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예인 Aug 01. 2023

퇴사 후 첫날, 진심으로 바랐다.

퇴사하고 맞이하는 자유인 첫째 날. 침대에 누워 뒹굴다가 주말에 못 본 드라마 두 편을 해치웠다. 귀신 스토리라 정신건강에는 매우 해로울 것 같은데, 해로워서 입에는 더욱 달콤했다. 아무것도 하기 싫어서 배달의민족을 끄적이다 회사원 일 때 시켜 먹던 익숙한 도시락 하나를 배달해 먹었다. 유명 작가들의 하루 루틴을 유튜브로 훔쳐보며 도시락통 분리수거와 쌓인 컵을 설거지한다. ‘아, 오늘까지 마감해야 하는데…’ 오늘 써야 할 글 분량이 있음에도 애꿎은 시간만 축내다가 더 이상 축낼 시간이 없어, 아이스 라떼 한 잔을 사들고 와 시작하기로 했다. ‘지잉-‘ 휴대폰 진동소리에 반사적으로 짜증이 난다. ‘지잉-지잉-’ 카톡이길 바랐는데 전화다. 잠시의 고민을 뒤로한 채 무시했다. 슬리퍼를 끌고 라떼를 사러 가는 길. 더운 폭염 중에 찾아온 첫 자유인의 날은 이렇게 흘렀다. ‘그냥, 아무도 건들지 마라. 제발 아무도 건들지 마라.’ 뭐가 그렇게 짜증이 났는지. ‘그냥 동굴에 머물게 해줘. 내 마음에서 먼저 이야기가 흘러나올 때 까지. 내 스스로 해야 할 것들을 정리할 때까지.’ 그냥 제발 날 좀 내버려 두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 23.08.01 / 권예인 

매거진의 이전글 30대 희망퇴직을 앞두고 제2의 인생을 결정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