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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일 Jun 23. 2019

도그빌

<살인마 잭의 집> 비기닝

* 도그빌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직 2019년의 절반이 지나지 않았지만 2019년 상반기 최악의 영화를 한 편 꼽으라고 한다면 <살인마 잭의 집>을 꼽겠다. 이 영화는 관객들을 불쾌하게 만들기로 작정한 영화였다. 일부 평론가들이 이 영화를 칭찬하는 이유는 관객을 불편하게 만들겠다는 감독의 의도가 성공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내 수준에선 이 영화를 이해하기 어렵다.) 


아무 맥락없는 살인 행위와 그에 대한 주인공의 궤변이 끝없이 이어지는 <살인마 잭의 집>을 좋아할 수가 없다. 주인공 잭(맷 딜런)이 받은 처벌조차 그가 저지른 살인죄의 크기에 비해 너무도 가벼웠다. (더 괴롭고 고통스럽게, 피해자들의 가족이 보는 앞에서 죽어야 하는 것 아닌가?)



<살인마 잭의 집>의 감독이었던 라스 폰트리에 작품전이 아트나인에서 열리는 중이다. 덕택에 개봉 당시 극장에서 보지 못했지만 세 시간 가까운 러닝타임이 부담스러워서 늘 미루고 있던 <도그빌>을 관람하게 되었다. (나는 몇 년 전 <도그빌> DVD도 몇 년 전 구매했었다. 결국 보지 못한 채 어디론가 사라졌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도그빌>도 <살인마 잭의 집> 만큼이나 불편한 영화였다. 차이가 있다면 <살인마 잭의 집>은 주인공의 행위에 전혀 동의할 수 없기에 불편했고, <도그빌>은 어쩌면 나도 도그빌 주민들같은 본성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불편했다. 의식하지 조차 못하던 내면 깊숙한 세계를 들킨 것 같은 느낌이다.



굳이 중국의 고전철학을 근거로 들 필요도 없을 것이다. 약자에게 가혹하고 강자에게 비굴한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도그빌>은 인간이 약자에게 얼만큼 가혹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그 가혹함의 수위는 매 장면마다 기록을 갱신한다. <도그빌>의 주민들에게 잠재되어 있던 악한 본성은 브레이크가 달려있지 않았다. 오로지 약점밖에 없던 그레이스(니콜 키드먼)는 착취의 대상이고 그녀의 삶은 가축만도 못하다는 표현은 은유법이 아니다.


 

도그빌 주민들은 그레이스의 노동력과 성을 착취하고 누명을 씌우고 과거 흑인 노예도 하지 않았던 쇠목줄을 달고 생활하게 된다. 그녀의 재산은 화풀이의 도구로 사용된다. 살인을 제외한 거의 모든 범죄가 힘없고 연약한 그레이스에게 자행되고 주민들이 드러내기 시작한 악마적인 본성은 멈출 수가 없다. 관객들이 도그빌 주민들에게 분노하다가 거의 탈진하게 되었을 때 그 유명한 반전이 시작된다.



이 영화의 관객들이라면 아름다운 스타 니콜 키드먼이 연기한 그레이스에게 감정이입 했을 것이고 그녀를 학대한 도그빌 주민들이 가혹하게 처벌받기를 원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처벌의 수위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과연 마을 사람들은 어떤 처벌을 받아야 관객들로 하여금 통쾌함을 느낄 수 있을까? 그리고 재범이 방지될 수 있을까?


학교 폭력을 일삼으면서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일진 학생들은 어떤 처벌을 받아야 할까? 피해자의 가족들은 깊은 생각을 하지 않고 사형시키라고 말할 것이다. 그것이 당연한 감정이다. 그러나 실제 일진에게 사형 선고가 내려진다면 사회는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도그빌>은 <살인마 잭의 집>과 대척점에 있는 영화이다. <살인마 잭의 집>의 주인공 잭(맷 딜런)은 완벽한 가해자인 반면 <도그빌>의 그레이스는 완벽한 피해자이다. 잭이 아무 목적과 동기없이 살인을 저지르는 사람이라면 그레이스는 주민들을 필사적으로 이해하고 용서하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던 사람이었다. 잭이 당한 처벌의 수위는 너무 낮은 반면 그레이스가 내린 처벌의 수위는 너무 높다. 아마도 <살인마 잭의 집>은 <도그빌>의 처벌 수위에 불만을 재기한 관객들에게 내린 설명인지도 모르겠다. 양 극단에서 당신의 선택은 무엇인가?


<도그빌> 주민들이 어떤 처벌을 받아야 나의 정의감에 위배되지 않을지 아직도 판단을 내리기기 어렵다. 

결론은? 라스 폰트리에 영화는 정신 건강에 이롭지 않다. 


<도그빌>이 영화라 다행이다. 연극 세트와 같은 곳에서 영화가 진행되는 이유는 영화를 현실로 착각하지 않게 만들기 위한 감독의 배려심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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