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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일 Dec 29. 2022

콜레트

작가 지망생들을 위한 조언

* 3년 전 기고했던 글 입니다. 사이트가 사라져서 제 개인공간에 업로드 합니다.

* <콜레트>의 스포일러가 담겨 있습니다.



영화 <콜레트>는 19세기말~20세기초에 살았던 여성 작가인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Sidonie-Gabrielle Colette)의 삶을 통해 남성 중심적인 사회를 비판하는 ‘페미’ 영화이다. <콜레트>의 비판에 반론을 제기할 생각은 없다. 19세기 말 프랑스에는 여성들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시스템이 없었거나 부실했을 것이다. 콜레트처럼 앞선 생각을 가진 여성들의 삶은 힘들었을 것이고 이런 이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오늘날 여성들이 과거보다 더 많은 것을 누리고 있다는 이 영화의 사상에도 동의한다. 



콜레트(키이라 나이틀리)가 시대를 앞서간 여성이었었다면 남편 윌리(도미닉 웨스트)는 그 시대에 살고 있던 보편적인 남성이었다. 윌리의 외도가 발각되었을 때 모든 남자들은 외도한다는 그의 해명에는 거짓이 느껴지지 않는다. 실제로 그 시절 남성들은 자신들의 행동이 정당하다고 믿었을 것이다. 영화 <콜레트>가 폭로하고자 하는 사실은 비도덕적 행위에 대해 죄책감조차 느끼지 못하는 남성들의 위선이다. 



윌리는 콜레트가 쓴 소설을 자신의 이름으로 출판하는데 아무런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다. 심지어 콜레트의 재능을 시기하지도 않는다. 윌리에게 콜레트의 재능이란 부러운 것이 아니라 착취의 대상일 뿐이다. 윌리에게 유일하게 중요한 것은 콜레트가 더 많은 소설을 써서 더 많은 돈을 버는 것이다. 콜레트가 소설을 쓰지 않는 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윌리는 콜레트가 오로지 글만 쓰도록 콜레트를 방에 감금한다. 윌리가 콜레트를 방에 가두는 장면은 아마도 많은 관객들을 분노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힘있는 사람이 힘없는 사람의 자유 의지를 박탈하는 것만큼 우리의 정의감을 자극하는 일은 없다. 이 장면을 보고 분노한 당신, 분명 정의로운 사람이다. 그러나 잠시 분노를 가라 앉힌다면 콜레트가 성공적인 작가가 되는데 남편이 기여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출판업에 종사하는 윌리는 콜레트의 재능을 알아봤다. 윌리는 형편없는 인격을 가지고 있었지만 사업적인 감각이 있었다. 동시대의 사람들이 어떤 글을 좋아하는지 잘 알고 있었기에 콜레트의 원작에 수정을 지시할 수 있었고, 콜레트도 그런 남편의 요청에 순순히 응하였다. 신인 작가라면 경험많은 출판 업자의 요청에 응해야 한다. 이는 남녀의 문제가 아니다. 덕택에 그녀의 첫 번째 소설은 성공한다. 여성으로서 콜레트가 윌리와 같은 남편을 만난 것은 불행한 일이지만 작가 지망생 콜레트가 출판업자 윌리를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또한 윌리는 콜레트가 글을 쓰도록 콜레트를 4시간씩 방에 감금했고 글을 쓰기 전까지는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국내 출판된 작가들을 위한 지침서들이 공통으로 주장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꾸준히 글을 써라. 시간을 정해두고 써라. 정해진 시간에는 쓰고 싶지 않아도 써라.”


남편이 콜레트를 감금하고 글을 쓰도록 강요한 것은 자신의 탐욕을 채우기 위한 나쁜 행동이었지만 작가 지망생들 입장에선 성공하기 위해 반드시 따라야 했던 법칙이기 하다. 원했든 원치 않았든 이 4시간의 강제 노역이 없었다면 콜레트는 작가로 성공할 수 없었을 것이다. 자신이 쓰고 싶을 때만 글을 써서 성공한 작가는 지구상에 아무도 없다. 더 이상 쓸 말이 없을 때에도 짜내듯 글을 완성해 내야 하는 것은 모든 작가들의 운명이기도 하다. 만일 콜레트에게 윌리와 같은 나쁜 남편이 없었다면 정원을 가꾸는 일에 정신이 팔려 글을 쓰지 않았을 것이고 콜레트의 다음 소설은 출판될 수 없었을 것이다. 


만일 자신의 노동력이 나보다 힘이 센 자에 의해 착취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면 자신이 훈련을 받고 있다고 생각을 바꿔보자. 그리고 실제로 우리는 매시간 훈련을 받고 있다. 이 훈련을 통해 더 나은 내가 되어 나에게 부당한 지시를 한 자에게 콜레트처럼 복수하겠다고 다짐하자. 일을 너무 잘해서 반드시 이 자리에 있어야만 하는 내가 갑자기 사라지는 것만으로도 복수는 완성될 것이다. 상상만으로도 짜릿하지 않은가? 이것이 영화 <콜레트>를 관람한 후 영화의 본래 의도와 상관없이 내가 받았던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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