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온 미래

아름다움이 사라지는 완벽한 AI 시대

by 원일

아마도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로 기억한다. 어린 왕, 혹은 어린 세자였던 세종은 아버지 태종이 폭정을 일으킬 때 마다 방으로 숨어서 마방진과 비슷한 게임을 하는 장면이 있다. 요즘으로 치면 초등학생 소년이 엄마 아빠 싸울 때 방으로 들어가서 헤드폰쓰고 게임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었을 것이다. 이 때 세종을 따라 방으로 들어온 태종은 마방진의 가운데 숫자 하나만 남기고 나머지를 다 쳐내면 완벽하다고 했다. 하지만 이런 방법으로 완벽해지면 문제가 생긴다. 더 이상 게임을 할 수가 없다.


화면 캡처 2026-01-12 101202.png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 중


AI 때문에 바둑계가 이상해졌다고 한다. 기사들의 개성이 사라지고 AI가 가르쳐주는데로 바둑을 두게 되었다는 것이다. AI가 두는 바둑은 완벽하다. 이길 수가 없다. 바둑의 목적은 아름다움의 추구가 아니라 이기는 것이다. 예술보다 스포츠에 가깝다.


역사상 가장 훌륭한 농구선수로 기억되는 마이클 조던과 샤칼 오닐의 플레이는 전혀 다르다. 너무 달라서 비교할 수 없다. NBA 팬이라면 이들의 그림자만 봐도 누구인지 알아낼 수 있다. 마이클 조던과 샤킬 오닐은 모두 자신의 방식으로 팬을 열광시켰다. 그런데, 인간의 신체 능력을 월등히 능가하는 로봇이 나타나서 농구를 하게 되었다고 가정해보자. 완벽에 가까운 이 로봇들은 샤킬 오닐처럼 몸싸움을 한 후 마이클 조던처럼 슛을 성공시킬 것이다. 5명의 선수들이 모두 같은 능력치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포지션에 상관없이 미리 정해진 알고리즘에 따라 플레이를 하게 될 것이다. 재미없어도 어쩔 수 없다. 상대팀도 이기기 위해 같은 선택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플레이는 화려하겠지만 천편 일률적이다. 로봇이 이미 한 발을 떼는 순간 어떤 플레이가 일어날 지 알게 될 것이다. 어쩌면 점프볼을 하는 순간 게임 결과가 예측 가능할지도 모른다. 10명의 초인들의 플레이는 완벽할 지언정 재미가 없다.


스포츠가 재미있는 이유는 우리가 완벽하지 않기 때문이다. 완벽하지 않은 사람들이 조합을 이루어 이 조합 안에서 최선의 플레이를 하며 스포츠가 재미있어 진다.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기에 아름답다. 지기만 하는 경기가 재미없듯, 이기기만 하는 경기도 재미없다. (프로야구 선수와 초등학생 야구선수의 경기를 누가 보려고 하겠는가?)


바야흐로 AI 시대이다. 완벽에 가까운 무엇가가 등장하여 인간을 대체하기 시작했다. 직장이 사라지는 것 만큼이나 아름다움이 사라질까 걱정이다. 인간의 아름다움이란 결국 완벽하지 않은 인간이 완벽함을 추구하는데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미 그 자체로 아름다운 것은 처음에는 감탄스러울지 몰라도 곧 흥미를 잃고 말 것이다. 마방진에 이기기 위해 다양한 숫자를 사용하여 최선을 다할 때 아름다운 것이지, 가운데 숫자 하나만 남겨놓고 완벽하다고 하는 것은 전혀 아름답지 않다.


영화 <승부>에서 이병헌의 모델이었던 조훈현 기사의 인터뷰가 인상적이러서 몇 글자 끄적거려보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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