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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랑

싫어하는 분들에게

by 원일

네이버 영화 사이트의 관람객 평점은 최신 정치 뉴스 댓글 만큼이나 자신과 의견이 다른 사람들에 대한 비난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영화에 10점을 준 사람은 1점을 준 사람을 비난하고, 1점을 준 사람은 10점을 준 사람을 비난한다.


“이처럼 형편없는 영화를 재미있다고 하다니, 분명 너는 이 영화의 배급업자로부터 돈을 받고 영화를 홍보하는 알바가 분명하다.”


“이 훌륭한 영화가 재미 없다니, 너는 이 영화에게 관객을 빼앗기는 것이 두려운 경쟁사의 알바가 분명하다.”


댓글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잘 알겠지만 내가 위에 쓴 글은 상당히 정제된 표현이다. 모두가 모두를 알바라고 부르는 그 곳에서 자신과 취향이 다른 상대방을 비난하기 위한 욕설은 그냥 일상 용어이고, ‘쓰레기’란 단어는 재미없는 영화를 뜻하는 고유 명사이다. 우리나라 단어 중 영화만큼 ‘쓰레기’로 자주 대체되는 명사가 또 있을까? 영화가 재미없을수록 댓글은 더 기발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이트의 평점에 관심이 가는 이유는 수많은 사람들의 의견들이 모여 관객 눈높이에 맞는 평균 점수를 만들어내기 되기 때문이다. 단언컨데 대다수 관객들은 평론가들의 별점보다는 네이버의 집단 지성을 믿는다. 한 사람의 댓글은 수준 낮을지 몰라도, 다수의 의견이 모여 만들어진 점수를 반박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인랑>이란 영화가 개봉했다. 원작은 일본 애니메이션 <Jih-roh 人狼>이지만 김지운 감독이 우리나라를 배경으로 만든 실사 영화이다. 내 기억으로 애니메이션 <인랑>은 국내 정식 개봉하지는 않았는데, 나는 2002년 경 <인랑>을 해외 영화제에서 <인랑>을 볼 기회가 있었다. 마치 세계 명작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것 같은 캐랙터들의 과격한 액션이 합쳐진 것 같은 기괴한 영상들의 잔상이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았다. 이 애니메이션을 김지운 감독이 실사 영화로 만든단 소식을 듣자마자 오랫동안 이 영화가 기다렸지만 한편으로는 걱정도 되었다. 어떤 영화에 대한 기다림이 길어질수록 실망도 커진다. 그러나 기다림은 시작되는 순간 중단할 수 없다. 기다림을 중단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 영화를 직접 보는 것이다.

오랜 기다림 끝에 영화를 관람했고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희미하게 기억에 남아있던 애니메이션 <인랑>의 캐랙터들이 살아서 움직이는 것도 볼만했고, 내가 잘 알고 있는 장소들이 영화의 배경인 것도 재미있었다. 무엇보다 강화복을 입고 싸우는 미남 액션 장면들은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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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만족스러웠던 나의 의견과는 달리 네이버의 관객 평점이 너무 이상하다. 관객들은 이 영화를 역대급 졸작으로 평가하고 있고, 테러에 가까운 평점을 받고 있는 중이다. 물론 내 의견과 네이버의 평점이 꼭 맞는 경우는 대단히 드물다. 그러나 하지만 내 의견과 달리 평점이 높으면 높은 데로, 낮으면 낮은 데로 이해할만했던 기존 영화들과는 달리 <인랑>이 평점 테러를 당하는 이 현실은 내 기준에서는 믿기지가 않는다. 혹시 진짜 <인랑>의 실패를 바라는 무리들이라도 있는 것일까?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대단히 구체적으로 재미없다는 의견을 남기고 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인랑>이 매우 재미있었다. 원작 애니메이션의 기어와 지하 하수로의 배경을 거의 완벽에 가깝게 재현한 것도 놀랍고, 영화의 동선을 광화문이나 남산 타워처럼 서울에 실제로 존재하는 지명들이 영화의 동선과 맞춘 것도 훌륭했다. 우리나라 작금의 정치적 상황을 근 미래의 시대적 배경으로 이용한 것도 영리한 설정이고, 누가 누구편인지 알 수 없는 설정도 영화의 긴장감을 높인다. 통일을 반대하는 구호들과 전단지로 가득찬 길거리 미장센도 기발했다. 이 영화의 진짜 목적인 총싸움과 폭발이 있는 액션의 쾌감은 정말 대단하다. 게다가 보는 것 만으로도 즐거운 강동원, 정우성, 한효주… 나는 이 영화가 이 정도로 비난받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 1인이다.


혼자 추측을 해 보자면 원작 <인랑> 애니메이션을 좋아했던 관객들은 영화가 자신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것에 화가 났을지도 모르고, 원작을 모르는 관객들은 각종 설정이나 배우들의 장비들이 너무 과하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고, <인랑>의 설정으로 사용된 정치적 상황들이 자신의 의견과 일치하지 않기에 불편함을 느낀 관객도 있을 수 있겠다.


네이버 평점에서 간간히 “나는 재밌었습니다.”라는 댓글을 남긴 익명의 관객들을 보며 약간의 안도감을 얻는다. <인랑>은 정치적 의도따위는 없는 액션 스릴러이므로 <인랑>이 보고 싶으신 분들은 그냥 뇌를 집에 두고와서 관람하시라는 조언과 함께 알바라는 비난이 싫어서 그냥 이 영화의 칭찬에 동참하지 못하는 Shy-인랑도 많이 있다는 소심한 의견을 이곳에 남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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