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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일 Apr 22. 2018

플로리다 프로젝트

올랜도에는 그 아이들이 살고있다

*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기당했다. <플로리다 프로젝트>가 이렇게 슬픈 영화일 줄 알았다면 절대 보지 않았을 것이다. 예고편에서 본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시종 일관 밝은 분위기였고, 귀여운 아이들이 즐겁게 뛰어 노는 영화였다. 게다가 영화의 배경은 올랜도이다. 그렇다. 디즈니월드가 있고, 유니버설 스튜디오가 있으며, 이 지역 농구팀의 이름조차도 “매직”인 올랜도이다. 아이들이라면 한번쯤 가보고 싶어하는 꿈의 도시 같은 곳이다. 그곳에 사는 아이들이 주인공이라니 이 영화는 어두울 일이 없어야 한다.



그러나 이 영화는 너무 슬프다. 사랑스런 주인공 무니(브루클린 프린스)의 웃음 되에는 슬픔이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슬픔은 더 커진다. ‘이제 이정도면 되었겠지.’라고 생각하는 순간 더 큰 슬픔 일이 생긴다. 무니는 너무 어리기 때문에 자신이 짊어진 삶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 모를 것 같기에 관객들은 더 안타깝다. 안타까운 관객들의 한숨 소리가 극장 사방에서 들린다. 관객들 모두 무니를 아끼는 올랜도 동네의 주민들이 되어간다. 저러면 안되는데… 저 어린 것 불쌍해서 어쩌나… 


영화 속에서 무니를 아끼는 사람들은 모두 소외된 사람들이다. 무니와 같은 빈민이거나 이미 감당할 수 없는 자신만의 짐을 잔뜩 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나는 이 영화에 반전까지도 기대했다. 호텔 관리인인 바비(윌럼 대포)가 알고보면 엄청 부자라든가, 정부의 비밀요원이라든가.. 그래서 나중에 저 무니 모녀를 구해주기를 바랬다. 그러나 그런 기적은 벌어지지 않았다. 무니 모녀가 싸워야 하는 것은 사회의 법과 제도이다. 바비에게 악당은 자신에게 월급을 주는 고용주이다. 싸울 수 없기에 더 안타깝다.  


이 영화의 감독인 숀 베이커는 관객들의 고통을 즐기는 사람이다. 이제 좀 무니를 그만 괴롭히라고… 그만하면 되었으니 빨리 왕자를 출동시켜 무니를 저 시궁창 같은 현실에서 구해내라고… 마음속으로 아무리 외쳐도 소용없고 오히려 무니에게는 항상 더 큰 고난이 다가온다. 이제 겨우 6살밖에 되지 않았는데 어린 무니의 인생에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보는 내내 화가 나서 미치겠다.  

만일 다른 배우가 했다면 손발이 오그라들 것만 같은 대사가 무니의 입을 통해 나올 때는 정말 마음이 찢어진다.  

“내가 왜 이 나무를 좋아하는지 알아? 쓰러져도 계속 자라기 때문이야.”


“내가 왜 이 나무를 좋아하는지 알아? 쓰러져도 계속 자라기 때문이야.”


그렇다. 무니는 자신이 쓰러졌다는 것을 일찌감치 알고 있었다. 사랑하는 엄마를 위해 모른 척 하고 있었을 뿐이다. 자신의 불행을 감추려고 필사적으로 재미를 찾아다니고 깔깔거리며 즐거운 척 연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무니 모녀가 사는 올랜도의 192번 국도 주변은 어설프게 디즈니 월드를 흉내낸 모텔과 상점이 모여있는 곳이다. 이런 곳에 살면서 무니는 정작 지척에 있는 진짜 디즈니월드는 한번도 가보지 못한 채 엄마와의 생이별을 할 위기에 처한다. 무니의 엄마 핼리(브리아 비나이트)는 딸을 사랑하지만 어떻게 길러야 하는지 전혀 모른채 눈 앞의 생계를 위해 발버둥친다. 그 모녀의 삶이 더 나아질 것 수 있다는 희망이나 복선은 영화 어디에도 없다. 

결국 사회의 법과 제도는 이런 엄마로부터 어린 무니를 격리시키려 한다. 관객도 필연적으로 이 선택에 동참해야 한다. 그들은 같이 살아야 하나? 아니면 헤어져야 하나? 어떤 선택도 이들을 기쁘게 만들지 못한다. 당신의 선택은 무엇인가?   


 무니 무늬만 디즈니월드인 올랜도 192번 국도 주변의 건물...


이 영화가 너무 슬픈 이유는 무니의 시선으로 바라본 세계가 내가 알고있는 현실과 너무나 유사하기 때문이다. 요즘엔 너무 진부해져버린 단어 '극사실주의'.

무니 모녀를 힘들게 하는 그 모든 것들이 존재하는 일이고, 무니가 저 삶에서 영원히 탈출할 수 있는 희망이 보이지 않기에 너무 힘들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무니와 젠시는 델마와 루이스와 같은 질주를 시작한다. 목적지는 “마법의 왕국”(Magic Kingdom)이다. 미키 마우스와 신데렐라가 살고 있는 마법의 왕국으로 6살 소녀들이 쉬지 않고 질주할 때 갑자기 나의 심장도 같이 뛰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들은 그디어 매직 캐슬이 아닌 매직 킹덤에도착한다. 


영화가 그 곳에서 끝이 난다. 스크린 속의 무니는 마법의 왕국에서 가장 친한 친구 젠시와 함께 영원히 행복할 것이다. 그렇게 믿어야만 오늘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다.



매주한 편씩 최신 영화와 영화가 촬영된 장소에 대한 글을 올리려 합니다. 어설픈 비평가가 되기 보다는 솔직한 관객이 되려 합니다. 많은 격려와 질책 부탁드립니다. 칼럼 문의는 wikim0106@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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