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의 그거

가난에게 배울 건 가난밖에 없다

by 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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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가면 따뜻한 거 그거 해야겠다."

"자기야 목에 하는 거 그거 얼른 해."

"나 자기가 지난번에 해준 그거 먹고 싶어.”


난 “그거”라는 말이 너무 좋다. 그것은 우리가 함께 공유하는 “그것”이 있기 때문이다. 너의 그것과 나의 그것이 다르다면 우리는 결코 그것에 대해 대화할 수 없다. 때론 가족과도 그것에 대해 소통할 수가 없었다. 특히 엄마의 그것이 그렇다.


"정우야 저번에 그거 어디에 뒀니?"

"그게 뭔데?"

"왜 그거 있잖아 예전에 네 아버지가 그거 했던 거 있잖아."

"????"

엄마의 그거는 아들로서는 알 도리가 없는 경우가 많다. 엄마의 그거에는 힌트가 없다. 그래서 엄마의 그거는 어렵다. 더욱이 내가 대구 출신이어서 더 그런 것 같기도 하다. 한때 경상도 사투리인 "가가 가가가?"라는 밈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내 주변에 '가'씨 성을 가진 사람은 없지만 실제로 "가가 가가?"라는 말은 몇 번 들어 봤다. 적어도 내 고향 대구에서의 어릴 적엔 명사보다 인칭 대명사 몇 개로 퉁치는 경우가 더 많았다. 적어도 내 기억으론 그랬다.


영어는 똑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을 싫어한다. 그래서 처음엔 이름을 말했다가 그다음엔 그가 되고, 그다음엔 누구의 아들, 때로는 눈이 맑은 같은 수식어를 동원하기도 한다고 한다.


목에 하는 거 그거


그것은 목도리가 될 수도 있고, 목토시가 될 수도 있다. 넥타이가 될 수도 있고, 스카프도 될 수 있다. 내 경우엔 여자친구의 아버지가 선물로 주신 쫀득쫀득하고 부드럽고 따뜻한 목토시가 그 주인공이다. 여자친구는 어디 나갈 때마다 내가 그거를 착용하는지 매의 눈으로 바라본다. 여자친구의 아버지가 사줘서 일 수도 있고, 똑같은 선물을 여자친구 여동생의 남편 즉 여자친구의 매부가 너무나 애용한다는 말을 들어서 일 수도 있다. 그것도 아니라면 여름엔 누구보다 멋지게 옷을 입고 다니지만 겨울이 되면 온몸을 꽁꽁 싸매 마치 귀여운 펭귄 같은 여자친구의 추위에 대한 공포로 인해 나까지 자기만큼 추울 것이라는 모성애 때문일 수도 있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올 겨울의 나는 여자친구가 선물해 준 패딩 점퍼를 입고, 여자친구가 선물해 준 어그 부츠를 신고, 얇디얇은 슬랙스만으론 절대 성이 차지 않아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강조하는 히트텍도 입고 있다. 옆에서 푸근하게 바라보는 모습은 애정인지 모정인지 헷갈리기도 하다.


여자친구는 경기도 사람이고 나는 경상도 사람이다. 그래서 둘의 말투는 아주 다르다. 인천에 올라온 지 햇수로는 8년이 되었는데 사투리는 좀처럼 고쳐지지 않는다. 억양이 제법 약해진 사투리를 구사하는 나로서는 언제나 여자친구로부터 놀림 아닌 놀림을 당한다. 때로는 일부러 재미삼에 강하게 사투리를 쓰곤 하는데 그럴 때면 여자친구는 진짜 사투리에 깜짝 놀란다. 그걸 또 따라 하는데 그게 어찌나 귀여운지 모른다.


8년을 인천에 살았다고 해도 윗지방 사람들과 장시간 대화를 나눌 기회는 거의 없었다. 마지막 기회라고 여기고 창업했던 카페를 화재로 잃고 올라온 인천이었다. 물질적인 재산은 잿더미가 되었다 남은 재산은 부채가 전부였다. 조카가 셋이나 있는 누나집에 얹혀살았는데 누나는 말할 것도 없고, 매형도 전라도 사람이라 서울말 쓰는 사람은 집에 아무도 없었다. 일단 가족 중엔 사투리를 고쳐줄 만한 사람이 없었다.


인천에 올라와선 누나가 운영하는 전자제품 매장에서 직원으로 일 했는데 손님을 응대할 때마다 어김없이 "여기 사람 아니죠?"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그 말이 너무 듣기 싫어 유튜브를 통해 서울말 연습도 해보고 진짜 레슨이라도 받아야 하나 싶은 마음까지 들었다. 대구 출신으로서 서울말은 여간 손이 오그라드는 말투가 아닐 수 없기 때문에 그걸 따라 하는 게 퍽 곤욕이었다. 그래서 아직도 표준어는 잘 구사하지 못한다. 지금은 간혹 가다 여기 사람이 아니라는 말을 듣는데 적어도 손님 응대할 때는 사투리를 덜 써서 그런가 보다 생각하고 있다.


그런 사람이 대구에 가면 서울사람 다 됐다는 말을 듣는다. 진짜 들을 줄 몰랐는데 듣고야 말았다. 희석된 나의 말투는 이제 대구말도 서울말도 아닌 이상한 말이 되어 버렸다. 물론 맘만 먹으면 얼마든지 대구 사투리는 쓸 수 있다. 그렇지만 솔직히 좀 더 완벽하게 표준어를 구사하고 싶다.


