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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예인 Jun 30. 2024

잠시만요! 일단, 보고나서 생각할게요.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것

“으악! 있어요! 아직 있어요!”

‘파르르르르륵’, 

“으악! 아직 있어, 있어!!”      

 

     나는 겁이 많다. 지난 주 수련회에서 쉬는 시간을 맞아 동료들과 산책을 하다 생긴 일이었다. 운동장 한 바퀴를 돌고 막 건물로 돌아가기 위해 계단을 반쯤 올랐을 때였다. ‘파르르르르륵’ 소리와 동시에 본능적으로 귀를 여러 번 씩 털어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눈앞에 튕겨 떨어진 귀걸이가 보였다. 긴가민가했지만, 이미 귀에 뭔가 들어갔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귀에 무언가 들어갔다는 말에 동료들은 ‘휴대폰 플래시를 비춰야 한다. 나뭇가지로 꺼내야 한다. 귀를 위쪽 방향으로 해야 한다.’ 등등 여러 의견들을 제안했다. 이러면 나오지 않겠냐며 한 언니가 애꿎은 내 귓구멍에 손을 갖다 대는 순간, ‘파르르르르르륵’ 또다시 귓속에 날갯짓 소리가 퍼졌다. 온 몸에 전율이 흘렀다. 진짜 뭐가 들어간게 맞냐고, 다시 귀를 만져보라는 말에 손가락을 귓구멍에 넣자 또 한 번 ‘파르르르르르르륵’ 날갯짓 소리가 들렸다. 자그마치 세 번이나 그 소리를 들은 후에야 더 이상 귀를 만지지 않기로 했다. 패닉 상태에 빠져 파르륵 소리가 들릴 때마다 소리를 질렀다. 얼어붙은 나를 한 언니가 안정시키며 부축해서 의무실로 향했다. 그녀의 팔을 꼬옥 붙잡고 한 발 한 발 내디뎠다. 의무실의 간호조무사님은 귀를 살펴보시더니 이 곳에서 특별히 할 수 있는 것은 없다며 벌레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 보자고, 시간이 지나도 문제가 있으면 또다시 오라고 했다.      


“저기, 제가 너무 무서워서 그런데 혹시 병원에 다녀오면 안 될까요?”      


     난생처음 겪는 일이었기에, 이 벌레가 고막의 어디까지 들어갈 수 있는지, 뇌로 올라가지는 않을지, 귀에서 무슨 짓을 할지 알 수 없었다. 그 무지함이 두려움을 증폭시켰다. 눈치를 보아하니 동료이든 의무실이든 귀에 들어간 벌레를 어떻게 처치해야 하는지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그 곳에 없었다. 가장 정확한 것은 병원에 가는 일이었다. 누군가는 본인도 귀에 벌레가 들어간 경험이 있는데 귀 안에서 죽을 것이라고 안심시켰지만, 날갯짓 소리를 세 번이나 들은 나는 그래도 병원에 가야 한다고 자차를 끌고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으로 향하는 길 더 이상 날갯짓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나갔는지 기어 들어갔는지 죽었는지 행방이 묘연했다. 일단 눈으로 봐야만 했다.     


“우리 예인이 겁이 많다 그치? 꼭 우리 막내딸 같아.” 

'내가 겁이 많은가?' 순간 생각했다가, 옛 기억이 하나 떠올라 바로 답했다.

“네, 겁이 많아요. 겁이 많아서 이렇게 얼어있다가 하나씩 해나가는 편이에요.”


     병원까지 혼자 가겠다는 나를, 어떻게 혼자 가냐며 20살이나 많은 큰언니가 동행해 줬다. 병원 주차장에 도착해서야, 이제 상황이 조금 안정됐다고 생각했는지 그녀가 나를 놀리기 시작했다. 10분 거리에 내과가 있었지만, ‘이비인후과’에 가야 한다는 나의 주장에 20분을 이동해 기어코 이비인후과에서 진료를 봤다. 귀속에 카메라를 넣어 살펴보기 시작했다. 양쪽 귓 속을 영상으로 보고, 의사 선생님의 괜찮다는 말을 듣고 나서야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수련회장으로 돌아오는 길에 호들갑을 부렸던 내 모습이 떠올라 조금은 민망했지만, 그럼에도 병원 진찰을 해야 한다는 나의 결정은 역시 잘한 판단이라고 내심 뿌듯해했다. 어떤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할 것이라는 자긍심이 내심 차올랐기 때문이다.


     나는 겁이 많다. 하지만, 하나씩 하나씩 해내는 것은 곧 잘하는 편이다. “우리 예인이 겁이 많다 그치?”라는 질문에, 스쿠버 다이빙을 할 때가 생각났다. 스쿠버 다이빙을 할 때면 산소통을 짊어지고, 다이버 강사님을 붙잡은 채 더 깊은 바다로 내려가는 훈련을 한다. 그 강사는 다이빙하는 걸 보면 성격을 알 수 있다며, 친구와 나를 비교한 적이 있다. 나는 겁이 많아 처음에는 얼어있지만 침착하게 상황을 살피며 다이빙하는 편이고, 친구는 겁이 없어 첨벙첨벙 잘 뛰어들지만 곧이어 바닷물의 공격에 당하고선 급히 물 밖으로 올라온다는 것이었다. 그 날도 소금 물을 들이킨 내 친구는 스쿠버 다이빙 입문인 오픈워터 자격증을 취득한 후 더 이상 스쿠버 다이빙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겁이 많아 눈을 꿈뻑이며 입수하던 나는 단계 나아간 어드밴스드 자격증 까지 따고서, 스쿠버 다이빙을 하기 위해 해외 여행을 다니는 다이버가 되었다. 


     나는 막연한 것을 참지 못하는 성미가 있다. 특히 학원이나 학교의 수강 신청 시에는 커리큘럼을 살펴보고, 나의 일정과 대조해 보고, 더 내게 맞는 수업들이 있는지 비교해 봐야만 한다. 이것은 진로나 커리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일단 해보고’가 잘 안된다. 진로의 방향에서도 5년 뒤 10년 뒤 최종 방향을 보아야만 속 시원하게 이 둔탁한 엉덩이를 떼고 실행에 옮기곤 한다. 명확하지 않은 것을 답답해하는 이유는 미래를 예측해 보고 싶기 때문인데, 그것은 나의 겁 많은 성격과 연관이 있다.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이 닥치면 머리가 하얘지며 얼어붙었던 경험들이 쌓이다 보니, 자연스레 미래를 예측하고 대비하는 것이 중요해진 것이다. 사실 중요하다기보다는, 그렇게 해야 별 탈이 없었던 경험들을 통해 본능적으로 나만의 생존법을 터득하게 된 것과 가깝다. 막연함을 참지 못해 누구보다 먼저 행사 일정을 묻거나, 커리큘럼을 물어 조금은 까다로운 사람이 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만큼은 겁 많은 예인이가 이 세상에서 잘 살기 위해 좌충우돌하는 모습으로 사랑스럽게 봐주고 싶다. 




written by 권예인 (2024.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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