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카카오 생각보다 의리가 있다. 천재작가 신간이 지금까지 계속 베스트셀러다. 2월 26일 출간 이후 무려 25일 연속이다. '다음 책 운영진'에게 고개 숙여 감사 인사를 전하며, 오늘 이야기를 시작한다.
[2023년 8월 25일, 금요일 오전]
"두근두근. 오늘은 출판사에 인사를 가는 날이다."
이메일로 출간 계약을 진행한 뒤, 2주 만의 첫 만남이다. 퇴근 후 음주는 가능하지만 식사는 허락하지 않는 대표님 때문이다. 워라밸을 중시하는 출판사 직원들을 배려하여, 오전 반차를 내고 은평구에 위치한 사무실 문을 두드린다.
"똑. 똑. 똑."
걱정도 잠시, 인상 좋으신 남성 출판사 대표님과 여성 편집 주간님이 반갑게 맞아 주신다. 두 분 모두 60대로 추정된다. 준비해 간 와인을 전달하니 대표님이 살짝 미소를 보인다. 선물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믿지 못하겠지만 천재작가는 내향인이라 이런 자리를 극도로 싫어한다. 계약서 상에는 갑이지만 현실이 을이니 어쩔 수 없이 도리를 다할 뿐이다.
"어색한 분위기를 깨기 위해 준비해 간 비장의 카드를 꺼내든다."
자리에 앉자마자 <한 평 반의 행복>이라는 책을 입에 침이 마르고 닳도록 칭찬하고 또 칭찬한다. 온몸을 들썩이며 과하게 설렘을 표현하니, 의자에 앉아 있는 대표님의 몸이 뒤로 살짝 젖혀지면서 치아가 밖으로 드러난다. "뿌. 듯. 함." 세 글자가 이마 위에 흐릿하게 적힌다. 성공이다. 이 책이 무슨 책이냐고? '도서출판 지성사' 모바일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상단에 배경으로 있는 책이다. 대표님이 자부심을 갖고 만든 책이 분명하다. 방문 전에 사서 읽은 뒤 책의 부피와 질감, 서체와 디자인까지 모든 부분에 대해 랩을 하듯 폭풍 칭찬을 쏟아낸다. 문장을 콕 집어 눈물을 뚝뚝 흘린 부분까지 말씀드리니, 분위기가 확 달라진다. 예상 적중이다. 16년 직장 생활이 만들어 준 눈치 덕분에 최소 투자로 최대 효과를 얻는다.
"마음이 활짝 열린 대표님이 딸이 읽을 동물도감 책을 선물로 주신다."
출판사 직인을 찍어 건네는 투박한 손길에서 정이 한가득 느껴진다. 유치원생 딸아이가 거실에서 TV를 보지 않고, 책을 읽는다는 사실을 들으신 후에는 신이 나서 책을 세 권이나 더 꺼내 오신다. 쇼핑백에 펭귄 피규어와 동물 스티커도 잔뜩 담아 주신다. 책을 이토록 사랑하는 출판인과 함께 출간을 준비한다는 사실이 꿈만 같이 느껴진다. 더욱이 <한 평 반의 행복>은 평생 소장이 가능한 높은 퀄리티로 만들어진 책이다. 기대감이 잔뜩 더해지기에 충분한 조건이다. 텁텁한 사무실 공기가 금세 달짝지근하게 바뀐다.
"상호 간의 인사가 끝나고 본격적인 대화가 시작된다."
