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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 Gwon Sep 13. 2024

예술병에 빠져 유럽 여행을 가다

이탈리아 & 프랑스 & 스위스  - 2017


'여행'이라는 게임


여행을 왜 좋아하게 된 걸까?

첫 해외여행으로 기타큐슈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나는

어떤 힘이 나를 끌어 당기듯 다음 항공권을 검색하고 있었다

늦바람이라도 부른 것 일까

앞으로 기회가 생기기만 한다면 돈을 모아 해외로 떠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가장 먼저 불필요한 만남을 줄이기로 했다

만남이 있어도 더 이상 맛집을 찾지 않았고

예전보다 자주 만나지 않자 나에게 서운한 친구들은 나를 떠나보냈다

더 이상 옷을 의무적으로 사지 않았으며

지출 계획표를 처음으로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인생에서 여행이라는 게임에 빠지게 되었다





유럽이라는 환상으로


친구와 유럽 여행을 가기로 했다

친구는 대학교에서 만난 동기였고

졸업하고 만난 적도 없었지만

몇 년이 지난 우리는 현실에 지쳐있었고

서로가 떠나자고 먼저 말하길 기다린 것처럼

우리는 빠르게 항공권을 예약했다


유럽은 예술을 좋아하던 나에게 환상의 장소였다

대학시절 시를 배우던 그때

예술가가 되겠다고 예술병에 빠져

나는 언젠가 시인이 되어 파리에 가서 시를 쓰고야 말겠다는 그런 상상에 빠지곤 했다

졸업을 하고 취업을 했고 이제는 더 이상 시를 쓰지 않았지만

마음 속 한 켠의 있던 그 다짐들이 아직 꿈틀거리고 있었다


베이징 공항에서 9시간 대기




악몽 같은 베이징 공항


우리의 비행 일정은

인천 - 베이징 경유 - 취리히(경유) - 베네치아로 베이징 중국항공을 이용했다

우리는 중국이 처음이었고 장기 비행과 경유 또한 처음이었기 때문에

영어와 중국어를 잘할 줄 몰랐던 우리이게 많은 실수가 있었다

아마도 이때쯤부터일까

이 여행은 순탄치 않을 것이란 걸


베이징 공항에 도착한 우리는

긴 대기시간으로 인해 베이징에 스톱오버 관광을 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게 웬걸

위탁수화물을 다시 부쳐야한다며

표를 다시 뽑아야한다며

이 곳이 아니라며 다시 보안검색을 받으라며

어느 순간 우리는 공항직원에게 특정자가 되어 목걸이 패증을 걸고

가을인데도 땀을 뻘뻘 흘리며 공항 이곳, 저곳을 누비고 있었다

시계를 보니 4시간이 지나있었고 스톱오버는 무슨

공항의자에 앉아 모든 절차가 무사히 끝내기 만을 바랄 뿐이었다  


메쉬 포테이토 비프 기내식
기내에서 음주 무한 리필


베이징 공항에서 이리 저리 치였더니

다행히도 우리는 스위스 취리히로 떠나게 되었다

저가 항공사라 그런지 자리가 매우 불편했지만

그때의 나는 젊었고 유럽이라는 도파민에 이미 마음은 들떠있었다

인생의 첫 기내식과 음주는 그야말로 꿀맛이었다

어느새 취기가 올라왔고 나도 모르게 잠에 빠져들었다




이탈리아 베네치아로


취리히에 도착하고 환승을 통해 우리는 바로 이탈리아 베네치아로 날아갔다

환승 비행기는 스위스 항공으로 유럽의 공항 절차는 중국 공항과는 다르게 순탄하게 흘러갔다


베네치아에 도착하니 어느새 노을이 지고 있었고

우리는 숙소에 체크인하고 베네치아 섬을 둘러보기로 했다

우리는 내일 로마로 떠나야하는 빡빡한 일정이었기 때문에

서둘러 짐을 풀고 숙소에 나왔더니 벌써 밤이 되어있었다


베네치아의 밤 - 2017
베네치아 광장 거리


베네치아의 밤은 생각보다 베네치아답지 않은 광경이었다

뭔가 이 곳을 떠올렸을때 밝은 하늘과 출렁이는 물가 사이로 사람들이 여유롭게 쉬고 있는 그런 모습을 꿈꾸고 왔지만

밤이 되자 시야가 좁아져서 그런지 조그만 섬의 작은 도시 같은 느낌이었다

우리는 먼저 이곳에서 유명한 프리토 인(Frito Inn)에서 해산물 튀김을 먹었다

(너무 오래돼어 사진을 찍었지만 없는 그런...)

