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엔 까미노.
#18
정신없이 시간이 간다. 어제는 많은 일이 있었다. 아침부터 느지막이 일어나(6시 반이 넘어서 일어나면 늦은 시간이다) 다른 순례자들과 출발하지 않고 혼자 출발했다. 이래저래 또 순례길에서 마주치게 될 테니 일단 오늘 일정은 혼자 가자 싶었다. 제대로 된(?) 일정의 첫날이란 생각이 들어서...
계단을 단숨에 내려왔더니 해가 뜨고 있었다. 빨갛게 물든 하늘이 오늘도 열심히 걸어보라며 응원이라도 하는 것처럼.
해변 쪽으로 걸어오니 어제 머물렀던 숙소가 얼마나 높은 곳에 있었는지 단번에 느껴졌다. 고도가 높은 만큼 날씨도 꽤 쌀쌀했었다.
한 시간가량 걸었더니 출출한 느낌이 들어서, 늦잠을 잔 탓에 물도 한 모금 하지 않고 나와버려서, 가장 먼저 눈에 보이는 카페에 들어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에그 타르트와 카페 라테 한 잔을 시키고 크레덴시알에 도장도 받았다. 세 번째 먹는 에그 타르트는 그 맛도 세 번째였던 것으로�
눈이 지루할 새 없는 풍경들을 마주하며 길을 걸었다. 시시각각 바뀌는 바다와 그에 견주기라도 하는 듯 파란 하늘, 하전하다 싶으면 '부엔 까미노'를 외치며 지나쳐 가는 사람들. 확실히 해안길이 운치가 있다. 옥수수밭보단 파도치는 바다가 더 매력적이다.
약간 따끔거린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발 뒤꿈치가 까졌었나 보다. 물 마시려고 쉬면서 발에 열기를 빼주려고 신발을 벗었더니 피가 묻어있다. 여러모로 고생하고 있는 내 발이다. 더 이상 트래킹화를 신기에는 조금 무리인 것 같아서 갈 길은 멀지만 슬리퍼로 바꿔 신기로 했다. 새로 산 양말은 새 신발에 자기 몸을 맞추듯 껍질이 일기 시작했다. 신발의 내구성이 양말보다 강한 탓이다. 슬리퍼를 신고 정처 없이 걷다 보니 어제 같은 숙소에서 잤던 아이가 말을 건다. 독일에서 온 아니카, 독일 사람이라는 독특한 느낌이 있었는데 맞다. 30살이라는 그녀는 원래 하던 일을 그만두고 공부를 하기 위해 1년짜리 프로그램에 지원을 해놨단다. 베를린에서 하는 프로그램이고 국제개발과 관련된 학과인데 경쟁력이 아주 높은, 혹시 만약이라도 뽑히지 않는데도 베를린에 갈 거라며 오랫동안 그러고 싶었단다. 여성으로 태어나서 아이를 가지는 것, 입양, 봉사활동 등 폭넓은 대화를 나눴다, 말하는 것의 지분은 그녀가 다분히 컸지만. 불어보단 스페인어가 훨씬 매력적이라며 고등학교 때 불어를 가르치던 교사가 좀 더 매력적이었다면 어떻게 됐을지 모르겠다며 뜬금없는 얘기도 한다. 본인을 white potato 또는 white sausage라며 자기 비하 아닌 자기 비하를 하길래 무슨 뜻인지 자세히 물어봤다.
그러다 도시락을 먹겠다 그래서 안녕을 고하고 걷고 걷고 또 걸었다. 해안길은 참 매력적이다. 이리 오길 잘했다. 하지만... 목적지가 보이질 않는다. 일단 배가 고프니 밥을 먹어야겠다, 앞으로 보이는 곳에 들어가야지. 구글맵으로 검색했더니 리뷰 점수 4.6점의 높은 식당이 바로 앞에 있다. 아묻따 들어가야지... 밖의 테이블은 만석이다.
순례길에서의 더 생생한 이야기는 아래의 유튜브로!
https://youtube.com/@humanveingsclu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