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한바퀴

by 주렁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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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밤, 친구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길게 통화했다. 그 가운데, 친구가 ‘내일 뭐할꺼야?’ 라고 물었다. ‘나? 아침에 러닝하고, 내내 작업실에 있겠지?’ ’까페에서 작업하던지.. 나가는 건 어때?’ ‘.. 아.. 나가라고 숙제 주는 거에여?’ 라는 대화를 했다.

오늘 아침. 처음으로 긴 바지를 입고, 바람막이 점퍼(옷이 넘쳐나는 아부지 방에서 하나 훔쳐 온 카키색 옷. 당당히 입고 집에 가도 아버지는 모르신다. 자기 옷인줄)까지 챙겨입고 달리러 나갔다. 바람도 좋고, 하늘도.. 탄성이 나올 만큼 멋져서 적당하지만 나로서는 충분히 달리고 왔다.

작업실에 들어와 해야할 작업을 하다가, 문득 어제의 대화가 생각났다. 주섬주섬 옷을 갈아입고, 동네를 나갔다. 사실 살 것도 없고, 커피도 이미 마셨고 할 건 없었다. 그래서, 내가 매일 다니는 길목이 아닌, 그 너머의 골목. 이쪽저쪽 골목을 걸었다. 이 동네에 산지 얼마더라. 이십년은 된 거 같다. 그런데, 열 걸음만 갔을 뿐인데, 낯선 곳이다. 전혀, 모르겠다. 모르는 까페, 식당, 가게들이 보였다. 새 것의 냄새가 나는 건물도, 오래된 주택도 있었다. 그게 새삼 이상하고, 흥미롭고 그랬다.

잘 모르겠는데, 그냥 마구 걸었다. 길은 통했다. 막힌 곳은 돌아가면 되었다. 그렇게 요기조기 빙빙 돌았다. 그러다 문득, 지금 내 상황이 떠올랐다. 살짝은 막막하고, 엄청은 상처입은 내 마음. 길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다. 아니 안개가 자욱해서 앞이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 두 발로 직접 걷다보니, 아 잃어버린 건 아니구나. 돌아 나와야할수도. 좀 오래 걸을 수도 있지만, 길은, 언제나 어디론가 통하는 구나. 내가 주저 앉아 있지만 않으면 되는 구나 싶었다. 천천히라도 한 걸음씩 걸으면 되는구나 싶었다.

친구에게 말해주고 싶다.

‘숙제 했다.’

그리고 또 말해주고 싶다.

‘기분좋은 숙제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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