한 입을 먹고는 지중해 소금은 엄청 짜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신선한 튀김과 소금과 후추밖에 뿌려있지 않았지만

굉장히 맥주를 부르는 맛이었다




친절한 이탈리아 할아버지


우리는 간단한 쇼핑을 하고 먹물파스타로 유명한 Vini da Gigio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파스타의 본고장 이탈리아에서 파스타는 무슨 맛일까

평소에 집에서 파스타를 즐겨해먹는 나에게는 레스토랑으로 가는 길은 매우 설레던 순간이었다

레스토랑에 도착하자 워낙 유명한 곳이어서 우리는 30분정도 대기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고풍스럽고 유럽스러운? 내부는 친절하고 나이드신 서버할아버지께서 우리의 주문을 받아주셨다

우리는 이태리어도 영어도 잘하지는 못했으므로 This, this, one please 만 외칠 뿐이었다


그렇게 먹물 파스타가 나왔고

우리는 한 입을 먹고는 아.... 뭐랄까 싱거웠나? 심심했나?

한국에서도 파스타를 잘 사먹어보지는 않았다

(모태솔로는 아니다)

내가 만든 알리오올리오가 더 맛있다는 느낌?

설명할 수 없는 실망감에 우리는 계산을 하고 나가려던 참에

우리가 예상한 가격보다 2배가 나와 엄청나게 당황을 하게 됐다


'설마 우리가 외국어도 못하는 아시아인이라서 눈탱이를???'

이런 불안한 생각을 가지며 친절한 서버님께 물어보니

파스타가 1인분 가격이었고 메뉴판 밑에 보니

(*파스타는 최소 2인분부터 나온다)

라고 쓰여져 있던 것

이때는 지금처럼 해외에서 카드를 쓰기 어려웠고

현금 또한 잃어버릴까 숙소에 두고 오늘 쓸 돈만 가지고 나온 터라

파스타 1인분 가격을 못내게 되는 그런 상황이었다

레스토랑에서 숙소까지는 왕복 1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였고

우리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어쩔 줄 모르고 있을때

그 친절한 할아버지께서 갑자기 손으로 자기 입을 잠그며

(내가 알아서 처리할게 제스쳐)

그렇게 1인분 가격을 못드리고 계산을 하였다


뭔가 이 친절한 유럽인에게 눈탱이치는 거 아닌가? 하는 못된 생각을 한 것이 창피했고

우리가 민폐행동을 한 것 같아 부끄러워

숙소까지 가는 내내 우리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마치 이곳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내일 다시 들러 제 값을 치루면 되지 않는가 할 수도 있지만

유럽 기차는 비행기처럼 미리 예약하지 않으면 실시간으로 가격이 올라가

기차는 한달 전에 이미 예약을 해버렸고 아침 일찍 출발해야했다

레스토랑은 오후쯤에 오픈하기 때문에

언젠가 다시 유럽에 온다면 제 값을 치루기로 그렇게 마음을 먹었다





로마 시대로


어제의 저녁을 베네치아에 두고

우리는 로마로 떠나기 위해 베체치아역에서 로마 테르미니역으로 기차를 탔다

기차를 타고 가는 내내 창가를 보니

유럽 소설을 읽어보면 왜 이렇게 푸른 평원과 언덕이 자주 묘사되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풀렸다

정말 많은 땅이 평원과 언덕이었고 심지어 가슴이 뻥 뚫릴 정도로 아름다웠다



나는 가끔 이해했다고 짐작한 적이 있다

그런 생각은 나를 거만하게 만든다

직접 경험하는 것

최소한 경험이라도 해야 이해했다고 표현해야지

그런 생각들을 하다보니 어느새 로마에 도착했다


로마 명품거리
로마 콜로세움 앞
로마의 어느 다리에서

테르미니역은 복잡하고 세계적으로 소매치기로 유명한 곳이라

우리는 숙소까지 예민하게, 빠르게 움직였다

숙소로 가는 길에 콜로세움이 있었다

한 걸음, 한 걸음 걸을때마다 역사 책이나 영화에 나오던

트레비 분수, 판테온 신전, 바티칸 성당이 놀랍지 않게 서있었다

젤라토를 핥으며 걸어가는 관광객들

길거리는 클래식 음악이 흐르고 야경의 낭만이 자욱하게 빛나고 있었다

이 곳이 유럽이구나하는 생각이 들기에 충분했고

오디오 가이드와 함께 유적지, 박물관, 미술관 등 둘러보느라 2박 3일을 짧게도 보냈다




꿈에 그리던 니스로


로마의 여행은 시간이 너무 모자랐다

떠날 시간이 다가올때까지 하지 못한 것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그만큼 관광으로는 로마만한 곳이 없을 수도 있겠다


