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Oia의 알베르게.

by 널리

#23


오늘 일정은 A Guarda라는 곳에서 Oia라는 곳으로 가는 일정으로 '카미노 닌자' 앱에 따르면 12.3 km로 아주 짧은 거리다(보통 하루 일정은 대략 20-25 km 일정으로 잡기 때문이다). 아침에 조금 늦게 출발하기도 했고 어제 너무 스펙터클 하게 하루를 보낸 탓에 오늘은 조용한 바닷가 마을로 가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그게 Oia라는 곳이다.


좀 심심한 마음에 스피커로 노래를 들으면서 흥얼거리고 왔더니 조깅을 하던 누군가 '귿잡!'이라며 지나간다! 부끄러운 마음 반, 괜히 반가운 마음 반에 '귿모닝!'이라고 크게 외쳐본다. 힘을 내고 싶을 땐 노래 부르는 게 꽤 도움이 된다. 꽤 시간이 지나고 그녀가 다시 돌아서 오길래 잠시 인사를 나눴다. 어딜 가냐며... 그녀는 아일랜드 사람인데 잉글랜드에 살다가 지금은 여기 터를 잡았다고 했다. 그래서 '두블린(Dublin의 현지식 발음)'이라고 했더니 맞다며 웃는다. 조심해서 잘 가라며 짧은 대화를 마치고 다시 길을 나섰다. 바다를 보고 걷는 건 전혀 지루하지가 않다. 보고 또 봐도 신비롭다. 계속 바뀌는 그 모양과 색에 넋을 놓고 걷고 걷고 또 걸었더니 도착지다.


알베르게 간판이 있길래 2층으로 올라갔더니 회색털이 부슬부슬한 개가 마중을 나온다. 짐짓 아무렇지 않은 듯 손으로 쓰다듬고 있으려니(긴장 모드) 밑에 층으로 가야 한다고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 소리친다. 알겠다고 하고 밑으로 내려가 벨을 눌렀다. 나이가 지긋하신 분이 잘 왔다며 잠시만 기다리란다. 카미노에서 오다가다 만난 여자애의 안내를 하고 있던 중이었기 때문이다. 일단 가방을 내려놓고 식탁에 앉았다.


조금 있다 호스트분이 웰컴 드링크로 맥주, 콜라, 커피가 있는데 뭘 마시겠냐고 물어봐서 웰컴 드링크도 있냐며 그렇담 콜라를 마시겠다고 했다. 이층으로 올라가더니 냉장고에서 갓 꺼낸 콜라를 건네주시고 내가 앉아있던 자리 옆에 앉으신다. 본인은 미국인 친구를 도와주고 있다며 독일 사람이란다. 알베르게가 너무 이쁘다고 하자 친구가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며 으쓱해하신다. 방을 보여주는데, 이게 현실인가 싶을 만큼 이쁜 풍경에 입이 다물어지질 않는다. 바닷가가 그대로 보이는 침대라니. 나보다 먼저 온 친구는 반대편 침대를 선점했으므로 이 침대가 내 침대다:) 너무 마음에 드는!!!!!

이 알베르게가 좋았던 점은 너무 많지만, 꼽아보자면

1) 아름다운 데코레이션

2) 바다가 바로 보이는 침대

3) 웰컴 드링크의 따뜻함(오랜 시간 걷다가 콜라 한잔이면 할 말이 없다! 그냥 모든 피로가 사라짐)

4) 거주하는 집을 개조한 것이므로 화장실이 좋다

5) 세탁기와 드라이어가 무료

6) 식탁에서 조용히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이 외에도 너무 플러스 요인이 많았던:)


한숨 잠시 눈을 붙이고 일어나 내 침대 바로 옆 창가로 보이던 식당을 찾아갔다.


바람이 불지만 아까 낮에 보았던 풍경이 너무 좋아 굳이 밖에 자리를 잡았다. 나 말고 두 명의 여성분들이 뒤에 앉아 도란도란 얘기를 하며 음식을 드시고 계셨다.


생선 요리 중에 추천을 해달라고 했더니 Turbot(대문짝넙치) 추천해 주시기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달라고 했다. 그리고 와인도 한 잔:) 먼저 가져오신 와인을 아주 조금 따라주시고 테이스팅을 했더니 맛이 괜찮아서 이걸로 하겠다고 했다. 지는 태양을 멍하니 바라보며 적당한 백색 소음과 함께 와인이라니! 바람이 좀 불지만, 괜찮다. 이 온도, 습도, 음식 하는 냄새, 3박자가 딱 맞다!


튀기듯이 구워진 넙치는 포슬포슬한 감자와 그릴에 살짝 구운 호박과 잘 어울린다. 뼈가 커서 발라먹기에도 용이하다. 같이 서빙되는(손대면 돈을 내야 하는) 빵도 맛있다. 겉은 딱딱하지만 속빵은 부드러워 손으로 뜯어먹는 재미가 있다. 더할 나위 없는 식사였다. 만족스럽게 한 끼를 먹고 맛있었다고 했더니 자기들이 더 고맙단다, 이렇게 친절하기 있기없긔?!!!

어둠이 깔리고 집으로 들어와 아까 사뒀던 맥주 한 잔에 옥수수맛 안주를 곁들였다. 그리고 두 번째 동영상 편집을 마무리했다. 오늘은 아침부터 하루가 완벽했다. 몸도 마음도 정화되는 느낌. 나는 혼자만의 시간도 꽤나 잘 즐기는 사람인가 보다 다시 깨달으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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