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복작거리는 지하철 안에서, 보청기 통을 꺼내 새 밧데리를 넣었다. 그리고, 가방에 넣었다. (나는 분명 그렇게 생각했다.) 을지로입구역에서 내렸다. 왼쪽 보청기는 블루투스가 되어서, 끼고 뭘 들으며 다닌다. 오른쪽은 회사 들어가기 바로 직전에 끼곤 한다. 습관처럼, 그러려고 찾는데, 없다. 설마. 벤치에서 가방 안을 다 뒤졌다. 없다. 회사에 들어왔다. 자리에서 다시 가방을 뒤졌다. 없다. 그래 잃어버렸다. 210만원짜리 보청기.
지하철 유실물 센터에 전화했다. 빠르면 오늘. 아니면 내일 알 수 있단다. 들어오는 지 아닌 지. 삼성의료원에 전화했다. 사정이 딱해 보이긴 하나보다. 이비인후과 검사실 담당 간호사가 이리저리 알아보고, 지금 급하니, (병원 소속 보청기 삼당사를 거쳐서 하려면 11월 20일이나 예약 가능하단다) 보청기 회사 직원과 직접 연결해서 받으면 된단다. 어차피 올해 초에 한 것이랑 똑같은 걸 하니까 말이다. 보청기 회사 직원에게 전화왔다. 착용한지 1년도 안된 거라.. 170만원에 이번에 새로 생긴 업그레이드 된 걸로 해준단다. 그래 뭐라고 있으면 좋지. 내일 다시 전화해주기로 했다. 유실물 센터에서 찾으면 전화를 해주기로 했으니 말이다.
화
하루가 지나고, 알았다. 보청기의 행방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을. 포기해야한다는 것을.
수
다시, 보청기 회사에 전화했다. 내일 찾으러 가기로 했다.
목
아침 7시 30분. 집에서 출발. 8시 50분 병원 도착. 보청기 회사 직원을 만났다. 이미. 다 아시죠? 네.. 새 보청기를 받고, 수납처에 갔다. 삼성의료원에서는 오픈카드를 사용한다(카드를 등록해놓으면, 진료보고 난 후에 수납창구에 들르지 않고 집에 갈 수 있다). 하지만 보청기 값은 할부를 해야한다. 돈이 없거든 ㅋ 적금을 깨고 싶진 않다. 처음해보는 3개월 할부. 머릿속으로 계산한다. 내년부터 월급도 줄어들텐데.
금
잃어버린 걸 처음 알았는 때, 나를 자책하려는 마음이 저 밑바닥에서부터 스물스물 기어올라 오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끝도 없는 ‘그랬더라면’의 굴레 말이다. 그게 얼마나 소용없는 짓인지 잘 알고 있다. 스스로에게 말했다.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그래. 그럴 수도 있지. 사고는 순식간에 나는 법이니까. 누구에게나 어떤 형태로도 올 수 있는 그 무엇 중 하나일 뿐이다. 하루 이틀 지나면서 마음은 찬찬히 평온해졌다. 어제 새 보청기를 가져오면서도, 마음이 나쁘지 않았다.
문득, 내 안에 묵직한 돌덩어리를 던지는 건, 이런 문제는 아니구나. 싶었다. 관계에서 오는 어려움이 가장 날 힘들게 하는구나. 싶었다. 이건 그저 혼자서든 어떻게서든 해결할 수 있다. 스스로를 다독이면 되는 문제다. 혼자서 일으킨 문제이니 말이다. 하지만, 혼자가 아닌 누군가 연결된 상태에서 오는 문제는, 참 괴롭다. 그 문제가 날 더 힘들게 한다. 지금도 살짝 있다 ㅎㅎㅎㅎ 하지만 별수 있으랴. 이것또한 지나가겠지.
누구든,
무엇이든.
어떻게든
지나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