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몬태나

이 시대 우리의 모습과 닮은 서부 영화

by 원일

영화 <몬태나>의 원제는 <Hostiles>(적대자들)이다. 서로 증오할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 모여 <몬태나>라는 공통의 행선지로 여행을 떠나는 영화이다.


Hostiles-DI-1.jpg


19세기 말 미국 뉴멕시코, 주인공 조셉 블락커(크리스천 베일) 대위는 미국의 원주민들을 잡아 가두는 것을 천직으로 생각하는 군인이다. 조셉은 자신의 부하들을 사랑하고 여성들에게 공손하지만 원주민을 잡아 오거나 심지어 죽이는 것에 대해서는 윤리적인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 전역을 앞둔 그에게 내려진 마지막 임무는 원주민을 호송하는 일이다. 원주민의 인권을 보호해야 한다는 국내 여론때문에 대통령은 원주민 보호구역에 수감되어 있던 아파치 족의 추장 엘로우 호크를 그의 고향인 몬태나로 석방하라고 명령하고, 엘로우 호크를 몬태나까지 안전하게 호송해야 할 책임자로 조셉이 선정된다. 서로 증오하던 조셉과 옐로우 호크는 원하지 않은 동행을 하게 되고, 도중 원주민들에게 가족을 학살당한 퀘이드 부인(로자먼드 파이크)과 원주민을 죽인 죄로 재판을 받아야만 하는 찰스 윌슨 병장도 이 여정에 합류한다. 서로 증오할 수 밖에 없던 적대자들이 모여 같은 행선지로 함께 여행을 떠나야만 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될 것인가?


Hostiles-(2017)-1-Full.jpg


우리는 우리와 다른 것을 싫어한다. 우리와 다르게 생긴 사람을 싫어하고 우리와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미워한다. 싫어한다는 표현은 충분하지 않다. 혐오하고 증오한다. 다양한 생각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은 그냥 구호일 뿐이다. 2016년 겨울, 자신이 촛불을 들었었다면 태극기를 들었던 사람들이 얼마나 싫었는지, 태극기를 들었다면 촛불을 든 사람들이 얼마나 미웠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만 봐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를 단지 인격의 미성숙함으로 탓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낯선 것을 경계하고 싫어하는 것은 인류의 오래된 습관이고, 생존과 관련된 본능이기도 하다.


hostiles-2017-003-wes-studi-christian-bale-canyon.jpg


문명 시대 이전의 우리의 조상들은 우리의 포식자들과 생사를 걸고 싸웠다. 문명 시대 이후에도 생김새와 문화가 다른 인종들과 전쟁을 했다. 생전 처음 보는 짐승이나 인종이 우리의 친구인지 적인지 알 수 없을 경우 일단 적으로 간주하고 먼저 공격하는 행동이 우리의 생존 확률을 높여주었다. 좋아하는 것보다 싫어하는 것이 공격하기 편하다. 더 많이 싫어할 수록 생존에 유리했고, 우리는 모두 그렇게 싸워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후손들이다. 다른 것을 미워하도록 프로그래밍된 유전자는 아직 우리 몸속에 남아있다.


hostiles-native-americans.jpg


이처럼 우리는 다른 것을 미워하는 반면, 우리와 같은 것에 대해서는 이타심을 발휘하기도 한다. 인간들이 자신보다 훨씬 강한 포식자에 대항해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서로 협력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협력을 해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후손이기도 하다. 서로 증오하던 백인과 원주민은 서로에게서 동질성을 발견하는 순간 협력을 하는 관계로 진화한다.


383ab5bca0e076f70289929ec080306c.png


<몬태나>는 상업적으로 그다지 성공하지 못한 영화이고, 비평가들도 호불호도 많이 갈린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장르의 영화도 아니기 때문에 크리스천 베일과 로자먼드 파이크가 출연하지 않았다면 이 영화를 볼 일은 없었을 것이다. 백인 주연과 원주민 조연이 공동의 목적지로 여행을 하면서 우정을 쌓아가고 공동의 시련을 합심하여 극복하는 과정은 너무 상투적이다. 영화가 시작되고 캐랙터들의 소개가 끝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짐작이 갈 정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영화는 우연히도 2018년 대한민국의 모습과 너무도 비슷하기에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우리는 오랫동안 주적이라고 생각했던 이들과 갑자기 공동의 목적지를 향해 가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너무도 오랜 기간동안 적대시하고 살았기 때문에, 윗 사람들의 결정에 따라 이루어진 이들과의 동행이 두렵기도 하다. 이들과 친구가 되기 보다는 계속 미워하며 사는 것이 몸에 더 익숙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들과 계속 싸우며 살 수는 없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같은 조상으로 부터 태어나 수천년간 생사고락을 같이 해 온 사람들이다. 이들과 헤어진 것은 불과 60여년 밖에 되지 않았다.


다행인 것은 이제 우리는 야만인이 아니다. 그들에 대해 알 수 있는 정보가 많이 있다. 카메라와 마이크가 우리의 눈과 귀가 되어 그들의 소식을 들려준고, 유투브에는 그곳을 다녀온 사람들이 찍은 영상이 넘쳐난다. 그들은 뿔이 달린 괴물이 아니었고, 우리와 똑같이 평화를 사랑하고, 레드벨벳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최근에 알게 되었다. 그리고 너무도 오랫동안 잊고 있던 사실도 하나 있다. 우리는 그들과 말이 통한다.


00503194_20180430.JPG


이제 우리는 함께 먼 여정을 떠나야 한다. 쉽지는 않지만 반드시 떠나야 할 여정이라는 데는 그 누구도 이견이 없을 것이다.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은 만나서 대화를 하는 것이다. 대화를 하고 상대방의 과거에 대해 알게될 수록 우리와 똑같은 조상을 가지고 있고, 똑같은 언어를 쓰는 그들을 미워하는 것이 더이상 불가능해 질지도 모른다.


제군들. 이제 그들과 함께 여행을 떠나야 할 시간이다. 이것은 대통령의 명령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지금 만나러 갑니다 그리고 7년의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