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ntevedra로 가는 길.
#29
아침 일찍 일어났다. 오랜만에 아침 식사를 제공하는 알베르게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먹고 가는 게 인지상정! 내려갔더니 작은 키친과 다이닝 공간에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 간단하게 토스트와 각종 잼과 버터, 시리얼과 우유 등이 놓여 있다. 커피 한 잔과 토스트 하나, 버터와 딸기잼을 골라와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때부터 크리스틴과 눈인사를 주고받았다. 그리고 그게 인연이 되어 가는 곳마다 마주치고 중간에 무릎이 삐끗한 내게 콤피드(만병통치약?)를 계속 내어주던! 한국인 부부도 식사를 하러 오셨다. 앞에 다른 식탁에 앉아 홍콩인에게 잘 잤냐며 인사를 건넸다. 그도 그럴 게 하얀(?) 사람들만 어딜 가도 드글대다보니(?) 같은 피부의 사람들이 아주 가끔 섞여있으면 눈이 가고 마음이 가는 게 등연지사라. 그리고 뭔가 굉장히 오픈마인드일 듯한 외모가 마음에 들었다. 잘 잤다며 자기와 자기 친구는 딱 일주일만 걷기로 했다며 오늘이 그 시작점이란다. 그렇다, 순례길을 정해진 일정도 정해진 구간도 없이 오로지 '나'에게 맞추어 재단할 수 있다. 이게 또 우리네 인생과 일맥상통하는 것 같아 나만의 깨달음을 주는 듯한 포인트가 된다. 모두가 인증서를 받길 원하는 것도 아니다, 제 인생에 짬을 내어 그저 걷기 위해 왔다는 사람들. 재빨리 식사를 마치고 길을 나섰다. 8시 반 정도 동이 틀 시간이라 7:57분인 지금 밖은 아직 어둠이 짙다. 조금 두려운 마음으로 길을 나서기 위해 문을 열자마자 다른 순례객들이 지나가는 것이 보인다. 그들의 보폭에 나의 보폭을 같이 한다.
한참을 걷다 화살표가 보이질 않아 지도를 봤더니 다른 길로 가고 있었다. 아침에 일찍 나오느라 화장실을 제대로 못 가서 배도 아프고 다시 돌아가려니 한숨만 나온다. 그래도 어쩔 도리가 없어 되돌아갔다. 10여 분을 걸었더니 카페가 있기에 아묻따 가방을 내려놓고 밑에 층에 있는 것으로 보이는(?) 화장실로 돌격했다. 그리곤 시원한 마음으로 바에 앉아 Cafe solo(에스프레소)를 한 잔 시켰다. 숨을 돌린 후 지도를 보니 이 잎에서 왼쪽이 아닌 오른쪽으로 갔어야 했다. 에스프레소를 들이켜고 나오는 길에 봤더니 아까 보이지 않았던 화살표가 눈앞에 보였다. 어두워서 보이지 않던 게 해가 뜨면서 보이게 된 것.
그리고 걸었다. 포르투갈에서 스페인의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공기가 조금씩 차가워진다.
한참을 걷다가 누군가 내 어깨를 톡톡 두드린다. 뭔가 싶어 봤더니 어젯밤 같은 숙소에서 묵었던 딱 봐도 스칸디나비아일 것 같은 비주얼의 소녀다(소녀라고 해도 20-25 사이일 듯한). 제대로 통성명을 나누지 않았기에 내 표정은 약간 갸우뚱하게 변한다. 그리고 그녀가 내게 하는 말 '너희 부모님이 너 찾으시던데??'라고! 어제 한국인 부부분들이랑 계속 같이 있는 걸 봤었는지 그분들을 우리 부모님으로 알았나 보다. '응? 나, 혼자 왔어'라고 했더니 그들이 우리 부모님인 줄 알았다며 아침에 나를 찾는 걸 봤다고. 그리곤 쿨하게 부엔 까미노라고 하고 자기 갈 길 가는 그녀. 나는 혼자 빵 터졌는데!
