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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귀복 Nov 27. 2023

04. 천재작가, 출간 계약의 비밀

무명작가 에세이 출간기

천재작가는 완성도 높은 원고를 위해 지갑을 탈탈 턴다.


매일 아침, 미각을 자극하는 사내 커피숍의 원두를 포기하고 카누를 뜯는다. 글을 읽으며 미소 지을 독자를 생각하며, 감미롭고 우아한 아침을 미련 없이 포기한다. 첫 문장부터 깊이 빠져드는 원고를 완성하기 위해 긴축재정에 들어간다. 절약한 돈은 초고의 질을 높이는 데 사용한다. 물론 수강료는 아니다. 글은 독학으로 배운다. 좋은 책을 읽다 보면 영감이 막 떠오른다. 문장이 “반가워” 하며 신이 나서 달려온다.


도서관에 가면 서가에 책이 한가득이다.”


돈을 쓰면서까지 작문을 배울 필요가 없다. 믿지 못하겠는가? 한 달에 10권씩, 딱 2년만 읽어봐라. 자음과 모음이 손 잡고 와서 ‘똑똑’ 하고 두드린다. 시도 때도 없이 같이 놀자고 한다. 한 달에 20권씩 읽으면 1년으로 앞당길 수 있다. 일단 한번 해봐라. 해봤는데 안 되면 당신은 글을 쓸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책에서 영감을 얻지 못하는데 책을 쓰겠다?’, ‘매운 음식은 먹지 못하지만, 맛있는 엽떡을 만들어서 대박 날 거야!’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망하는 지름길이다. 일찌감치 포기해라. 얼른 돌아가서 <에피소드 01. 천재작가의 탄생>부터 다시 읽어라. 마지막 문장에 진리가 있다.




“천재작가는 향긋한 오전을 과감히 포기하고 용돈을 모은다.”

아침마다 하얀 종이컵에 들어간 카누가 만들어 낸 돈이 어디에 사용되는지 궁금한가? 이번에는 4초 광고 후에 알려주겠다. “천. 재. 작. 가.” 바로 유료 독자들 구독료 지급에 사용한다. 글을 써서 돈을 버는 게 아니라, 돈을 쓰면서 글을 읽게 만든다. 실망했는가? 어쩔 수 없다. 냉정한 현실이다. 초고의 반응을 살핀 뒤, 퇴고 진행 여부를 결정하는 게 가성비가 좋다. 대형 참사를 사전에 예방하는 격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금보다 더 귀한 시간을 아낄 수 있는 합리적인 행위다. 이 관점에서 생각하면 쓰는 돈이 전혀 아깝지 않다.

“천재작가는 초고를 완성하자마자 하이에나로 돌변한다.”

초고에 마침표를 찍고 나면, 가장 먼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적당한 사냥감을 물색한다. 주로 점심식사를 함께한 동료 직원이 첫 타깃이다. 커피를 사준다고 유혹해서 한적한 곳으로 끌고 간 뒤, 억지로 글을 읽게 만든다. “싫은데요?”라며 거부 의사를 밝혀도 소용없다. 당당히 “그 커피 누가 샀지?”라고 질문을 던지면, 답 대신 묵묵히 글을 읽는다. 첫 번째 독자가 ‘피식’ 웃으면 합격이다. 이제야 마음이 조금 놓인다. 1차 검열이 끝나면 천재작가 담당 편집자에게 카톡을 보낸다. 30대 중반의 미혼 여성으로 초고 확인을 담당한다. 다행히 나와 부모가 같아서 따로 돈이 들지는 않는다. 하나뿐인 여동생은 오빠와는 성향이 많이 다르다. 하루도 쉬지 않고 음주가무를 즐기느라 늘 바쁘다. 매일 반복되는 숙취와의 전쟁으로 인해 독서할 시간이 없다. 자연스레 2차 검열은 1년에 책을 1권도 읽지 않는 ‘비독서인’ 여동생이 담당한다. 통과 난이도가 ‘상’이다. 1차에 이어 2차까지 ‘오케이’ 사인을 받고 나면 자신감이 확 붙는다. 오빠에게 독설을 아무렇지 않게 날리는 여동생이 재밌다고 하면 진짜 재밌는 거다. 흐뭇함도 잠시, 이제는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마지막 과정만이 남는다.