이제 주변에 인맥이 많이 생겨서 마음먹고 세 달 정도만 훈련하면 고칠 수 있을 것 같기도 한데 8년이나 지나버려서일까. 매너리즘에 빠진 나는 굳이 남아있는 사투리를 고칠 생각을 하지 않게 되었다. 안일해지면 안 되는데 아직 마흔도 되지 않았는데 자꾸 입에 나이를 언급하게 된다. 나이라는 단어를 금지해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은 게 몸이 느낀다.


그거라는 말은 아무것도 아니기도 하지만 애틋한 너와 나에게는 그거만큼 달달한 말도 없다. 오직 우리 둘만이 알고 있는 그것이기 때문이다. 세상 사람 모두가 모르고 오직 우리 둘만 아는 그거. 물론 그거는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눈빛만 봐도 안다는 게 그런 거 아닐까?


또 그런 생각도 들었다. 언어는 기호다. 기호는 약속이다. 목에 하는 그거가 국가와 시대 문화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우리는 머플러, 목도리, 목토시, 머플러 같은 특정 단어로 그것을 지칭하기로 사회적 합의를 한다. 그러나 사회적 합의는 결국 그 사회에서만 이루어진다. 미국에서는 목도리라고 해봐야 알아먹지 못한다. 그러나 목에 하는 그거를 언어가 아닌 몸짓을 섞으면 대충 알아먹는 바디랭귀지가 된다. 순우리말도 한자말도 라틴어도 먼 과거에서부터 만들어진 고지식한 약속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종대왕께서는 세상의 모든 소리를 표현할 수 있는 한글을 창제하셨다. 한글은 진짜 굉장한 언어다. 이런 굉장한 언어로 우리는 별의 별것을 다 만들어 낸다. 그러나 한축에서는 이런 현대어들을 경계하고 나무란다. 줄임말이나 신조어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명하기도 하는데 솔직히 나는 그게 왜 문제가 있는지 모르겠다. 문제가 되는 부분을 구태여 지적하자면 때와 장소에 맞지 않게 사용하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겠다. 중요한 발표장이거나 면접자리 같은 공식 석상에서는 공적인 언어를 써야지 자신만의 언어를 쓰면 곤란하다. 아니면 앤디 워홀만큼 유명하던지.


줄임말이 재미있고 실용적이긴 하지만 TPO는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그들이 지적하고 싶었던 것도 바로 그것일 거라 생각한다. 굳이 나무라지 않아도 남을 말은 남고 없어질 말은 없어진다. 지적한다는 것도 문제지만 기왕에 지적할 것이라면 제대로 알고 지적해야 한다. 맥락 없이 지적하는 사람이나 그걸 꼰대라고 비난하는 사람이나 거기서 거기다. 나이를 뻘로 잡수셨거나 머리에 피도 마르지 않았거나 둘 다 불편하게 만드는 건 똑같다. 머리에 피도 안 말랐다는 소리를 들은 사람들이 보통 나이를 뻘로 잡수긴 했더라만은…


글쓰기를 좋아하는 나는 기호로 가득 찬 단어들을 깨 부수고 그걸 풀어서 표현하는 노력을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박경리 작가는 "작가는 사물의 이름을 아는 자다."라고 했지만 언어는 살아있는 생물과 같아서 시대에 거듭하며 그 형태가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시대를 관통하는 좋은 글들은 그 시대의 기호보다는 더 풍부한 표현 묘사에 기대는데 그런 글들이 예술이 되는 것 같다.


"5월의 시골 2차선 도로 가장자리에 곱게 자리 잡은 아직 채 영글지 않은 연보랏빛 아름다움을 지닌 매발톱꽃"이 "도로에 핀 이름 모를 보라꽃"이라는 말보다는 훨씬 멋지다. 그러니 작가는 여전히 사물의 이름은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작가가 현상과 물질을 명사로만 표현하라는 법은 없다는 말을 하고 싶었을 뿐이다.


세상은 다양하다. 심지어 다양한 게 변하기까지 한다. 다양성과 변화를 인정하는 것이 먼저다. 따라갈지 말지는 그다음 문제다. 따라갈 필요가 없는 분들도 있고 따라가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도 있다. 역시 다양성의 문제다. 가난한 이들은 이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아니면 굴복당했거나. 자신은 그 다양성을 따라갈 수 없다고 한다. 쉽지 않은 거 안다. 진짜 가난한 이들이 가난에서 탈출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그 상황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멈추면 안 된다. 확률 100%의 가난은 피해야 한다.


그래서일까 가난을 극복한 사람들에겐 배울 점이 많지만 가난한 이들에게 배울 건 가난밖에 없다. 나는 부자들의 성공 신화에 자극을 받고 나도 할 수 있다는 마음보다 운이 좋았다거나 환경이 좋았다거나 같은 이유를 먼저 대곤 했다. 판자촌에서 살았던 세이노가 1천억 부자가 되어 쓴소리를 할 때 나는 세이노가 운 좋게 영어를 배울 기회가 있었고, 군대를 부동산 관련으로 가서 부동산에 대한 지식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핑계를 댈 수도 있다. 부자가 되고 싶은 마음 보다 1천억이라는 숫자가 현실적이지 않게 느껴지기 때문에 이룰 수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나 같은 사람 때문에 나처럼 미리 계산기를 자주 빨리 많이 두드리는 사람들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첫 번째 주어져야 할 과제는 가난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러려면 가난을 정의해야 하고 자신이 가난상태임을 인정해야 한다. 그런 용기가 필요하다. 이런 용기는 쓴 가루약과 같다. 먹어서 꿀떡 삼켜야 한다. 그런 다음에야 <세이노의 잔소리>가 제대로 들리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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