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란 한 판이 주는 불균형의 미학

쓸모 없지만 이상하게 집요한 관찰에 대하여

by 슬찬

30살이 된 해에 어김없이 듣게 되는 말이 있다.


"이제 계란 한 판이네.“


말장난 같지만, 의외로 자주 들린다. 어제도 마트에서 특가로 계란 한 판을 들고 오는 길이었다.

가방에 넣기 애매해서 손에 들고 왔는데, 뭔가 이상했다.

균형이 안 맞았다.

계란은 보통 6×5, 그러니까 30개가 한 판이다.

6개짜리 줄에는 가운데에 끈을 넣을 수 있지만, 5개짜리 줄은 애매하다. 결국 3개와 2개 사이를 관통해서 끈이 묶인다.

그래서 들면 항상 한쪽으로 기울어진다.

계란 한판.png

(이걸 보고 안 불편할 수가 있지?)



“아니 대체 왜?”

“심지어 잘 깨지는 계란인데?”



차라리 6×6=36개면 어땠을까.

정사각형이라 균형도 맞고, 적재 효율도 높고, 보기에도 깔끔할 텐데.

물류나 창고 일을 해본 사람은 알 거다. 사소한 균형 하나가 얼마나 중요한지. 결국 시간도 절약되고, 그게 돈이 된다.

그런데 왜 굳이 6×5냐. 극도의 효율성을 추구하는 나로서는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그래서 아내에게 물었다.

(-_-) 이 표정으로 돌아왔다.


"그런 거 생각해본 적 없어...“


…예상했던 리액션이었기에 더 묻지 않았다. 그러다간 나만 이상한 사람 되니까.

그래서 결국 채씨에게 물었다. 항상 친절한 GPT, 물론 질문을 많이 하면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줘야겠지만…

이유는 다음과 같다고 했다.

1. 10진법 사회에 익숙해서 10의 배수가 편하다.

2. 5×6 배열이 공간 효율이 좋아서 유통에 적합하다.

3. 시장 유통의 오랜 관습 때문이다.


1번과 2번은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았다. 결국 3번이 유력한 이유라 생각되었다.

미국은 12개의 도즌(dozen) 단위가 문화로 자리 잡아 있어 계란도 12개가 일반적이다. 도넛이나 빵도 마찬가지. 문화라는 건 참 오묘하다.

물론 요즘 마트엔 6개, 10개, 15개 묶음도 흔하다. 이는 가족 구성원이 줄어든 시대상을 반영한 결과일 것이다. 그러고 보면 36개는 오히려 많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여전히 균형은 안 맞는다.




모든 글에 교훈이 있어야 할 필요는 없다. 그건 필자에게도 독자에게도 피로한 일이다.

그래도 이런 시선, 나 스스로는 좀 재밌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에겐 아무 의미 없는 집착일지 몰라도, 나는 이 불균형에 계속 마음이 쓰인다.




언젠가는 균형이 기가 막히게 맞는, 4×4=16개의 계란 한 판을 만나게 되기를 바라며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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