“천재작가에게는 특별한 파트너가 한 명 있다.”

30대 후반의 기혼 여성이다. 자존감이 높고, 취미로는 발레를 즐긴다. 전직 ‘문학소녀’ 답게 초등학생 때부터 꾸준히 다독을 실천하고 있다. 특히, 영어영문학과 재학 시절에는 문학작품을 많이 읽었다. 에세이를 출간하는데 이 여성의 공이 가장 컸다. 공로를 인정하여 공무 중에는 ‘편집장님’이라고 호칭한다. 10년 전부터 그녀와 동거를 시작해서, 지금은 슬하에 6살 딸이 한 명 있다. 베스트셀러 작가를 꿈꾸는 나의 바람과는 다르게, 아내는 내가 글쓰기를 취미로만 간직하길 바란다. 매일 피곤하다면서 눈이 벌게진 채 전투적으로 글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함께 사는 배우자 입장에서는 속이 터지는 게 당연하다. 유치원생 딸아이도 “아빠 그만하고 나랑 놀자”를 녹음기처럼 반복하며 아내의 편을 든다. 베스트셀러 작가가 코앞인데 모녀의 지원이 시큰둥하다. 기운이 쏙 빠진다. 부족한 에너지는 진통제를 삼키며 보충한다. 아쉬워도 어쩔 수 없다. 써놓은 원고가 있으니 내가 ‘을(乙)’이다. 아내의 의견을 듣기 위해 자존심을 잠시 버려두고 자세를 최대한 낮춘다.

“천재작가는 지혜의 여신 ‘아테나’를 만나러 간다.”

귀가 전, 자존심을 현관문 밖에 잠시 보관하고 집 안으로 들어간다. 마지막 검열을 진행하기 위해서다. 3차 관문은 통과보다 시작이 더 어렵다. 도도한 편집장은 여동생처럼 쉽게 글을 읽어주지 않는다. 기분이 좋을 때나 여유가 넘칠 때만 제안을 수용한다. 그마저도 하루에 딱 한 편만 가능하다. 능력이 뛰어나고 대체자가 없으니 ‘을(乙)’이 맞춘다. 더욱이 아내는 그 누구보다 냉정하게 내 글을 고 판단하는 사람이다. 좋은 글에는 눈물을 보이고, 어처구니없는 글에는 헛웃음을 짓는다. “일기 쓴 거지?”라는 독설(?)도 서슴지 않는다. 피드백이 확실하다. 좋은 기회를 놓칠 수 없으니 눈치를 살피며 때를 기다린다. 마지막 관문답게 통과 난이도도 ‘최상’이다. 주변 사람들은 다 재밌다고 하는데, 가장 가까운 ‘0촌’ 편집장이 시큰둥할 때가 있다. “이런 글 쓸 시간 있으면 차라리 잠이나 더 자”라는 말을 서슴없이 하며 가슴을 후빈다.

“서운함은 종종 부부싸움으로 이어진다.”

애정 어린 조언임을 알지만 듣고 견디는 게 생각보다 버겁다. 작가가 되는 길은 역시나 멀고도 험하다. 원고를 빨리 정리하고 싶은 욕심에 무리해서 퇴고를 진행하다 여러 번 봉변을 당했다. 출판사에 투고한 원고가 거절당한 뒤, 편집장이 고개를 갸우뚱했던 여섯 편을 싹 다 지우고 다시 썼다. 수정 이후 거짓말처럼 원고가 채택되어 출판계약서에 서명을 남겼다. 지나고 나서 보니 남편의 꿈을 이루는데 아내의 지분이 가장 컸다. 다시없을 귀인이고, 천생연분이다. 특별한 공로를 인정하여 호칭을 ‘편집장’에서 ‘여신’으로 승격했다. 이제는 초고 검토를 부탁할 때 공손하게 ‘아테나님’이라고 부른다.