22살이었을 때, 나는 시를 곧 잘썼었다

그 전까지 나는 사실 예술이랑은 먼 사람이었다

꿈이 없었고 그저 게임을 한다던가

노는 것을 좋아하는 아무 생각없이 학창시절을 보냈다

어느 덧 수능이었고 대학교를 진학했다

신문방송관련된 과에 전과를 목표로 문예창작학과에 들어갔다


술을 배웠고

예술을 배웠다

나의 20살은 술을 300일을 마셨다

이거는 거짓없는 진실이다

토하고 마시고 자고

그렇게 친해진 사람들에게 정을 너무 많이 주었을까

나는 결국 전과를 하지 않고 글을 쓰기로 했다

(후회를 하면서 후회하지 않는 선택이었다)


책을 읽는 것을 싫어하는 내가 글을 쓸 수 있을까?

그런 나를 주변에서 이끌어주고 응원하던 동료들이 있었고

자신감이 올라와 나는 곧잘 글 쓰는 재미에 빠졌다

자주 밤을 샜고 내가 쓴 한 문장이 마음에 들면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나 히딩크처럼 소리없는 쾌청을 부르곤 했다

꿈에 그리던 니스

꿈에 그리던 니스


그렇게 예술을 배워가던 시기에 아프리카 TV에서 어느 한 분의 방송을 보게 되었다

지금은 그 분의 닉네임이 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 분은 니스에서 그림을 그리던 유학생이었다


대부분 술을 마시면서 토크방송을 자주 했었는데

그때의 나는 라디오처럼 틀어놓고 이 분의 이야기에 깊게 빠졌다

나와 반대된 사람 같았고 이 분의 방송시간이 기다려졌다


그렇게 한 달정도 방송을 하시고 본 업에 집중하시겠다며 결국 떠나셨다

그 짧은 한 달이 몇 년이 지나서야 나를 이곳으로 이끌게 되었다

그렇게 꿈에 그리던 휴양지로


우리는 니스에 도착했다

숙소가 1인실이라 우리는 숙소를 나누었고

짐을 풀고 만나 저녁을 먹고 야경을 즐겼다

몽돌 해변에서 바다에 발을 담궜다

해변 위로 비행기가 공항으로 착륙하러 하강중이었다

이런 광경이 매우 이색적이면서 뭔가 눈물이 나올 것처럼 가슴이 벅찼다


그 분은 아직도 이 곳에 있을까?

