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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일 Feb 24. 2023

부탁 하나만 들어줘

우리는 우리와 다른 사람과 만나야 한다...

* 2018년 말에 작성했던 글 입니다. 사이트가 사라져서 제 개인 공간에 다시 업로드 합니다.


영화 <부탁 하나만 들어줘>의 학부모 참관 수업 장면을 보고 있노라면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비슷한 것 같다는 생각에 웃음이 나온다. 아이들의 수업에 과도하게 참여하는 하우스맘이 있고, 전혀 참석하지 않는 워킹맘이 있으며, 어느 한쪽 편에도 속하지 않고 모여서 이들의 뒷담화를 나누는 엄마들이 있다.



영화의 주인공 스테파니(안나 켄드릭)는 하우스맘이다. 늘 유쾌하고 남들에 대한 배려심은 지나칠 정도이다. 그녀는 유아 교육에 관해서는 아마추어 전문가이기도 하다. 그녀의 블로그에는 아동 미술, 간식 만들기, 응급처방 등 유아 교육과 관련된 정보로 가득 차 있고, 교육과 관련된 학교 활동에는 너무나 열정적으로 참여하기에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제재를 받기도 한다. 그녀의 오지랖은 사람들의 뒷담화 대상이 되기도 한다.



반면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 에밀리(블레이크 라이블리)는 워킹맘이자 성공한 커리어 우먼이다. 그녀는 유명한 패션 디자이너 밑에서 많은 급여를 받으며 일하고 있다. 바쁜 직장 생활 때문에 학교 행사에 나타나는 일은 없고, 간혹 나타난다 하더라도 미안함이나 배려심을 보이는 일은 없다. 그녀는 정제되지 않은 언어를 사용하여 머리 속의 생각을 거침없이 표현하기 때문에 무례하게 들리지만, 한 편으론 그녀의 표현이 통쾌하기도 하다.


너무나 개성이 강하여 현실 세계라면 절대 친구가 될 수 없을 스테파니와 에밀리는 아이들 덕택에 절친이 되지만 에밀리가 실종되고, 스테파니는 에밀리의 실종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육아 이외에는 아무 것도 모르고 착하고 거절할 줄 모르는 성격 때문에 남들에게 이용만 당할 것 같던 스테파니가 자신의 능력을 이용하여 에밀리 실종의 미스터리를 하나씩 벗겨가는 과정을 관람하는 것이 이 영화의 가장 큰 재미이다. 



<부탁 하나만 들어줘>는 헐리웃에서 유명한 페미니스트인 폴 피이그 감독이 처음 도전한 스릴러 영화이다. 장르의 특성상 그의 특기인 코메디는 최소한으로 제한되어 있지만 간간이 시도되는 유머의 성공률은 매우 높다. 마치 패션쇼를 관람하듯 매번 바뀌는 두 여성의 의상도 이 영화에서만 볼 수 있는 아주 재밌는 볼거리이다. 



영화의 두 주인공인 스테파니와 에밀리에게는 사람들의 하우스맘과 워킹맘들의 편견이 반영되어 있다. 미국은 물론 우리 나라에서도 하우스맘과 워킹맘들은 친해지기 어렵다. 각자가 다른 세계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학부모들의 사교 모임이 있는 날은 하우스맘들과 워킹맘들의 심리적인 싸움이 일어나는 날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받기 일수이다. 

이 영화의 배경은 Warfield(전쟁터)라는 가상의 소도시이다. 이 둘 사이에 벌어질 심리적 전쟁에 대한 복선이기도 하다.


Warfield 초등학교 - 초등학교는 엄마들의 전쟁터


비슷한 사람들만 만나 나와 같은 생각만 반복해서 듣는 것은 편안하고 안전하다. 상처받을 일이 없다. 하지만 발전도 없다. 항상 그 자리에만 머물러 있게 된다. 나이가 들수록 보수적이 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늘 같은 사람들만 만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우스맘들과 워킹맘들은 만나야 한다. 이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받음에도 불구하고 만나야 하는 이유는 그들이 나와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이기 때문이고 그 만남을 통해 나의 세계가 확장되기 때문이다. 특히 자녀들을 위해서도 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야만 한다.



스테파니는 에밀리를 만나기 전까지는 육아밖에 모르던 하우스맘이었다. 그러나 에밀리를 만난 덕택에 자신의 숨겨진 재능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만일 연말연시 사교 모임이 있다면 멋지게 차려 입고 모임에 참석해 보자. 그리고 다른 사람의 말에 귀 기울여주고 그들은 칭찬해 보자. 검색으로는 알 수 없던, 그 사람들만 알고 있던 육아에 대한 최고급 정보를 얻어올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가장 형편없는 사람을 만나더라도 다음에 피해야 할 사람을 알게 된 것이고, 또 그만큼 나의 세계는 넓어진 것이다. 


새해에는 나와 전혀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을 한 명 사귀고 절친이 되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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