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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널리 Mar 05. 2023

역마살이 내게 준 선물

해외여행의 시작점, 호주

내 인생의 (해외) 여행이라는 주제를 잡고 글을 쓰기로 한지 한 달이 지났다. 그동안 머릿속으로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가장 오래 머물렀던 곳이 좋을까 가장 많은 여행을 했던 곳이 좋을까 고민하다 결국은 연대기순으로 써내려 가보기로 결정했다.


가장 처음 해외 여행지는 호주. 2002년 대학생 입학 전 연년생 언니와 떠났던 여행. 그땐 영어도 하나도 못해서 한국인 백패커스들과 함께 떠났었다. 여행을 리드하는 영어가 좀 되는 인솔자 백패커와 세네 명의 한국인들. 총 여섯일곱 명의 2, 30대 한국인들이 떠났던 여행이었다. 곳곳의 호스텔을 경유하면서 브리즈번에서 시드니까지의 루트로!


지금 생각해 보면 뭐, 그리 대단한 일이겠냐만은 그때는 정말 hi, how are you? fine, thank you 정도의 영어를 하던 아주 작고 어렸던. 언니 뒤 졸졸 따라다니던 나라서 참 웃픈 에피소드들이 많았었다.


영어가 익숙지 않았던 것.

외국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았던 것.

타인과의 만남에 극도의 쑥스러움을 탔던 것.


이 세 가지가 내가 가진 약점이었고,


영어를 못하지만 용기가 넘쳤던 것.

외국 음식이 입에 맞지 않지만 다른 건 꽤나 잘 먹었던 것.

그리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다른 사람들과 잘 지내는 것.


이 세 가지가 내가 가진 강점이었다.


20년이 지난 여행에서 생각나는 건 그리 많지 않다. 그때를 제외하고 호주에는 한 번 더 머물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처음 갔던 호주 여행에서 테이블 마운틴을 갔었는지도 기억이 잘 안 날만큼 난 첫 여행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몇 가지 어렴풋이 기억나는 건, 마지막 여행지였던 시드니에서 백패커스들과 시내 구경을 하며 언니와 다른 언니가 갑자기 사라져서, 당시엔 휴대전화도 달리 연락할 방도도 없었다, 몇십 분을 노심초사하며 기다렸던 기억과 한참을 기다리다 언니 일행이 얼굴을 비췄을 때 보자마자 바로 울음이 터져버렸었다. 피붙이를 찾았다는 안도감과 걱정을 시킨 언니에 대한 짜증이 한꺼번에 몰려와서. 언니와 다른 언니는 그저 마음에 드는 물건이 있어 구경하느라 조금 늦었던 것뿐이었는데 갓 스무 살이었던 나는 호주라는 큰 땅에서 언니를 잃어버렸단 생각에 오만생각을 다하고 있던 찰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호주에 막 도착해서는 고수(코리안더, 샹차이, 돈약빠따 등의 이름으로 불리는 마성의 향채) 냄새를 못 견뎌 중국 식당은 입구 안에도 들어가질 못했다. 일부 현지 음식점에서도 같은 향이 풍기면 들어가질 못해 혼자 햄버거로 식사를 때워야 하기도 했다. 지금이야 고수는 없어서 못 먹는 채소이지만 처음에 빨랫비누 향 가득 풍기는 그 채소가 너무 싫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치우고 먹는 걸 자리를 옮겨가며 키즈 런치 메뉴 등을 먹어야 했던 설움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기억에 남는 건 인종차별. 지금에야 아시아인들도 많고 한국이란 나라의 위상이 높아져 조금 덜해졌겠지만(여전히 무지한 사람들도 있긴 하지만) 그때만 하더라도 호주의 일부 백인들은 인종차별을 대놓고 했었다. 불행 중 다행인 건 영어를 잘 못해서 아무 생각 없이 스치는 경우가 많았는데 한 달 여간의 여행으로 귀가 조금 트였던 어느 날. 술집을 지나가다 백인 두 명이 우리 일행을 보고 욕을 발사했던 그 순간, 어린 마음에도 불평등이 심하다 느꼈는지 대들었다가 일행들의 저지로 일단락이 되었던 일. 지금 생각해 보면 겁이 없었던 것 같기도 그때부터 불평등에 목소리를 냈던 것 같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이 똥이 더러워서 피하지 무서워서 피하냐의 마인드가 내게는 없었던 것 같기도...


어쨌든 나의 첫 해외여행은 그렇게 세 가지의 에피소드만 짧게나마 기억이 나지만 그 이후 한국이 아닌 외국이라는 미지의 곳에 대한 호기심이 커졌던 것 같다, 그런 탓인지 이제는 한국보다 해외에 있는 기간이 길어진 삶을 살고 있고. 호주를 시작으로 떠났던 해외여행의 두 번째는 아마도 필리핀의 바기오라는 여느 필리핀과는 다른 선선한 날씨의 시골이었던 곳. 내 생에 필리핀을 세 번 갔었는데 그 첫 번째 이야기를 이어서 해보려 한다. 내 생각의 전환점이 있었던 그곳(두번째로 갔던 그곳에서), 기대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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