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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일 Apr 21. 2018

커뮤터, 그리고 걸 온 더 트레인

뉴욕에서의 기차여행

뉴욕에서 잠시 거주했던 경험 때문에 지인들로부터 “뉴욕을 관광하려고 하는데 뉴욕 가기 전에 어떤 영화를 보면 좋을까요?”란 문의를 받을 때가 있다. 관광객의 마음으로 뉴욕의 관광지가 많이 등장하는 영화를 추천한다. 뉴욕의 주요 건물들에 폭탄 테러가 일어나는 <다이하드 3>나 뉴욕의 주요 랜드마크들이 쑥대밭이 되어버리는 <고질라>(1998)가 내가 주로 추천하는 영화인데, 경험상 내 추천작을 들은 이들의 대부분은 실망한다. (뭔가 대단한 영화를 추천할 줄 알았더니 고작? 뭐 이런 느낌이랄까…) 


최근 개봉한 <커뮤터>란 영화도 뉴욕이 배경이지만 뉴욕 관광객을 위한 사전 답사용 영화는 아니다. <커뮤터>는 열차 밖의 뉴욕 풍경보다 열차 안의 액션이 훨씬 더 중요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엠파이어 스테이트빌딩이나 자유의 여신상 같은 뉴욕의 유명 관광지는 이 영화에 사진으로도 등장하지 않는다. 맨하탄 42번가에 있는 그랜드센트럴 역이 인상적으로 등장할 뿐 그것으로 뉴욕은 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본다면 <커뮤터>라는 출퇴근 열차의 존재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다. 뉴욕에 이런 게 있었나?

 



미국에서 기차여행은 사치다. 기차가 국내선 비행기보다 비싸다는 것은 은유적인 표현이 아니다. 미국에 다녀온 사람은 많아도 미국에서 기차를 타 봤다는 사람은 만나기 어려울 것이다. 만일 자신있게 기차를 타 봤다는 사람을 만난다면 정말 기차를 탄 것인지 다시 한번 물어보라. 아마도 지하철이나 전차일 가능성이 많다. 고소공포증 환자가 아닌 다음에야 비행기보다 비싼 기차를 탈 이유가 없다. 그런 미국에서 저렴한 가격으로 기차 여행을 해 보고 싶다면 커뮤터 열차를 타 보는 방법이 있다. 커뮤터라고 불리워지는 열차들의 원래 목적은 맨하탄에 직장을 둔 뉴요커들을 위한 통근 열차이다. 지하철과 달리 좌석은 기차처럼 2인석이고 좌석 시트는 지하철보다 편안하다. 지하철과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지하가 아닌 실외의 기차역에서 탑승하게 된다는 점이다. 그야말로 기차이다. 아직도 종이 티켓을 사용하고 차장이 검표한다. 다른 교통수단과의 환승 할인은 기대하지 말라.


Ardsley-on-Hudson 역


맨하탄에서 출발하는 통근 열차는 여러 노선이 있지만 영화에 등장한 노선은 허드슨 강을 끼고 북쪽으로 이동하는 허드슨 라인이다. 작년에도 이 허드슨 라인의 열차를 소재로 한 영화가 개봉했었는데, 바로 베스트셀러 원작 소설을 영화로 만든<걸 온 더 트레인>이다. 


알코올 중독으로 이혼한 주인공 레이첼(에밀리 블런트)이 하루에 두 번씩 열차를 타면서 목격한 광경을 실마리로 살인 사건을 추리해 가는 스릴러로서 관객들조차 신뢰할 수 없는 여주인공의 기억력을 따라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줄거리가 나름 매력적인 영화였지만 이 영화에 대한 호불호는 많이 갈린다.


<엣지 오브 투모로우>의 여전사 에밀리 블런트는 <걸 온 더 트레인>에서는 알코올 중독의 이혼녀로 등장한다.


<걸 온 더 트레인> 영화를 좋아한 관객이든 싫어한 관객이든 영화에서 보여주는 열차 밖의 풍경이 아름답다는 것은 인정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영화는 주인공의 현실과 이상을 대조시키기 위해 어두운 열차 앉아 있는 주인공이 바라보는 열차 밖의 풍경을 극단적으로 아름답게 표현했고, 이 때문에 주인공은 더욱 초라해 보였다. 기차 밖의 아름다운 풍경은 이 열차의 노선이 허드슨 라인이었기 때문에 가능하다. 기차는 강을 따라 이동하면서 뉴욕 시내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아름다운 광경을 보여준다


영화 <커뮤터>의 행선지인 Cold Spring역과 영화 <걸 온 더 트레인>의 배경인 Ardsley-on-Hudson 역은 모두 Hudson Line 에 위치한다.


미국에서 기차 여행을 해 보고 싶다면 허드슨 라인 통근 열차는 매우 좋은 선택이다.. 창밖으로 환상적인 강변 풍경을 바라볼 수 있다. 다른 뉴욕 관광객들과 차별화된 여행을 하면서 멋진 인증샷까지 남겨보고 싶다면 이 열차를 타고 Ardsley-on-Hudson 역에 가 보자. 유명한 곳은 아니지만 영화 속에서 에밀리 블런트가 열차를 타던 이 역에서 그녀와 똑같은 포즈로 인증샷을 남겨볼 수 있을 것이다. 


여기를 방문하여 이 포즈로 사진을 한번 찍어보라는 듯한 에밀리 블런트의 유혹이 느껴지지 않으신지?


매주한 편씩 최신 영화와 영화가 촬영된 장소에 대한 글을 올리려 합니다. 어설픈 비평가가 되기 보다는 솔직한 관객이 되려 합니다. 많은 격려와 질책 부탁드립니다. 칼럼 문의는 wikim0106@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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