대표님이 허허 웃으며 "요즘 에세이 안 팔려요. 작가님 지인들만 사서 읽으시죠"라고 말씀하신다. 당연히 농담이라 생각한다. '팔리지도 않을 책을 왜 만드시지?'라는 의구심을 품고 대화를 이어간다. 그런데 대화를 하면 할수록 진담인 게 느껴진다. 출판사 소개에서 봤던 글들이 머릿속에서 퍼즐로 맞춰지기 시작한다. 그렇다. 이 남성은 사람 사는 따뜻한 이야기로는 출판사 운영이 어려워, 원하는 일을 뒤로하고 30년 넘게 자연과학도서를 중심으로 출간해 온 것이다. 그러다 3년 전부터 금전적 손해를 감수하고, '또 다른 일상 이야기' 시리즈 물을 출간하는 듯하다. 어떻게 아냐고? 구입한 이전 시리즈 7권이 전부다 1쇄기 때문이다. 2쇄를 찍지 못했다는 것은 제작사의 적자를 의미한다. 이는 기본 상식이다.
"나를 믿고 계약해 준 출판사에 손해를 끼칠 수는 없다."
전래동화를 보면 제비와 두꺼비도 은혜를 갚는다. 나는 사람이다. 보답해야 한다. 사명감으로 머리를 굴려 보지만 무명작가가 책을 홍보하기 위해 할 수 있는 게 딱히 없다. 고민 끝에 브런치에 뛰어든다. 따스한 글을 올리니 라이킷이 수십 개씩 달리고 구독자가 서서히 늘어난다. 한 달간 8개의 글을 올려 구독자 80명을 얻는다. 달린 댓글은 총합 6개다. 발전은 있지만 속도가 너무 더디다. 이 페이스로는 출간까지 구독자 500명도 힘들 듯하다. 좌절이다. 전략을 수정하여 천재작가라는 페르소나를 쓴다. 썼던 모든 글을 내리고, 브런치 작가들이 관심 있어하는 '출간'을 주제로 선정해서 자극적인 글을 올리기로 한다.
"헉! 그런데 아내의 반대가 심하다."
왜 갑자기 깊이 없는 글을 쓰냐고 막 뭐라고 한다. 읽어 달라고 사정해도 잘 안 읽어 준다. 오만방자한 글은 읽기 싫다고 딱 잘라 거절한다. 목표한 바가 있으니 쉽게 포기할 수는 없다. 식사 후 고무장갑을 끼고 설득을 거듭한다. 독자들의 반응을 보고 지속 여부를 결정하기로 협의하고 간신히 글을 올린다. 다행히 첫 글 발행에 대한 결과가 만족스럽다. 제목으로 시선을 사로잡고 첫 문장에서 몰입을 유도하는 데 성공해서 구독자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한다. 글 하나당 구독자 100명이 늘어난다. 물이 들어올 때 노를 저어야 한다. 분위기를 이어가기 위해 하루 3시간 독서를 포기하고, 부지런히 이웃님들을 방문하며 눈도장을 남긴다.
"브런치에는 댓글 수 제한이 있다."
쉴 틈 없이 댓글을 남기다 보면 더 이상 댓글을 쓸 수 없다고 나온다. 아마도 광고를 못하게 막은 듯하다. 댓글 제한이 걸릴 때까지 댓글을 남기고, 댓글이 막히면 아쉬운 대로 '라이킷'을 누른다. 그렇게 100일이 흘렀고, 천재작가의 책이 세상에 나왔다. 여기서부터는 당신이 아는 그대로다. 출간과 동시에 베스트셀러에 선정되는 영광을 얻었다. 지금은 달리기를 잠시 멈추고, 2쇄를 향해 서서히 걸어가는 중이다.
"적자를 감수하는 출판인을 생각할 때면 한 남성이 떠오른다."
그의 직업은 배우다. 그것도 아주 잘 생긴, 전 국민이 인정하는 외모를 가진 멋쟁이다. 이 남성은 시간이 날 때마다 영화관을 찾는다. 독립영화, 상업영화 가리지 않고 다 본다. 심지어 영화 촬영 중간에도 시간이 나면 영화관을 찾는다. 왜인 줄 아는가? 영화배우도 안 보는 영화를 일반인들이 봐주길 바라는 건 욕심인 줄 알기 때문이다. 당신은 어떤가? 작가가 되고 싶은 만큼 충분히 책을 읽고 있는가? 더 나아가 책은 충분히 사고 있는지 묻고 싶다.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이 모두 'Yes'라면 당신은 작가가 될 자격이 충분하다. 축하의 박수는 미리 보낸다. 짝! 짝! 짝!
