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끝에서 시작되는 모드
삿포로를 다녀왔다.
편안함을 최우선으로 추구하는 나에게 ‘멋있는 신발’은 사치품이라 믿었고, 그래서 샌들 하나만 신고 떠났다.
그게 문제였다.
둘째 날부터 발목이 끊어질 듯 아팠다.
해외여행 경험이 많지 않은 나는 하루에 2만 보를 걸을 거라 상상도 못 했다. 친구들이 쇼핑을 즐길 때, 나는 의자에 앉아 발을 주무르고 있었다.
고작 신발 하나였다. 그런데 그 하나 때문에 일정 전체가 흔들렸다.
여행이 망가진 게 짜증 났고, 이런 걸 예상하지 못한 나에게 화가났다.
일본을 집 앞 공원처럼 드나드는 친구가 결국 나를 근처 단골 신발가게로 데려갔다.
아주 비싼 러닝화를 샀다. 내 인생 가장 비싼 운동화였다.
걷는 건 확실히 편해졌지만 이미 망가진 발목은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친구들 속도를 따라가기에는 여전히 버거웠다.
생각해보니, 나는 출근할 때도 슬리퍼를 신는다.
집에서 지하주차장, 그리고 학교 주차장에서 건물까지—그 짧은 동선을 위해 신발을 두 번 갈아신는 게 비효율적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렇게 다니면 슬리퍼를 두 켤레 살 필요가 없다. 경제적(?)이지 않은가.
가끔 주차장에서 교장·교감 선생님을 마주치면 조금 머쓱했지만,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대처하는 요령도 생겼다.
그러다 올해 부장이라는 직책을 맡고 나니, 슬리퍼 신고 차에서 내리는 내 모습이 영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올해부터는 학교에 와서 슬리퍼로 갈아신는다. 최소한 겉모습은 ‘일하는 사람 모드’로.
오늘도 구두를 신고 학교에 와서 슬리퍼로 갈아신는데, 문득 내가 갑자기 바뀌는 기분이 들었다.
마치 토니가 슈트를 입고 아이언맨이 되는 것처럼—신발 하나에 모드가 전환되는 느낌.
여행 내내 생각했다. 신발은 결국 ‘역할’을 정하는 도구가 아닐까.
샌들은 쉬는 나, 러닝화는 움직이는 나, 구두는 책임지는 나, 슬리퍼는 일하는 나(교무실 모드).
거창한 결심보다, 발끝의 선택이 하루의 자세를 더 많이 바꾸는지도 모른다.
삿포로에서 배운 건 간단했다.
‘준비의 디테일이 하루의 컨디션을 좌우한다’는 것.
발이 편하면 마음이 넉넉해지고, 마음이 넉넉하면 풍경도 더 넓어 보인다. 반대로 발이 아프면, 맛집도 풍경도 그저 “언제 앉지?”가 된다.
돌아와 보니 출근 루틴도 조금 달라졌다.
차에서 내릴 때는 구두, 교무실에서는 슬리퍼, 운동장 지도 나갈 땐 러닝화.
같은 사람이지만, 신발을 갈아신을 때마다 오늘의 ‘버전’이 업데이트된다.
다음 여행에는 멋보다 발부터 챙길 생각이다.
샌들은 카페 테라스에서 햇볕 쬘 때 신기로 하고, 걸을 때는 러닝화로.
작은 준비 하나가 하루를 구한다.
발목이 아니라, 여행을.
그리고 언젠가—
내 삶에도 꼭 맞는 ‘역할별 신발장’을 갖추는 게 소소한 목표가 됐다.
오늘의 나를 부르는 신발을 꺼내 신는 일. 그게 요즘 나에게 가장 실용적인 변신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