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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궐리버 Jan 17. 2024

선택받지 못한 것들

어쩌면 구원이 필요한 나에게

매 순간 선택의 기로에서 무언가를 선택해야 할 때,

큰 결심은 항상 필요하다. 많은 것들을 따져야 하고, 내게 득이 되는지 따져야 한다. 어쩌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당연한 패러다임이다.


나 또한 좋은 직장과 나쁜 직장, 아니 덜 좋은 직장에서 고용주에게 선택받아야 하는 입장이 되기도 했고, 나도 역시 좋은 직장과 덜 좋은 직장 중 한 곳을 선택해야 되기도 한다.-물론 둘 다 붙었다는 전제가 필요하지만.- 나는 결국 어딘가에 선택되어 신입이 더러 겪는 새로운 곳에서의 적응이라는 큰 난관에 봉착하면서 생산성은 떨어지지만 열심히 일을 하고 있다. 이 회사의 연봉 테이블이 어떤지 아직 모르지만, 내가 고심해서 던진 연봉을 수락했기에 나는 만족스러운 시작일지도 모른다. 혹은 내가 던진 연봉이 오히려 연봉 테이블보다 적어서 고용주는 좋아했을지도 모른다. 내게 붙은 택의 가격은 선택하는 입장에서 나름 합리적이었을지 모르겠다.


언젠가 한 번 이마트에 갔을 때, 마감시간이 임박하여 온갖 상품들에 할인 스티커를 붙이는 광경을 자주 목도한 적이 있다. 나는 늦은 밤 먹는 것이 그다지 좋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30%, 40% 할인 택이 붙은 친구들을 자꾸 들었다 놨다 만지작거리곤 했다. 수 바퀴를 고민하면서 돌다가 결국 고른 음식이 별로인 적도 있었고, 아주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만족하기도 했다.

문제는, 베이커리 코너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내가 한참을 구경하다 할인하는 빵 하나를 집었는데, 나머지 선택받지 못한 빵들을 직원 분이 죄다 수거해서는 커다란 흰 비닐봉지에 가차 없이 때려 박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그들의 몰살과 매장을 눈앞에서 지켜보면서 그렇게 충격적일 수가 없었다. 소비기한이 지나버려 결국 누구에게도 선택받지 못한 채 그들의 쓸모를 잃어버리는 모습이 참으로 씁쓸하면서도 너무 슬펐다. 내가 돈이 많았더라면 이것저것 다 사갔을 텐데. 하지만 이것도 나의 욕심일 뿐, 먹지 못하고 곰팡이로 뒤덮여 결국 선택받았음에도 버림 당한 친구들을 수도 없이 경험했다. 나는 그 대학살을 방관할 수밖에 없었다.


나도 결국엔 도태되어 버림받을 여지가 충분한 사람이다. 직장에서도, 인생에서도, 누군가로부터도 결국 선택받지 못한 채 나를 비관할 수도 있다. 떼어지지 않는 나의 택을 나 스스로 값어치를 매겨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인 것이다. 어쩌면 나는 하늘이 두쪽 나 갑자기 무언가로부터 선택받아 평생을 걱정 없이 살아갈 능력을 아무 노력 없이 원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저 빵이었다면, 그저 잘 보이는 투명한 비닐에 포장돼 누군가로부터 선택받아야만 나의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을 텐데, 그렇게 버려진 빵은 과연 빵을 성형하는 파티셰의 잘못인지, 더 buy appeal 하지 못한 빵의 잘못인지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된다.


오늘 나는 탑마트 수목돌풍을 예상치 못한 채 딸기가 먹고 싶어 딸기를 사러 갔다. 마침 수목돌풍으로 할인하는 딸기를 목도하고 기분이 한껏 들떠있었다. 잘 익은 딸기들 옆에는 소비기한이 임박한 오늘 할인 택을 붙인 딸기들이 있었다. 천 원 차이인데 그냥 새 딸기를 고르자 하고 조심스레 한 팩을 골랐다. 그러곤 본능과도 같이 베이커리 코너로 가서 빵을 흘깃 보았다. 저렴한 빵들이 줄지어 서있는데, 저녁시간이 다 되고도 매대는 그렇게 비어있지 않았다. 나는 별안간 이마트의 대참사가 떠올랐다. 나는 오늘도 마찬가지로 그들을 위해 아무것도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다시 딸기 코너로 가서 천 원 할인이 된 딸기를 살펴보았다. 상태는 새것과 거의 차이가 없었다. 나는 할인된 잘 익은 딸기 한 팩을 신중하게 선택했다. 할인의 이유를 모를 정도로 상태가 좋았다. 단지 소비기한이 다가온 친구들이었을 것이다. 오늘 저녁 나는 며칠을 지나와 오늘까지도 선택받지 못했던 딸기 한 팩을 선택하기로 마음먹었다. 그의 구원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상태 좋은 상품을 싸게 사서도 좋았지만, 7천 원의 딸기가 나에게는 7만 원 치의 행복으로 와닿았다. 그 모두를 구원할 수는 없었지만, 나는 오늘 내가 고른 딸기만큼은 자신의 가치를 나에게 마음껏 뽐낼 수 있도록, 그에게 붙은 할인 택으로 스스로를 가치폄하하지 않도록 해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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