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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일 Sep 07. 2019

안나

시네필들이 좋아했던 감독의 귀환





뤽 베송은 20세기 말 시네필들이 가장 좋아하는 감독 중 한 사람이었다. 

그는 그랑 블루, 니키타, 레옹을 연출했고, 장 르노와 밀라 요보비치를 발견해 낸 감독이다. 

자신이 연출하는 영화는 물론 관객들의 취향을 저격하는 시나리오를 쓸 줄 아는 작가이기도 하다. .  

좌측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니키타>, <레옹>, <서브웨이>, <제5원소>


1990년대 까지만 해도 뤽 베송은 늘 차기작이 기대되던 성실한 감독이었다. 

장편 데뷔작인 <마지막 전투>의 성공으로 인하여 헐리웃에서 <서브웨이>를 연출할 수 있었고, 그 후 <그랑 블루>의 감독이 되었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그랑 블루>의 포스터는 1990년대 전국 모든 커피 전문점과 카페에 걸려있었다.


<서브웨이>와 <그랑 블루>를 합쳐놓은 것과 같은 <니키타>의 상업적 성공으로 인하여 뤽 베송은 작품성과 흥행성을 모두 갖춘 감독으로 평가받게 되었고, 그 후 액션 영화의 고전이 되어버린 <레옹>을 연출할 수 있었다.  

엄청난 제작비가 투입된 <제 5원소>는 개인적으로는 실망스러운 작품이었으나 지구인이 아닌 것 같은 밀라 요보비치란 배우가 발굴되었고 그녀는 차기작 <잔다르크>의 주인공이 된다.  


<잔다르크>는 '밀라 요보비치'라는 배우의 이름보다 감독인 '뤽 베송'의 이름이 흥행에 더 도움이 되던 시절의 영화이다.


<뤽 베송>의 최고 작품이 무엇인지는 의견이 갈릴 것이다. 누군가 그의 최고 작품을 <제 5원소>라고 주장해도 반대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그의 최고 작품 후보들은 모두 <레옹> 이전의 작품들이라는 점이다.


한 때 스스로를 시네필이라고 생각하는 관객들에게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에 가까운 지지를 받던 감독이었지만 2000년대 들어 연출보다는 제작에 참여하는 횟수가 많아졌다. 간간히 연출을 맞은 영화들은 흥행에서 실패하면 그 손실을 만회하고자 과거의 성공작들의 속편을 또 제작한다. 이런 식으로 <택시>, <트랜스포터>, <테이큰> 시리즈가 만들어졌고 속편이 거듭될 수록 작품에 대한 기대는 떨어진다. 더 이상 속편을 만들 수 없게 될 정도로 작품에 대한 기대감이 하락할 경우 리부트를 시키기도 한다. 명품 영화의 연출자였던 그가 헐리웃의 상업적인 사고방식으로 무장한 B급 액션 영화의 제작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가성비 높은 영화 제작에 몰두한 탓에 한 때 전 세계 영화팬들을 설래게 했던 그의 이름은 믿고 거르는 영화의 대명사처럼 되어버렸다.  


더 이상 보고싶지 않은 '뤽 베송'표 속편들

그런 뤽 베송의 신작 <안나>가 개봉하였다. 그가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까지 맡은 작품이다.우려를 가득 안은 채 영화를 관람했다. 우려와는 달리 영화가 훌륭하다. 


밑바닥 인생을 살던 여성이 스파이가 되어 새로운 신분의 삶을 살게 되지만 그곳은 또 다른 지옥이다. 이처럼 <안나>의 플롯은 <니키타>와 유사하지만 <안나>는 살아 돌아온 <레옹>과도 같은 액션씬을 보여준다. 아주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90년대의 뤽 베송 영화를 볼 때의 흥분감이 되살아난다.


KGB와 CIA 사이의 속고 속이는 스토리도 영화의 몰입감을 높여준다. 미녀 주인공의 화려한 액션을 보여주기 위해 억지로 만들어낸 스토리가 아니라 1990년대를 배경으로 한 미소간 첩보전이 주요 스토리이고, 주인공의 액션은 스토리의 개연성을 만들어주는 도구로 활용된다. 자칫하면 상투적이 되어버릴 수도 있는, 미녀 수퍼 모델로 신분을 위장한 스파이라는 설정도 1990년 미소 냉전이라는 시대적인 배경과 함께 설득력을 지니게 된다.  



이 영화의 가장 훌륭한 점은 편집이다. 반전에 반전이 거듭되는 스토리를 관객들이 어렵지 않게 따라가도록 만들었다. 복잡하지만 복잡하지 않고 지금 보고 있는 장면에만 몰입할 수 있다. <니키타>에 <메멘토>가 합쳐진 것만 같다. 



뤽 베송이 굳이 1990년대를 선택한 이유는 1990년대의 자신의 스타일로 돌아가겠다는 선언으로 느껴진다. 1990년은 <니키타>가 개봉된 해이기도 하고, <니키타>의 주연을 맡은 배우의 이름이 ‘안느 파릴로드’였다는 사실이 우연이라고만 생각되지 않는다.


<안나>는 흥미로운 스토리와 멋진 액션이 있는 영화이다. 아직 속단하기는 이르지만 뤽 베송의 과거 명성을 다시 빛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영화이다. 뤽 베송이 돈 벌이에 급급한 영화 제작자인지, 아니면 시네필들을 흥분시킬 수 있는 능력있는 연출자인지는 그의 차기작을 보고 다시 한번 평가해 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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