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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당

실망스러운 역술 3부작의 마지막편

by 원일


<궁합>이란 영화를 본 것이 올해 초 였던 것 같다. 영화를 홍보할 때 <관상>의 제작팀이 만들었다는 것을 강조했던 기억이 있다. <관상>을 너무 재미있게 본 나는 주저없이 <궁합>을 관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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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궁합>은 재미없는 TV 사극보다 더 재미없는 영화였다. 옹주가 시집을 가야하는 이유가 비를 내리게 만들기 위함이라는 설정이 시작부터 이 영화를 신뢰할 수 없게 했다. 영화의 배경은 조선 영조시대이고 이 때는 18세기이다. 만일 옹주가 미혼이라 가뭄이 들었다고 발표했다면 폭동이 일어났을 것이다. 18세기의 조선인들은 그 말을 믿을 정도로 어리석지 않았다. 이미 과학의 시대였고, 미신을 믿을 수 없었기에 조선의 태조는 곰이 낳은 자식도 아니었고 알에서 태어나지도 않았던 것이다.

게다가 영화 마지막 장면, 옹주가 시집가지도 않았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영화 전체가 다 헛소동이다. 역술가인 이승기는 웬 칼싸움을 그리도 잘하는지… <궁합>은 인물 동선이나 시간 동선조차도 맞추지 못했던 수준 이하의 영화였다.


최근 개봉한 <명당>이라는 영화 역시 <관상>의 후광을 의식한 영화이다. 역술 3부작 중 마지막 편 이라지만 2부인 <궁합>이 너무 형편없었기 때문에 3부작이란 표현은 <명당>의 홍보에 좋지 않을 듯하다.

<명당>은 <궁합>보다는 <관상>와 유사한 영화였다. <관상>은 주인공인 ’내경’이라는 가상의 인물의 시선을 통해 실제 역사의 한 장면인 세조와 김종서의 대결을 바라봤다면 <명당>은 지관 ‘박재상’을 통해 흥선대원군이 어떻게 왕위에 오르는지를 바라보는 영화다. 실제 역사에 등장하는 인물을 제 3자의 시선으로 바라본다는 설정은 매력적이다. 하지만 그뿐이다. 이 영화 역시 <관상>과 비교할 수준의 영화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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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들에게 주인공을 소개하고 주인공의 대의명분에 공감시켜야 할 <명당>의 초반 5분은 너무도 상투적이다. 고민한 흔적이 없다. 이것은 제작비의 문제가 아니다. 인물들의 설정과 개성도 엉망이다. 당연히 입체적이어야만 하는 – 그리고 실제로도 입체적이었던 – 흥선은 주인공인 재성 앞에서는 마치 멀쩡한 사람으로 그려진다. 주인공 재성은 왕족인 흥선과 어느새 말을 놓은 친구가 되어있고, 주인공과 각을 세우던 초선(문채원)은 흥선을 몰래 도와주고 있었고, 왜 흥선을 몰래 도와주는지에 대한 의문은 너무도 갑자기, 그리고 상투적으로 해결된다. 역사적으로 흥선대원군 집권시에도 정승을 하였던 김좌근(백윤식)에 대한 왜곡은 영화만 재미있어도 용서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이 모든 것들은 그냥 트집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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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명당>의 가장 큰 문제는 이 영화가 당시 역사와 아무 상관이 없을 뿐 아니라 당시의 조선 사람들의 수준을 너무 우습게 본다는 점이다. 이 영화는 웅녀가 마늘과 쑥을 먹고 사람이 되던 고조선 배경의 영화가 아니라 19세기 조선 배경의 영화이다. 정말 흥선대원군이 명당만 차지하면 왕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과연 가질 만큼 어리석었을까? 왕을 만드는 명당을 지키기 위해 피를 흘리면서까지 싸워야 한다는 설정은 비를 내리게 하기 위해 옹주를 시집보내야 한다는 설정만큼이나 공허하다. 영화 속 인물들은 심각하지만 <명당>때문에 왕이 되는 장면을 재현할 수 없는 다음에야 ‘왕을 만드는 땅’이라는 설정 자체가 와 닿지 않는다. 그리고 왕을 만드는 땅이 있었다면 이전 그 땅의 주인들은 왜 왕이 되지 못했는가? 100년 후보다 지금 당장의 쾌락을 추구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기에 그런 땅이 온전히 남아있기 위해서는 또 다른 설명이 필요하다.


<관상>에서 수양과 김종서의 대결은 역사의 한 장면인 반면 <명당>에서 흥선과 김좌근의 대결은 픽션이기에 영화의 힘은 떨어진다. <명당>은 마지막까지 역사에 한 장면이 되고자 노력하지만 픽션은 픽션일 뿐이기에 관객들에게 아무런 재미도 울림도 주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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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좀 더 입체적인 흥선대원군이 주인공인 영화를 만드는 것은 어떨까? 흥선대원군과 그의 며느리였던 명성황후의 이야기도 재미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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