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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문 4

IP MAN 4 : The Final

by 원일

영화 <천문>에서 세종대왕을 연기한 한석규 배우는 이미 2011년 년 전 <뿌리깊은 나무>란 드라마에서 세종대왕을 연기한 바 있다. <뿌리깊은 나무>는 매우 인기있던 사극이었으므로 <천문> 관객들 중에는 <뿌리깊은 나무>를 기대한 사람들도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천문>을 <뿌리깊은 나무 2>라고 제목 짓는다면 사기 행위이다. <나랏말싸미>에서 송강호 배우 역시 세종대왕을 연기했지만 <천문>을 <나랏말싸미 2>라고 제목 지어서도 안될 것이다. 이들 영화에는 단지 역사적 인물이었던 세종대왕이 등장할 뿐 이들 영화는 같은 영화가 아니다. 이 정도의 상식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세종.png 영화 <천문>(좌),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우). 같은 배우가 같은 인물을 연기했지만 다른 컨텐츠이다.


견자단의 <엽문 3 : 최후의 대결>(2015)이 개봉하기도 전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엽문 3>과 <엽문 4>가 개봉되었다. 우리나라에 <엽문 3>, <엽문 4>라는 제목으로 둔갑하여 개봉된 영화들은 실존 인물이었던 ‘엽문’이 주인공인 영화이만 견자단이 주인공인 <엽문> 시리즈가 아니다. 오리지널 포스터에는 숫자가 전혀 적혀져 있지 않다. 우리나라 포탈에 소개되어 있는 <엽문 3>과 <엽문 4 : 종극일전>은 엽문 시리즈가 아니다.


엽문4_fake.jpg <엽문 4>로 소개된 영화 <IP MAN The Final Fight>. 오리지널 포스터에는 숫자가 적혀져 있지 않다. 2013년 개봉 당시 이 영화의 관객수는 2,888명이다


<엽문>을 볼 때 관객들은 엽문이라는 인물을 보고싶은 것이 아니다. 견자단의 액션이 보고 싶은 것이다. 표정 변화없이 팔 다리가 마치 개별적인 생명체처럼 따로 움직이며 몸싸움을 하다가 결국은 나쁜 놈들 – 특히 일본인들 – 의 얼굴에 기관총을 쏘듯 주먹을 퍼붓는 견자단 특유의 액션이 보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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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자단 주연의 진짜 <엽문 4>가 미국에서 개봉되었다. 관객들이 기대하는 견자단이 출연하고 극중 이소룡의 비중이 더 커졌다. 영화의 배경은 이소룡이 아직은 배우로 대뷔하기 전인 1960년대의 샌프란시스코이다. 견자단을 보는 것 만큼이나 1960년대 샌프란시스코를 재현한 모습이나 이소룡과 꼭 닮은 대니 찬의 연기도 볼만하다. 아버지들의 마음을 울컥하게 만드는 드라마도 들어있다.


442c2940-1fe8-11ea-bbfb-b14e44e7e99e.jpg <엽문 4>에서 이소룡 역의 대니 찬


엽문과 대결을 해야만 하는 나쁜 일본인의 자리에는 인종차별을 하는 나쁜 미국인들이 차지한다. 이 나쁜 미국인들은 가라데를 함으로써 일본인들과의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다. 즉, 엽문과 대결을 벌이는 나쁜 미국인들은 일본인들과의 대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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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당시의 미국인들의 중국인들에 대한 인종차별을 돌려서 말하지 않고 직설적으로 표현한 것도 용감하다. 무엇보다 기관총과 같은 견자단의 주먹은 여전히 속시원하다.

로튼토마토 역시 이 영화에 대단히 호의적이다. <IP MAN 4 : The Final>의 현재 스코어는 91%. 1편보다 재미있다면 과장이겠지만 충분히 만족스럽다. 기존 견자단의 <엽문> 팬들이었다면 실망하지 않을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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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문 4>는 영화 역사의 길이 남을 명작이라서가 아니라 재미있는 이야기와 견자단의 액션이 있는 무협 장르의 영화로서 몇 번씩 더 보고 싶은 영화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이 영화를 미국에서 관람했다는 것이 나에게는 잊을 수 없는 경험이 될 것 같다. 어찌되었건 영화는 중국과 미국의 대결이다. 등장하는 미국인들은 거의 모두 가해자이자 악이고 중국인들은 피해자이고 선이다. 이를 미국 관객들은 이 설정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궁금하시면 댓글 남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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