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고전
현재 롯데시네마에서 "오만과 편견" 상영중이다.
이동진이었던가, 아니면 김혜리였던가,
"요즘 극장가는 TV처럼되고 있다."
라고 말한 것을 들은 기억이 있다. (기억은 정확하지 않고, fact를 찾아보기는 귀찮다.)
극장가에 불황이 오자 과거에 성공했던 영화들을 큰 스크린으로 상영해 주는 일이 잦아졌다. 새 영화가 실패하느니 예전에 성공했던 영화를 여러편 상영하는 전략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작년에 난 롯데시네마에서 죠스를 관람했고 ET를 관람했고 대부 1,2를 관람했다. 영화관에서 관람할 기회를 놓쳤던 스테디셀러들은 큰 스크린으로 관람하는 재미가 있다. "오만과 편견"도 그 중 하나이다. 물론 "오만과 편견"이 대부급의 영화는 아니지만 "로마의 휴일"급의 영화는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를 말할 때 원작 소설에 대해 원작 소설에 대해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제인 오스틴은 18세기 사람이다. 1775년 생이다. 그녀의 가장 유명한 책 "오만과 편견"은 1813년에 출판되었다. 오래전 책이지만 우리는 여전히 이 소설을 좋아한다. 고전이기 때문이다. 고전이란 시간과 공간을 뚫고 살아남은 소설을 의미한다.
오만과 편견의 주인공은 둘째 딸인 엘리자베스이지만 사실 소설 속의 모든 딸들은 조금씩 제인 오스틴을 닮았다. 그녀는 로맨스를 꿈꿨고, 사람들 앞에서 인정받는 것을 좋아했고, 부자와 결혼하고 싶어했다. 그런 그녀의 욕망들이 조금씩 나뉘어서 "오만과 편견"에 나오는 딸들에게 반영되었다. 제인 오스틴의 아버지는 목사였고 아버지를 사랑했지만, "목사" 아버지는 미움의 대상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런 아버지의 사랑스러운 모습과 이상한 모습들도 소설에 각각 다른 캐릭터들을 등장시켜 보여준다. 가족은 언제나 누구에게나 애증의 대상이다.
영화 "오만과 편견"은 이런 제인 오스틴의 소설을 너무도 잘 표현했다. 특히 키아라 나이틀리는 매력적인 젊은 여성 (다른 표현을 찾기 어렵다)의 연기도 아카데미 주연 여우상 후보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때로는 형편없는 남자들을 경멸하고, 때로는 매력적인 남자에게 빠져드는, 멋진 로맨스를 꿈꾸는 19세기의 20대 여성에 대한 그녀의 표현력은 탁월하다.
영화가 소설을 스크린으로 옮기는데 문제가 있었다면 원작의 설정상 키아라 나이틀리가 연기하는 엘리자베스는 로자먼드 파이크가 연기하는 제인보다 못생겨야 하건만 영화는 그렇지 않다. 키아라 나이틀리는 로자먼드 파이크보다 예쁘다. 그래서 그녀의 어머니가 언니인 제인을 부자에게 먼저 시집보내고 엘리자베스를 대충 아무에게나 시집보내려 한다는 설정이 설득력이 없다. (내 생각이다.) 누가봐도 이 영화에서 가장 예쁜 배우는 키아라 나이틀리이다. 어쩌면 내가 로자먼드 파이크를 볼 때 마다 "나를 찾아줘"가 생각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반박한다면 당신 말이 맞다.)
"오만과 편견"은 참 재밌다. 영화와 소설 모두 재밌다. 캐릭터들의 매력으로 수많은 우연이 발생한 사건들을 돌파한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 로맨스 소설답게 독자들이 꿈꾸는 로맨스가 이루어진다. 예상치 않은 반전이 있었다면 이 소설은 독자들의 선택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소설의 핵심은 로맨스가 아니라 로맨스가 이루어지기 위하여 주인공들이 "편견"을 극복하는 과정이다. 첫인상은 언제나 잘못될 수 있음을 깨닫고, 자신의 틀렸음을 틀렸다고 당당히 인정하는 얼마나 멋진 사람인지 보여준다.
제인 오스틴은 1817년에 사망했다. 42세란 너무 젊은 나이에 사망했다는 것이 인류의 비극이다.
추측하건데 당시 30대 작가였던 제인 오스틴은 "오만과 편견"을 걸작으로 만들 욕심이 있지 않았을 것이다. 많은 독자들이 사랑하고, 자신이 원하는 로맨스 소설을 쓰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소설은 고전이 되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사랑받는다.
이 소설이 고전이 된 이유는 18세기 영국 여성들이 남자를 만나기 위해 댄스 파티에 가고, 잘생긴 부자에게 시집가는 것이 인생의 목표였기 때문이 아니다. 그 당시에도 부자들에게 주늑들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당당히 말하고, 자신이 원하는 사람을 직접 선택하는 주체성을 가진 사람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그 당시에도 엘리자베스 같은 여성이 있었을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이 소설은 판타지가 아니고 주인공의 매력은 지금도 유효하다.
아마 100년 후에도 사람들은 같은 이유로 이 소설을 좋아할 것이고, 인류가 생존하여 "영화"라는 매체가 살아남는 한, 우리는 이 소설의 또 다른 리메이크를 보게 될 것이다.
P.S. 초등학교 4학련 때 "레미의 일기" (혹은 "래미의 일기") 라는 소설을 보면서 주인공 레미라는 소녀에게 빠져든 기억이 있습니다. "레미의 일기"는 고전이 되지 못했기에 절판되었습니다. 혹시 그 소설을 다시 어디서 찾을 수 있는지 아시는 분 제보 부탁드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