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꼬리 잡기와 말 끊기

경청은 기술이 아니라 태도다

by 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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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방의 말을 끝까지 듣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는 심리학적으로도 증명된 것인데 상대방이 말을 시작하면 듣는 사람들은 지레짐작이 발동해 앞서 상대의 말을 예측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한다는 속담이 있듯이 화자가 말하는 바를 끝까지 들어야 그 말의 진의를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어지간히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상대의 “재미없는” 말을 끝까지 듣기에는 시간이 아깝다. 그래서 상대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는다. 그러고 보면 이런 속담이 있는 이유 자체가 한국 사람이 말을 끝까지 듣지 않아서 생겨난 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꽤 신빙성 있지 않은가?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라는 말처럼 유독 우리는 상대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진짜 궁금한 것은 왜 그렇게 말을 끊고 자기의 말을 하고 싶어 하는 걸까에 대한 것이다. 말을 끊는 것에는 추가적인 이유가 있을 수도 있다. 화자의 말이 너무 느려 답답함을 느낀다거나 몇 번이나 반복해서 들었다거나 아니면 대화 주제를 벗어나 삼천포를 넘어 바다 끝까지 이야기가 흘렀거나 할 때를 들 수 있다. 이런 경우에는 원활한 대화를 위해서 말 끊기가 필요하다. 그러나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을 보면 자신의 의견을 더 많이 말하고 싶어서 끊는 게 아닐까 하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기왕에 끊은 김에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하게 이해나 했으면 좋겠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대부분 말을 끊는 사람들을 보면 내가 하려는 말의 맥락을 제대로 파악 못하고 엉뚱한 말을 하는 경우가 많다.


말을 끊으려면 적어도 "정말 미안한데 우리가 시간이 없는데 비해 진도가 너무 느린 것 같다. 혹시 네가 하려는 말이 이러이러한 것이냐?"라고 정중하게 말을 끊으면서 상대방이 하고자 하는 주장을 명확하게 확인할 필요가 있다. 상대방의 말을 끊고 싶다면 그 정도의 이유와 매너가 필요하다.


그러나 많은 말 끊기 상황을 보면 그냥 듣고 있기 답답해서, 자신이 더 말하고 싶어서가 대부분이다. 이런 말 끊기는 인간관계를 망치기만 할 뿐이며 발전도 없다. 말 끊은 당사자는 자기 이야기를 실컷 했으니 속은 후련할지 몰라도 말이 끊긴 상대방은 점점 더 말을 끊은 사람과 대화를 나누기 싫어질 것이다.


대화에는 목적이 있다. 아무 의미가 없을 것 같은 여성들의 수다는 내용 면에서는 진짜 의미가 없을 수도 있을 망정 수다라는 행위 자체가 친분을 유지하는 목적이 되는 것이다. 즉 상대방과 어떤 대화를 나누었냐도 중요할 수 있지만 때로는 얼마나 대화를 나누었냐도 인간관계의 잣대가 된다. 남자들은 의미 없는 대화가 시간 낭비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 시간 낭비처럼 보이는 수다 행위 자체가 의미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디테일을 따지면 말꼬리 잡는 것도 그렇다. 말꼬리 잡는 것은 대화라기보다는 기술에 가깝다. 상대의 말의 진정성에는 전혀 관심도 없는 말꼬리 잡기는 오로지 상대의 말에 꼬투리 잡아 자신이 주도권을 지고 상대방의 말을 뭉개기 위함이다.


좋은 대화는 상대가 조리 있게 말을 못 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것이다. 말을 끊어가는 것은 지루해서가 아니라 상대의 말이 너무 장황해져서 정리를 하기 위함이어야 한다. 사람의 말하기 실력이 서로 다르기에 매번 같은 수준의 대화를 이어갈 수 없다. 그렇기에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은 유독 반가울 수밖에 없다.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기.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에서 데일 카네기는 파티장에서 거의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파티 주최자의 이야기를 끝까지 끈기 있게 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파티가 끝나고 그 주최자가 데일 카네기를 최고의 대화 상대라고 입이 마를 정도로 칭찬했다는 일화를 소개한다. 이 일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대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다름 아닌 “잘 들어주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잘 듣는 것은 끈기라는 노력이 필요하다. 어쩌면 우리가 상대의 말허리를 자르고 말 꼬리를 잡는 것은 인내력이 부족해서 일지도 모르겠다. 최고의 말하기 스킬은 잘 모르지만 최고의 대화 스킬은 경청이라고 감히 주장한다.


매력적인 말하기는 참 어렵다. 타고난 입담꾼이 아닌 대다수의 사람들은 대부분 말이 서툴다. 한국말을 구사할 수 있다는 게 꼭 대화를 잘하는 것은 아니다. 말하기에는 연습이 필요하다. 아나운서가 되기 위해서는 발음 교정, 억양 교정 그리고 발성 연습까지 한다. 잘 되는 유튜버들의 공통점은 좋은 콘텐츠도 있지만 오래 듣고 있어도 질리지 않는 말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말하기는 조금만 연습해도 제법 괜찮아진다. 조금만 연습해도 괜찮은 말투를 가질 수 있다.


그러나 매력적인 대화 상대가 되는 것은 더 어렵다. 좋은 대화 상대가 되는 것은 잘 들어주는 것인데 그것은 기술이 아니라 태도이기 때문이다. 태도를 고치는 것은 쉽지 않다. 무작정 입을 다무는 것도 능사가 아니다. 적절한 공감표시와 지겹지 않다는 표정과 진짜 끈기가 필요하다. 당신이 좋은 대화 상대가 된다면 그 사람은 당신을 계속해서 찾게 될 것이다. 당신은 잘 들어주었을 뿐인데 상대방은 당신에게 간이고 쓸개고 다 빼줄지도 모른다. 그만큼 잘 듣는 것이 중요하다.


잘 듣는 방법을 익히려면 일단 밖으로 나가야 한다. 그리고 사람들과 직접 대면하고 이야기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는 할 말이 없어서, 두려워서 밖에 나가길 꺼려한다. 하지만 괜찮다. 우리에겐 잘 듣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이슈나 유머 같은 거 없어도 된다. 우리에겐 듣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이슈를 만드들고 어젠다를 만들어 가는 사람들은 말을 잘하는 사람이지만 실제 대인관계에서 존중받고 인정받는 사람은 잘 듣는 사람이다.


곤조가 있다거나 꼰대 같다는 말을 한 번이라도 들어봤다면 그 사람은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않는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 세상은 끝없이 변하고 있으며 멈춰진 생각과 사유는 퇴색되기 마련이다. 물론 수천 년이 지나도 변치 않고 우리에게 울림을 주는 말과 책도 있다. 그런 책들의 대부분은 변화하라. 인정하라. 후회하지 마라 같은 언제 들어도 진리 같은 말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 말을 좀 더 쉽게 혹은 어렵게 세련되게 단호하게 어투를 달리할 뿐 그 뿌리는 거의 변함이 없다. 내 말도 마찬가지다. 그럼 무엇이 변했을까? 말투 즉 워딩이 변했다. 그럼 왜 변했을까? 곤조 있고 꼰대 같은 사람이 어떻게라도 듣게 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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