"대한민국 성인 연평균 독서량 4.5권."
출판시장이 어렵다. IMF시절 보다 더하다. 무명작가가 기획출판을 진행하기는 점점 더 힘겨워진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간단하다. 많이 읽고, 많이 사서 출판시장을 키워야 한다. 그래야 희망도 커진다. 먹고살기도 힘들다고? 걱정하지 마라. 방법이 다 있다. 도서관을 이용하면 된다. 희망도서 신청을 통해 출판시장을 키우자. 투고하고 싶은 출판사의 책을 신청해서 판권 페이지를 보고 이메일을 기록하자. 예비작가에게 투고 연락처는 군인에게 총알이나 마찬가지다. 다다익선이다. 의지할 게 있어야 희망이 꺾이지 않는다. 물론 읽으면 더 좋다.
"희망도서 신청은 1석 3조의 합리적인 행위다."
출판시장도 살리고, 투고 연락처도 수집하고, 자신감까지 더해진다. 아니 작가님, 이 정도 노력도 하기 싫다고요? 정신 차려라. 당신은 한강이나 김훈이 아니다. 당신의 이름은 가족과 지인들만 알고 있다. 세상은 당신에게 쉽게 이름을 허락하지 않는다. 무명작가라 부른다. 현실을 받아들이고 착실히 투자하길 바란다.
"천재작가는 마음은 정우성이다."
직장 내 도서관을 이용해서희망도서 신청을수시로한다. 부족한 월급에 대한 소심한 복수(?)로 끊임없이 신청한다. 지난 1년간 신청한 종이책이 84권이고, 전자책이 40권이다. 지역 도서관과 노조 사무실, 직접 구입한 책들은 제외다. 글은 팩트가 생명이니 신청 현황을 공개한다. 참고로 지성사의 책은 21권 신청했다.
종이책 신청 현황 (모두 브런치 작가님들 책이다)
전자책 신청 현황 (1권 빼고 전부 브런치 작가님들 책이다)
오랜만에 실습이다. 지역 도서관 홈페이지에 접속해서 천재작가의 신간 <나는 행복을 촬영하는 방사선사입니다>를 희망도서로 신청해 보자. 5분이면 충분하다. 광고 아니냐고? 맞다. 그러나 이 행위는 당신의 미래를 위한 투자이기도 하다. 1석 2조, 아름다운 행동에 적극적인 참여를 바라며 오늘 이야기를 마친다.
# 작가의 말
작가님은 매우 높은 확률로 다시 태어나도 정우성의 외모는 갖지 못한다. 그러니 아쉬운 대로 태도라도 가져보자. 출판시장의 밝은 미래에 작게나마 기여하자. 수시로 책을 읽고 자주 사다 보면, 무명작가가 출판계약서에 이름을 남길 가능성도 그만큼 더 높아진다.
"아니 작가님, 나는 여자라 해당이 없다고요?"
그럴 줄 알고 여배우의 사례도 준비했다. 작가님은 아주 높은 확률로 다시 태어나도 김혜수의 외모를 갖지는 못한다. 그러나 이승에서 무명배우들을 응원하는 모습은 충분히 따라 할 수 있다. 작은 출판사, 무명작가의 책들을 꾸준히 읽고 구입하다 보면 분명 좋은 소식이 따른다. 출판계를 생각하는 작가님의 모습이 내게는김혜수 보다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
"헐! 저는 이미 신청했는데요?"
작가님은 미인이 분명하다. 주변을 밝히는 빛이 화면을 뚫고 이곳까지 전해진다. 이제부터 화장은 필수가 아니라 옵션이다. 생얼로 자신감 있게 거리를 활보해도 좋다. 영혼이 아름다운 작가님을 만나면 꼭예쁘다고 말해 줄 것을 약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