‘천재작가’ 브런치 초고 역시 아내의 반대가 심했다. 오만방자한 문체를 수없이 지적받았다. 억울함도 잠시, 과거를 떠올리니 고민이 늘어난다. 아내 의견이 틀린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초고에 숨결을 불어넣어 출간의 기적을 완성한 ‘지혜의 여신’이다. 그녀의 말을 무시할 수는 없다. 믿지 못하겠지만 천재작가가 출판사에 투고한 원고는 핫팩처럼 온기가 가득하다. 중간중간 독자의 눈물샘도 자극한다. 천재작가 콘셉트와 색깔이 완전히 다르다. 아내는 내가 왜 격이 떨어지는 글을 쓰고 싶어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나는 그런 아내를 이해하지 못한다. 좋은 글도 읽혀야 보배다. ‘동상이몽(同牀異夢)’이다. 속상함을 간직하고 삼일 밤낮을 고민하다 보니, 결국 ‘이거다’ 하는 답이 나온다.

“천재작가의 필명은 이렇게 탄생한다.”

아내 말대로 고마운 출판사에 누를 끼칠 수는 없다. 본명이 아닌 필명으로 활동하며 반응을 살피기로 한다. 필명에는 ‘천 번을 쓰고 지우며 재미있는 문장을 완성하는 작가’라는 설명을 붙여 겸손함을 더하고, 화룡점정(畵龍點睛)을 찍는다. 바로 ‘페르소나’다. <에피소드 00. 프롤로그 : 시급 천 원, 천재작가>의 첫 문단은 이렇게 세상에 나왔다. 비빔밥에 참기름 같은 존재로 역할을 잘 한 듯하다. 겸손한 시작이 없었다면 지금과 같은 성과도 없었다.

“크고 작은 서점들의 부도 소식이 이어진다.”

사람들이 점점 더 책을 안 읽는다. 이러한 시대 흐름 속에서, 글을 써서 타인의 감정을 건드리고 커다란 울림을 주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나의 글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지는 않을지, 전후사정을 모르고 읽어도 재미있을지, 더 나은 결론은 없을지 등 초고를 다방면으로 검토하며 객관적으로 살펴보아야 한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겠지만, 글에서 방향은 노력만큼 중요하다. 잘못된 길로 들어섰을 때 “거기 아니야”라고 말해줄 사람은 반드시 필요하다.


“삼일 전에 있었던 일이다.


퇴근 후 딸아이가 좋아하는 고등어를 굽다가 손목에 기름이 튀었다. ‘악~’, 퇴고보다 더한 고통이 ‘통각(痛覺)’을 순식간에 지배한다. 고통과 흉터를 최소화하기 위해 아이스팩을 가져다 대도 소용없다. 하지만 뜨거운 기름도 작가의 열정을 이기지는 못한다. 아픈 와중에도 머릿속은 원통 원고 생각뿐이다. 지금 얼음찜질이 중요한 게 아니다. 눈치를 살피며 묵묵히 식사를 마친 뒤, 아내에게 조심스레 말을 꺼낸다.

“아테나님, 설거지 내가 할게 글 좀 봐줄 수 있어?”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다. 아내도 흔쾌히 수용한다. 그렇게 이 글은 탄생했다. 당신은 지금 1cm 흉터와 맞바꾼 소중한 글을 읽고 있다. 짠 한가? ‘♡’는 후0딘이 되어 상처 치유를 돕는다. 잊지 말고 누르길 바란다. 물론 ‘댓글’까지 더해지면 더 좋다.




“작가 가슴에 상처를 남길 수 있는 파트너를 찾아라.”

벌써 여럿 있다면 크게 기뻐하라. 당신은 행운아가 분명하다. 자존심을 버리고, 물질로 끊임없이 유혹하며 그 사람을 단단히 붙잡아 두어라. 작가가 되는 지름길이다. 지혜의 여신 ‘아테나’가 입김을 불어넣어 천재작가의 글은 비로소 생명을 얻었다. 그만큼 타인의 시선이 중요하다. 만약 독설을 아끼지 않는 사람이 주변에 없다면 얼른 지갑부터 열어라. 설거지와 청소, 빨래, 회사 업무를 자청하며 기회를 얻어라. 많은 사람의 눈이 초고를 거칠수록 원고의 완성도는 더 높아진다. 거칠고 투박한 원석이 빛나는 다이아몬드가 되어 반짝반짝 빛난다.

“꿈을 이루는데 그깟 자존심이 대수인가? 초고를 완성하고 나면 당장 부엌에 달려가서 고무장갑부터 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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