상사가 아니라 갑이 존재한다. 프로젝트 혹은 나 같은 방송작가라면 프로그램에 ‘고용’되는 입장이니 갑이 있고 나는 철저하게 을이 된다. 출퇴근 시간? 없다. 대신 아무 때나 일한다. 말 그대로 아무 때나. 믿기지 않겠지만 정말 아무 때나 일한다.(밤에도 아침에도 새벽에도) 방송작가를 시작한 뒤 6개월 동안은 영화를 보러 가지 못했다. 혹시라도 오는 연락을 받지 못할까 봐.


당연하지만, 하고 싶은 일만 하지도 않는다. 아니, 하고 싶은 일만 할 수가 없다. 프리랜서는 언제 일이 끊길지 모르기 때문에 일단 들어오는 일은 다 해야 한다. 특히 프리랜서들에게는 암묵적인 룰이 존재하는데 두 번의 거절은 하지 않는다는 거다. 정말 바쁘고 여유가 없을 때 한 번의 거절은 가능하지만, 두 번째 제안이 들어오면 신중에 신중을 기한 뒤에 받는다. 이유는 2번의 거절 뒤에 3번째 제안이 올 확률이 거의 0%에 가깝기 때문이다. 이 말은 곧 일하고 싶지 않을 때도 일해야 하며 휴가 따위는 잡을 수도 없다는 뜻이 된다.


프리랜서가 직장인보다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다는 건 맞지만, 대신 프리랜서란 아무 때나 일하는 종족이라는 걸 업계 사람들 모두가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휴가를 잡아봤자 그곳이 어디든, 그때가 언제든 일을 해야만 한다. 사실상 휴가라는 개념 자체가 없다. 디지털 노매드라는 개념이 유행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콧방귀를 뀌었다. 디지털 노매드란 세게 말해서 디지털 노예라는 뜻이다. 어디든 디지털 세계에 접속할 수 있다면 ‘노예야, 일을 하거라!’.


프리랜서의 좋은 점은 ‘겸업 가능’ 정도인데 사실상 장점이라고 보기 어렵다. 도대체 누가 일을 많이 여러 개 하고 싶겠습니까! 게다가 4대 보험도 되지 않고 퇴직금도 없는 프리랜서가 수지타산을 맞추려면 적어도 2개 이상의 일을 해야만 한다. 아니면 건강보험료, 국민연금, 셀프 퇴직금으로 돈이 깎이고 깎여서 남는 게 없으니까! 그렇다면 결론은 프리랜서란, 시도 때도 없이 아무 때나 어디서든 일을 많이 하는 사람이다. 슬프게도 이게 프리랜서의 현실이다. 그렇다면 이런 프리랜서를 왜 택했느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생기는데 놀랍게도 난 프리랜서를 택한 적이 없다. 우연한 기회로 방송작가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업계에 들어와 보니 방송작가는 전부 프리랜서로 계약하는 게 관행이었기에 프리랜서가 됐을 뿐이다.


즉, 프리랜서를 택한 적이 없는데요, 프리랜서가 됐습니다. 혹은 제가 택한 건 방송작가였는데요, 프리랜서가 됐습니다. 이게 맞는 말이다. 이쯤 되면 ‘이 사람, 프리랜서의 현실을 까발리려고 왔나봐'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뭐, 별로 그럴 생각은 없다. 울분에 차 '프리랜서의 삶에 대해 고발하리라!' 보다는 크리에이터가 많아지면서 나의 고통과 번뇌에 공감해 줄 프리랜서들이 많아졌고 또, (안타깝게도) 프리랜서를 꿈꾸는 사람들이 많아졌기에 프리랜서의 삶에 대해 알리고 같이 슬픔을 나눠보기 위해 메모장을 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