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은 본능이고 긍정은 의지다.

온전한 항상성의 조건

by 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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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적인 말은 부정적인 생각을 낳는다. 상대에게 부정적인 조언을 하면 상대 또한 부정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부정적인 말을 해놓고 긍정적인 대답을 기대하는 것은 바보 같은 일이다. 데일 카네기가 <인간관계론>에서 그렇게 말했다. 내가 상대를 바꿀 수 있는 방법은 없다. 협박이라면 모를까. 상대가 스스로 바꿀 마음을 먹게 해야 한다. 결국 인간관계에는 목적이 있는데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선 바보 같은 말과 행동은 삼가야 하는데 그 바보 같은 말과 행동은 딱 하나로 정의 할 수 있다. 그게 바로 부정적인 것들이다.


어릴 적 어머니의 권유로 조엘 오스틴 목사이 <긍정의 힘>이라는 책을 읽었다. 딱히 이 책의 내용까지 말하려는 건 아니고 단지 이 책의 제목인 "긍정의 힘"이 인간관계에서 참 중요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 우리가 흔히 하는 실수 중 하나는 지나친 낙관과 긍정을 같은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매사에 긍정적으로 임한다고 하여 그 사람이 지나친 낙관주의를 신봉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런데 적어도 나는 지나친 긍정을 낙관주의로 오해하는 삶을 살았다. 그래서 다소간 삐딱하게 살아왔던 것 같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더 매사에 부정적이다. 인간은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집 밖은 위험하기 때문이다. 우스갯소리로 들리겠지만 그 옛날 원시인들의 유전자에 깊숙이 새겨져 있는 본능이 바로 "집 밖은 위험하다"이다. 인류는 항상성이라는 유전자를 기본 탑재하고 언제나 비슷한 수준에서 적당한 안정을 취하려고 한다. 인류의 발전은 항상성을 유지하지 않는 고약한 환경 때문이라고 볼 수 있는데 바꿔 말하면 인류는 환경이 일정하다면 발전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집을 좋아한다. 집은 항상성의 상징이니까. 물론 내 집 마련이 심리적 안정을 주는 것은 맞지만 사실 "내 집"은 싸구려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한 거짓된 허상과도 같다. "내 집"을 유지하기 위해 우리는 끝없이 도전 앞에 놓이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우리가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이지만 이 이야기를 하려면 1시간으론 절대 끝낼 수 없으니 오늘은 적당히 넘어가야겠다.


인간의 기본 욕구는 모두 항상성에 기반하고 그 항상성을 위협받을 때 이를 극복하기 위해 발전한다.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서 따뜻한 지역으로 이동하거나 하다 못해 따뜻한 옷을 해 입는다. 이제 우리는 배고플 때에 맞춰 식사할 수 있다. 냉장고 덕분이다. 일상에서 잘 느끼지 못하지만 냉장고의 발명이 없었다면 인류는 쉽게 뚱뚱해지지 못했을 것이다. 냉장고도 항상성을 위한 발명품이다. 에어컨이 없는 한여름의 실내를 상상할 수 있을까? 가능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면 내게 당신의 집주소를 알려주길 바란다. 인간은 변화하는 환경에서 언제나 안정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웬만하면 그 틀을 벗어나지 않으려고 한다. 그 항상성이 사람을 부정적으로 만드는 이유다. 부정적인 게 나쁘다고 말할 순 있지만 오히려 부정적이기 때문에 인류가 지금까지 생존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부정과 의심이 없다면 인류는 진작에 멸종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긍정은 생존을 낮추는 행동일까? 긍정은 기꺼이 위험을 감수하는 마음이다. 사람이 위험 앞에 놓여 있을 때의 불안과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 불어넣는 용기와 그런 마음가짐이 바로 긍정이다. 과거 우리 조상들은 다양한 위험에 처했다. 포식자의 습격을 받고, 가뭄으로 작물이 다 말라 버렸을 수도 있다. 겨울이 되면 나무 열매들이 사라진다. 급격한 기후 변화로 이주할 수밖에 없었을 수도 있고 벼락으로 산림이 모조리 불타 둥지를 버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목초지의 풀이 고갈되어 더 이상 가축의 먹이가 없으면 유목민들은 새로운 목초지를 찾아 이동한다.