숲 속 길과 공사장을 번갈아 걷다 보니 바닷길과는 달리 숨이 차올랐다. 그러다 톨스틴이라는 독일 사람과 함께 됐는데 앞에 톨이 thor(토르)의 톨이라며 소개하는 그는 포르투갈에 살고 있다고 했다. 영적인 믿음과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그런 일을 하고 있다며, 영국에서 일을 하다 모든 프로젝트를 포르투갈로 옮겼단다. 자신은 신이라는 특정 존재를 믿지 않지만 신이라 규정할 수 없는 존재를 믿고 있긴 하다며 나와 같은 생각을 하기에 꽤 흥미롭게 얘기를 나눴다. 얘기를 나누며 내려오는 길에 갑자기 무릎이 삐걱거렸다. 난생처음 느껴보는 느낌, 뭔가 뼈가 맞지 않는 것만 같은? 걷는 데는 큰 무리가 없기에 그냥 잠시 삐끗했나 싶었다. 사람들이 무릎 나간다라던 게 이런 느낌일까... 즐거운 대화에 나도 모르게 그의 속도에 내 속도를 맞춰서였을까, 숲 속에서 발이 아파 잠시 갈아 신었던 슬리퍼가 문제였을까.
한참 얘기를 나누다 본인은 순례길과 아주 조금 떨어진 곳에서 맥주를 한 잔 하고 가고 싶다기에 그러라고 했다. 나는 목이 마르지 않았을뿐더러 일찍 나온 김에 남들보다 조금 빨리 알베르게에 도착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인사를 고하고 다시 길을 나서다 작은 성당이 있어 앞에 벤치에 앉았다. 무릎을 살펴보니 이상은 없는데 어떤 순간순간들에 뼈가 맞지 않는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절뚝거리며 숲 속 길을 걷다 보니 여러 사람들이 괜찮냐며 묻고 그중에 한 커플은 영어가 통하지 않았지만 짐작건대 남편이 물리치료사라며 제대로 보행하는 법을 알려주고 갔다(이들은 순례길이 끝날 때까지 계속 마주치며 내게 괜찮냐 물어봐준 이들이다). 그렇게 거의 'Pontevedra'라는 곳에 다 달았을 때 초입에서 잠시 주저앉았다. 그리 쉬고 있었더니 먼저 쉬고 있던 크리스틴이 내게 괜찮냐며 걸을 수 있겠냐 물었다. 조금 쉬면 낫겠지 싶은 마음으로 알베르게가 불과 10여 분 거리에 있다며 인사를 고했다. 한숨 쉬다 절뚝거리며 알베르게를 찾아갔더니 바로 앞에서 타월을 받아 들고 체크인을 하고 있던 크리스틴. '크리스틴, 아이 갓츄'를 외치며 내가 왔음을 알리니 타월을 챙겨들며 인사를 한다. '오~ 이 알베르게엔 타월도 제공이야?' 물었더니 '1유로에 행복을 샀어. 이게 자본주의의 힘이지'란다.
체크인을 하고 짐을 정리해 두고 잠시 멍하니 있었다. 여러 개의 침대 중 크리스틴과 함께 미국에서 오신 여자분이 인사를 한다(이름은 까먹었다). 본인은 순례길이 세 번째라며 무슨 순례길 바이러스에 감염된 건 아닌가 하는 너스레를 떤다. 그리고 맞은편 침대는 한국인이 부인이라는 이탈리아의 나이 지긋한 신사분. 아침에 전 와이프가 한국이라던 이탈리아 남자분(정신없던)과 인사를 나눴는데 오늘은 무슨 이탈리아 사람들 만나는 날인가 보다 싶다. 조금 멍하니 있다 이러면 안 되겠다 싶어 점심을 먹으려고 알아봤다. 힘도 들고 무릎도 아프니 초밥을 먹을까 싶어 길을 나서는 와중 아침에 인사를 하고 나온 한국인 부부가 걸어오고 계시기에 반갑게 인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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