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원일 May 08. 2018

레이디 버드

90%를 위한 성장 영화

여러분들이 이름을 알고 있는 미국의 유명 대도시들은 각 주(state)의 수도(Capital)가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뉴욕주(New York State)의 수도는 뉴욕시(New York City)가 아닌 알바니(Albany)이고, 일리노이(Illinoise)주의 수도는 시카고(Chicago)가 아닌 스프링필드(Springfield)이다. 펜실베니아주(Pennsylvania)의 수도는 필라델피아(Philadelphia)가 아닌 해리스버그(Harrisburg)이고, 텍사스주(Texas)의 수도는 휴스턴(Houston)도, 댈러스(Dallas)도 아닌 오스틴(Austin)이다.


캘리포니아(California)의 수도는 어디일까? 샌프란시스코나 LA가 아닐 것이라는 것은 짐작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샌디에고일까? 버클리일까? 정답은 새크라멘토(Sacramento)이다. 미국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주의 수도임에도 불구하고 새크라멘토가 캘리포니아의 수도라는 사실은 미국인들도 잘 모른다. 유명한 관광지도 없고 캘리포니아 주립대 이외에 큰 대학도 없기 때문에 한국인들 중 새크라멘토라는 지명을 들어본 사람은 그곳에 지인이 살고 있거나 아니면 미국 프로농구리그인 NBA의 열혈팬 정도일 것이다. 영화 <레이디 버드>는  미국 변방의 상징과도 같은 새크라멘토에서 나고 자란 크리스틴이란 소녀의 이야기이다.



성장 영화에 등장하는 전형적인 중고등학생 주인공들은 주로 상위 5%나 하위 5%인 경우가 많다. 모범생이거나 문제 학생이거나, 스포츠를 아주 잘하거나 아주 못하거나, 인기남이거나 왕따이거나, 영화의 재미를 위해 캐랙터가 다소 극단적으로 설정된다. 캐랙터가 극단적일수록 영화는 나의 이야기가 아닌 남의 이야기가 되어버리고, 나는 영화 속 주인공들을 지켜보는 관객이 된다. (저건 내 이야기가 아니다!) 다른 성장 영화들과는 달리 <레이디 버드>의 주인공 크리스틴은 나와 같은 중간 90%에 속하는 학생이다. 인기있지는 않지만 왕따의 피해자도 아니다. 수업을 빼먹는 것과 같은 사소한 반항을 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문제아는 아니다. 학교엔 친한 친구도 있고, 스스로에게 ‘레이디 버드’란 이름을 작명한 후 모두들에게 그 이름을 불러달라는 뻔뻔함을 발휘하기도 한다. 그러나 학창 시절 내내 결코 주목받지는 못한다. 자신의 성적보다 더 좋은 대학을 가겠다고 고집부리는 모습은 과거의 내 모습과 꼭 닮았다.



그 나이 또래의 모든 여학생들처럼 크리스틴은 행복하지 않다. 행복은 원래 멀리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내가 있을 곳은 여기가 아니다. 하지만 잔인한 엄마는 늘 나에게 현실을 일깨워주려 한다. 딸과 엄마는 늘 싸우고, 서로가 서로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 싸움은 끝도 없이 지속된다.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약점을 잔인하게 할퀴거나 신체에 상처를 입히는 방법뿐이다.



부부 싸움에서 남편들이 왜 부인들을 이길 수 없는지 알고 싶다면 <레이디 버드>를 보라. 어린 시절부터 엄마와의 싸움을 통해 단련한 말싸움 실력을 남자들이 당해낼 방법이 없다. 여자들은 어떤 말이 상대방에게 얼만큼 상처를 입히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고, 싸움에 이기기 위해 필요한 만큼 그 말을 사용한다. 남자는? 남자는 어떤 말이 얼만큼 상처를 주는지 전혀 알지도 못하고 생각도 없다. 아무렇게나 내뱉은 말은 부머랭이 되어 내게 돌아오고, 그 결과 싸움에서는 패배한다. 그러나 이 영화, 부인들을 무장해제 시키는 방법도 알려준다. 사실 특별한 방법도 아니다. 부인이 무장해제 되는 곳, 쇼핑몰에 가면 된다. 쇼핑몰은 말다툼의 DMZ이다.