많은 시간이 지나고서야 거리를 훑었다

스테이크를 먹고 맥주 한잔 하고 어두워져 각자의 숙소로 향했다




낭만은 더러움에서 오는 것일까


우리는 니스역으로 모이기로 했는데 친구는 연락이 오지 않았다

그렇게 기차를 놓치자 친구가 역으로 허겁지겁 뛰어온다

길을 해매어 제 시간에 오지 못했다고 우리는 다음 기차를 추가금을 주고 다시 예약을 하였다


친구는 미안하다며 아침을 사주겠다고 했는데

한국에서 출금해온 1000유로를 잃어버리고 나서였다

우리는 묵은 숙소에 연락을 해서 사정을 말씀드렸으나

그런 돈은 본 적도 없다고 했다


그렇게 친구는 하룻밤에 1000유로(당시 130만원)를 잃어버렸다

하지만 여행을 멈추기에는 우리는 아직 반도 안남았다

우울해하는 친구를 위로하며 우리는 파리행 기차에 올라탔다


니스에서 파리로 가는 루트는 축구를 좋아하는 나에게 설레는 루트였다

마르세유, 리옹처럼 익숙한 지역의 이름들을 지나쳤다

시간이 생긴다면 이곳을 전부 다 들릴리라

한숨을 자고 일어나니 우리는 파리 리옹역에 도착했다

유럽의 대도시역은 항상 소매치기를 조심해야하기 때문에

숙소로 이동했다


2017년 파리의 노트르담 성당 화재 전

파리는 달팽이처럼 1~20구로 나뉘는데

북부는 이민자들이 많아 치안이 매우 안좋았으므로 우리는 남부에 머물렀다

파리는 생각보다 많이 지저분했다

쨍한 하늘이 로마라면

하늘 또한 흐릿하고 찌른내가 어딜가든 풍겼다


루브르 박물관, 에펠탑, 노트르담 성당, 바토무슈

파리의 일정도 2박 3일이라 전부 즐기기에는 시간이 부족해서 유명한 것만 보고 왔다

그렇게 파리의 마지막 밤이 찾아왔다




자연을 좋아하면 스위스


어느덧 유럽여행은 3일밖에 남지 않았다

세계에서 제일 물가가 비싼 나라

중립국이자 자연친화적인 나라 스위스로 떠났다


우리는 파리역에서 3번을 갈아타고

스위스 인터라켄으로 향했다


그린데발트 정거장

스위스 인터라켄은 융프라우 산으로 한국인들에게 유명한 도시였다

융프라우 정상에서 먹는 신컵라면은 그 무엇보다도 맛있다고 하였다


하지만 나는 유명한 융프라우보다 피르스트로 가보고 싶었다

피르스트는 First라는 영어 발음으로 퍼스트와 같다

의미는 하늘 아래 첫번째 마을을 뜻한다고 하여 피르스트라고 지었다고 한다

그 마을이 궁금해서 가보고 싶은 것은 아니고

내려오면서 여러가지 액티비티를 즐길 수 있기 때문이었다


정상의 시계
피르스트에서 한 컷
서서타는 자전거 (트로티바이)
마을로 내려가는 길목에는


시간이 멈추는 경험을 했다

정상은 너무나도 고요했고 바람이 불기 전까지 먹먹했다


첫번째 액티비티로 플라이어를 타고 슈렉펠트로 가기로 했다

플라이어는 집라인을 타고 시속 84km로 내려갈 수 있었다

체감은 2분? 정도 탔더니 금방 도착했다

아름다운 경관을 타고 내려가며

짜릿함과 청량감은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

마운틴 카트와 트로티바이크를 타며 스위스의 정취를 느끼고 나니 금새 그린델발트에 도착했다


인터라켄역 앞




우정은 무엇일까



친구는 나와 다르게 융프라우 산을 보기로 했다

우리가 따로 있었던 적이 전에 니스말고 이 번이 2번 째였다

그렇게 우리는 헤어지고 카톡으로 연락을 하며 이따가 보기로 했다

하지만 친구의 마지막 연락은 오전 10시였다

'융프라우는 도대체 얼마나 좋길래 연락이 없을까!'

오후 2시 30분, 나는 이미 인터라켄 역에서

부러운 생각을 하며 친구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의 기차는 오후 5시였고 취리히에 있는 집주인은 오후 8시까지 체크인을 기다려주신다고 하였다

일단 나는 4시까지 기다리면서 독서를 하고 있었는데

시간이 다다르자 점점 아무 답장이 없는 친구가 걱정이 되었다

'혹시 정상이 너무나도 높기때문에 인터넷이 안되는 것은 아닐까?'

결국 5시가 되었고 우리의 기차는 어서 타라고 탑승 방송을 하고 있었다

나는 친구에게 주소와 연락처같은 것을 남기고 먼저 가서 체크인을 하기로 했다

락커룸에 맡겼던 친구의 짐까지 끌고 몇 번을 갈아타 겨우 취리히에 도착했다


오후 8시 20분, 혹시라도 숙소주인이 떠날까봐

취리히역에서 숙소까지 뛰어 들어가 늦은 밤까지 기다려주신 집주인께 사과를 드렸다

하지만 친구는 연락이 없었고 나 또한 25키로가 넘는 캐리어 2개를 끌고 오느라 지쳐서 소파에 쉬고 있었는데

오후 9시가 되자 처음보는 사람에게 전화가 왔다

왠지 안 받으면 안될 것 같은 촉감이 왔고

전화를 받자 친구는 울며 그 간의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정상으로 가는 기차를 타며 창밖으로 사진을 찍으려고 했다가 휴대폰을 놓쳤고

휴대폰 액정이 박살이 났다고 한다

(이 친구는 앞으로도 여행중에 옆에 아무도 없으면 사고가 생길 것 같다)

지금은 인터라켄역에 있던 한국인을 만나 전화를 한 것이라고 한다


그렇게 친구에게 다시 주소와 비상연락망을 보내주고 취리히역으로 가서 친구를 기다렸다

그 뒷이야기는 너무 좋지 않기 때문에 간단하게 적겠다

(사실 여행동안 친구의 성격이 예민함과 사진 지적에 몇 번의 역겨움을 참아내고 있었다)

만나자마자 그녀는 제 탓을 하기 시작하며 온갖 욕을 쏟아냈다

숙소에 들어가자마자 캐리어를 발로 차며 쓰레기 가지고 나가라며

그 순간 화가 났지만 나보다 놀랬을 동기에게 나는 그냥 알겠다며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이 날 이후로 나는 굳이 시간까지 맞춰서 친구랑 가는 것보다 혼자 여행을 선택하는 계기가 되었다)


취리히 옥상 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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