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길에서 만난 두 번째 한국인 부부.
#28
숙소로 돌아와서 한국인 두 분을 뵀다. 아빠엄마보다 조금 젊은 부부. 아내분이 가기로 한 까미노를 굳이 굳이 남편분이 따라왔다면서 ㅎㅎㅎㅎㅎ
이런저런 경험을 나누며(불과 며칠 밖에 되지 않은 까미노이지만 하루하루가 에피소드 모음집이라 각자가 뱉어내는 얘기가 많다) 수다꽃을 피우고(까미노에선 모두 다가 그리 깊이, 또는 얕게의 개념 없이 대화가 가능한데, 모두가 순례자라는 동등한 입장을 가지는 게 그 이유일지도) 있다 저녁을 먹으러 가신다길래 대략 이 쪽으로 가시면 식당 한 곳이 나올 거다 말씀드렸다. 난 점심을 너무 거나하게 먹어 저녁은 갖고 있던 수프를 먹을까 싶던 차여서 같이 가자는 걸 극구 사양했다.
그리고 남은 시간 잠시 짬을 내어 동영상 편집을 하고 비디오 하나를 업로드했다!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린다. 특별할 것 없는 편집인데도 자막과 싱크를 맞추고 사진을 고르고 사진에 제목을 붙이는 것들이. 게다가 아직 프리미어 다루는 게 영 서투르다 보니 어떤 메뉴에 어떤 기능이 있는지 헷갈려 왔다 갔다를 끝없이 반복했다. 비디오가 업로드되길 기다리고 있는데 부부 중 남편분이 내 방에 찾아오셔서 시간 있냐고 묻길래 비디오만 올리면 시간 괜찮다고 잠시만 기다려달라 했다. 비디오가 다 올라가고 내려갔더니 식당이 안 보이더라면서 그 방향이 맞았었냐 묻기에(맞는 것 같은데 싶다가 내가 방향을 잘못 안 건가 싶어...) 말씀드렸던 레스토랑을 구글맵에 찾아봤더니 일요일은 18:00에 문을 닫는다고 나와있다!
그렇게 말씀드렸더니... 그러냐고... 굉장히 침울해하시기에 뭘 좀 도와드릴까 여쭸더니 옆 테이블에 앉아있던 사람들의 피자를 보며, '피자라도 시켜 먹어야 할까 봐요'라길래 주인장에게 물었더니 10유로에 한판인데 한판을 시키면 한판을 무료로 준단다(1+1인가 뭔가...). 그리 설명을 드렸더니 두 판은 너무 많지 않냐고 우왕좌왕...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인데 어쩔 줄 몰라하길래 그냥 아무 말도 않고 있었다. 그러더니 슈퍼마켓이 어디인지 좀 찾아달라기에 구글맵을 보니 1.4 km 거리에 있어 찾아가실 수 있겠냐 물었더니 엄청 곤란해하신다. 비디오도 업로드했겠다, 오늘 그리 오래 걷지도 않았겠다 산책 삼아 같이 가드리겠노라 했더니 엄청 좋아하신다. 가는 길에 구글맵을 어떻게 사용하는지도 가르쳐드리마 했다.
일단 주인장에게 구글로 찾은 곳이 24시간 영업하는 곳이 맞냐 재차 확인하고(주유소에 붙어있는 곳이라 그렇다는 답변을 받고) 길을 나서려 하는데 아내분은 가시지 않으시겠단다. 발을 절뚝거리고 있었기도 했고 뭔가 남편분을 따라가기 귀찮아하시는 듯한. 그럴 수 있겠구나 싶어 남편분이랑만 가기로 했다. 그리고 구글맵을 켜고 어떻게 사용하는지 알려드렸다. 팔을 벌려 파란 부분의 각이 가리키는 방향이 우리가 걷고 있는 방향이라며 설명을 해드렸는데 감이 안 오는 것 같아 가는 길에도 몇 번을 알려드렸다(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노안으로 사람만 보이고 그 파란각이 처음엔 잘 안 보여서 무슨 말인가 싶으셨단다. 한 번 인지하고 나니 구글맵이 그리 쉬울 수 없더라며... 아... 사람만 보일 거란 생각을 못했던 터라 그럴 수도 있었겠구나 싶었다).
이렇게 적어놓고 보니 엄청 민폐형 아저씨 아닌가 싶을 수도 있는데 그렇지 않았다. 그리고 뭔가 그런 모습이 아빠가 연상되기도 하여(물론 우리 아빤 타고난 인디아나 존스형이라 모르면 몸을 움직여 해답을 찾는 부산 사나이다. 뭔가 저런 상황이어도 혼자라도 뭔가 해봤을 법한...) 약간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아내분은 그냥 여느 때나 그러는 것처럼 그러려니 하고 계신 걸 보니 성격이신가 보다 싶었지만, 그냥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일었다. 그리고 순례길을 걸으면서, 또 다 걷고 든 생각이지만 순례자들은 무조건적으로 도움을 주려고 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 나중에 얘길 하게 되겠지만, 크리스틴이나 이름 모를 물리치료사 부부나... 그러니 나도 순례자로서의 역할을 어느 정도 한 셈이다.
그렇게 왕복 3 km를 갔다 오면서 각종 소시지와 초코바를 사서 돌아왔다. 초코바는 이틀 뒤 죽을 것 같던 시점에 엄청난 힘이 되어 줬었다. 그러고 보니 그거에 대해 고맙단 얘기를 안 해드렸네...
소시지를 구워 어제 이고 지고 왔던 맥주 한 캔과 함께:) 다행히(?) 두 분은 맥주를 드시지 않으셔서(?) 편하게 마실 수 있었다. 즐거운 인연이 또 생겼다.
순례길에서의 더 생생한 이야기는 아래의 유튜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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