이런 대이동이 생기면 인간은 도전을 받게 된다. 큰 도전 앞에 나약한 인간은 굴복하거나 극복하거나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굴복하면 죽음이고 극복하면 생존이다. 극복을 선택하려면 고통과 위험이 뒤따른다. 그러나 어차피 겪어야 할 고통과 위험이라면 불평 불만 하는 것보다는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좋게 좋게 생각해야 성공 가능성이 올라가지 않겠는가? 이때 긍정적인 마음가짐이 극복의 확률을 비약적으로 상승시키는 버프가 된다.


부정은 본능이고, 긍정은 의지다. 부정이 자연스러운 상태이며 긍정이 오히려 부자연스럽다. 긍정적이 되는 것만으로도 에너지가 필요하다. 우리의 신체는 기본적으로 에너지를 저장하고 아껴 쓰는 쪽으로 기능한다. 그래서 긍정은 어렵다. 그러나 긍정적인 상태가 될 수만 있다면 인간은 기적도 이룰 수 있다. 세상의 많은 기적 같은 일에는 언제나 긍정이 있었다.


긍정은 늘 리더의 몫인 이유도 이 때문이다. 항상성을 유지하려는 사람들을 위해 기꺼이 위험한 긍정인이 되려는 선택을 하는 이들이 리더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리더 가운데에서도 오랫동안 살아남는 리더가 있는데 그들의 공통점은 바로 냉정하다는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긍정과 지나친 낙관은 전혀 다르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냉정한 긍정이다. 긍정적이되 냉정적이어야 한다. 긍정적인 사람이 불타오르는 낙관을 지니면 대개 낭패를 보게 된다. 사기를 당하기도 쉽고, 말도 안 되는 아이템으로 사업을 시작할지도 모른다. 긍정 앞에 놓인 것들은 그것이 실패했을 때 큰 피해를 야기하는 것들이다. 그렇기에 긍정적인 태도를 가지되 항상 냉정하게 평온한 마음을 유지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냉정하다고 부정적이라고 오해해선 안된다.


우리는 냉정한 것을 부정적인 것으로 보는 실수도 같이 저지른다. 긍정을 낙관으로 보듯이 말이다. 이런 마음을 경계해야 한다. 우리는 얼마든지 긍정적이면서도 냉정해질 수 있다.


현대에 이르러 항상성을 유지하는 방법은 매우 간단하다. 바로 죽을 때까지 유지되는 경제적 자유를 얻는 것이다. 즉 돈만 있으면 된다는 뜻이다. 과연 누가 리더가 되고 싶어 할까? 많은 현대인들이 바라는 것은 안온한 내 공간에서 편히 쉬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항상성을 유지하고 싶은데 항상성을 유지하려면 항상성이 없는 일을 해야 한다. 바로 구직활동과 일, 재테크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가난이 무서운 것은 지금 당장 안온해 보이는 소박한 소비가 평생 이어질 것이라는 착각에 빠져있다는 사실이다.


죽는 그 순간까지 저축이 이어져야 한다. 은퇴시점부터 저축을 쓰기 시작한다? 과연 그게 얼마나 갈까? 계산 완료 되었나? 온전한 항상성의 조건은 죽는 그 순간까지 노동 없는 현금 흐름이 이어지는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여러분은 확정적으로 점점 0에 수렴해나가고 있는 셈이다. 부자는 그걸 아는 사람이고 그걸 모르는 사람은 모두 가난하다. 누구나 항상성을 유지하고 싶어 한다. 모두가 그렇다. 따라서 그 항상성에 순응하는 사람들은 가난하다. 가난에서 탈출하고 싶은가? 그럼 항상성을 버려라. 변화하라. 두렵다고? 모두가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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