<레이디 버드>에서 가장 재미있는 장면은 쇼핑몰에서의 모녀간의 말싸움 장면일 것이다.

  

이 영화는 전형적인 성장영화처럼 아름답게 끝날 수 있었다. 대학에 합격한 크리스틴이 엄마와 화해하고 진하게 포옹하면서 새로운 인생을 찾아 떠나는 뒷모습을 보여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영화는 뉴욕에 정착한 크리스틴의 일상을 몇 분간 더 따라다닌다. 그토록 오고 싶던 곳이건만 그 곳에도 행복은 없다는 것을 발견하기 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도 않는다. 자신이 늘 지나다니던 그 곳이 그리워진다. 행복은 원래 멀리 있는 것이다.


방학이 되면 레이디 버드는 새크라멘토로 돌아갈 것이다. 재회의 반가움에 잠시 기쁘고 눈물도 흘리겠지만 이 모녀는 곧 싸울 것이고 크리스틴은 고향에서의 정해진 일정을 채우기도 전해 다시 뉴욕으로 돌아갈 것이다. 장담컨데 이 엄마와 딸은 평생 싸울 운명이다.


내 인생을 꼭 닮은 영화 <레이디 버드>의 감독인 그레타 거윅은 감독보다는 배우로 더 유명한 사람이고 <레이디 버드>는 그녀의 첫번째 감독 작품이다. 그녀 자신의 이야기가 하고 싶어 만든 영화이고, 당황스러울 정도로 솔직한 이야기는 미국 관객들은 물론, 영화를 관람한 우리나라 관객들까지 이 영화에 공감하도록 만들었다.


<프란시스 하>의 주인공 프란시스는 <레이디 버드>의 감독인 그레타 거윅이다.


우리의 고뇌는 단 한 번도 멈춘 적이 없기에 우리는 오늘도 고달프다. 그러나 지난 시절의 고뇌는 이제 웃으며 떠올릴 수 있다. 청춘이기 때문에 이유도 모른채 아파지만, 이 아픔을 씩씩하게 극복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 모두 잠시 그시절로 돌아간 느낌을 받는다.  <레이디 버드>는 우리가 과거에 겪었던 그 고뇌를 미소짓고 바라보며 다시 떠올릴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영화이다. 가끔은 내 인생을 들킨 것 같아 뜨끔하기도 하면서…



<레이디 버드>는 새크라멘토를 홍보할 목적으로 만든 영화가 아니었다. 그러나 새크라멘토 출신 감독의 고향에 대한 사랑과 향수는 이 영화를 본 관객으로 하여금 그 도시에 가보고 싶도록 만들었다. 나조차도 크리스틴이 혼자 차를 운전하며 건너던 J 스트리트 다리를 운전하며 크리스틴이 느꼈던 짧은 행복과 평화를 같이 느껴보고 싶다.


새크라멘토는 이제 <레이디 버드>를 사랑한 관객들의 성지로 만들어 버렸다. <레이디 버드>의 열성팬들은 그녀가 거쳐간 모든 장소들을 순례하고 있는 중이다.

훌륭한 영화는 촬영지를 관광지로 만들어 준다. 레이디 버드가 동경하던 그 파란집은 레이디 버드를 동경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순례해야 할 성지이다.


몇 안되는 새크라멘토의 관광지 중 가장 유명한 곳은 타워 브릿지이다. 가장 유명한 만큼 가장 극적인 장면의 배경이 되었다.


이 영화를 본 관객들이라면 뭐니뭐니 해도 이곳이 가장 가보고 싶을 것이다. 득템할 수만 있다면 그 모녀들처럼 행복할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플로리다 프로젝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