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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우 Jun 26. 2023

당신의 메이와쿠에 부자들은 더 부자가 된다

폐 끼쳐도 괜찮다



글쓰기 위해 여행길에 오르는 사람들이 있다. 나도 여행을 다녀와서 처음 글을 썼으니 여행이 한 사람에게 얼마나 많은 영감을 주는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그러나 여행지에서 글을 쓰는 것과 여행을 다녀와서 글을 쓰는 건 전혀 다른 일이다. 어쩌면 유튜버들도 같은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다. 영상이나 사진이야 당연히 여행 다니면서 촬영하겠지만 사실 인증숏을 몇 개 찍는 게 아닌 영상 편집을 목적으로 꽤 오랫동안 많은 양의 영상을 찍는 것도 보통일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여행을 다니며 그때그때 들었던 생각을 간직하기 위해 자리에 멈춰 서서 기록을 남기는 것도 쉽지 않다. 그것도 말 하나 통하지 않는 해외라면 더욱 그렇다. 길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손에 붙들고 있는 구글맵과 파파고 번역기 그리고 혹시나 역을 지나칠세라 바짝 긴장하고 있는 귀는 덤이다. 뭔가는 포기해야 한다. 영상미를 추구하려면 여행을 포기해야 한다. 여행을 포기 못하면 영상은 그냥 일상물이 되어 버리지만 요샌 그게 또 인기다. 글도 그렇다. 문학성을 추구하려면 분량을 포기해야 하고 마찬가지로 여행의 즐거움은 포기해야 한다. 여행지에서 마음껏 영감을 얻으려면 혼자 떠나는 게 좋다. 그래서일까 글은 시련을 했거나 그에 상응하는 감정적 충격이 있을 때 홀로 남겨져 있을 때 잘 된다.  



이번 여행에서 나는 길잡이 노릇을 하며 현지 소통까지 도맡았다. 사진을 찍는 한편 영상도 찍고 다음 행선지를 미리 알아보고 최적의 동선을 짜야한다. 목적지에 도착하면 자리가 있는지 가격은 얼마인지 파파고 번역기 돌려가며 열심히 소통했다. 메뉴 주문부터 마지막 계산까지 다했다. 다들 나보다 바쁜 친구들 이어서 더 내가 해야 했다. 더 알아볼 여력이 있다는 것이 서글픈 한편 그래도 3년 만에 외출이라 많이 들떠있어서 그런 사실도 여행 중엔 금방 잊어버렸다. 그게 잊어버려야 할 사실이라는 게 좀 슬프지만… 사실 난 한 자리에서 멍하니 사람들 지나가는 걸 보는 여행을 아주 좋아한다. 내게 여행은 언제나 사람이었다. 외국에서 외국인들이 사는 모습, 여행하는 모습을 보는 게 좋다. 



짧은 일정이라 맥북을 챙겨가는 건 지나치다고 생각했고, 저녁에 숙소에서 마무리로 맥주 한잔 하면서 영상도 보고 글도 쓰려고 아이패드와 키보드만 챙겨갔다. 결국 아이패드도 키보드도 사용을 못했고 거추장스러운 짐이 되고 말았다. 그래도 혹시 하루 정도는 한 시간 정도는 글 쓸 수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혼자 3일 가는 여행이라면 분명 글을 썼을지도 모르겠다. 강이 보이는 비교적 한적한 카페에 자리를 깔고 커피 한잔과 디저트를 주문했을 것 같다. 글 주제는 아마도 여행지에서의 “외로움” 이라거나, “여행의 이유” 혹은 “대화소리가 들리지 않는 일본의 거리”였을 것 같다. 오사카 거리에서는 말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으니까. 



일본인들은 폐 끼치지 않으려는 자세가 뿌리깊이 잡혀 있는 편인데 이를 "메이와쿠"라고 한다. 일본인이 아니지만 어째서인지 나도 그렇다. 그러나 폐 끼치기 싫은 이유는 서로 다르지 않을까. 사실 나는 폐 끼치는게 싫은게 아니다. 폐를 끼친 이후 혹시나 누가 지적을 했을 때 밀려오는 수치심을 견뎌낼 수 없을 것 같은 마음이라고 하면 더 정확한 표현인 것 같다. 지적을 당했을 때 때론 심하다 싶을 정도로 뻔뻔해지곤 하는데 아마도 이 견딜 수 없는 수치심을 정당화하기 위함일 확률이 높을 것이다. 이는 5살 어린이도 느끼는 감정인데 소설 <나의 라임오렌지나무>에서 제제가 뽀르뚜가에게 처음 엉덩이를 맞았을 때 살의를 느낀 것과도 같다. 그러고 보면 이는 메이와쿠도 뭣도 아니고 그냥 수치심을 견디기 싫어 수치스러운 행동을 하지 않으려는 인류의 모습이 아닐까. 일본은 전국시대부터 이어온 사무라이들의 행폐 때문에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 폐 끼치지 않았다는 게 정설이다. 수치심도 목숨값에 비한다면 얼마든지 버릴 수 있었으리라. 이런 것도 <인간실격> 일까?



이런 폐 끼치지 않으려는 마음에서 벗어난 사람들은 어쩐지 극단적이다. 극단적으로 교육받지 못했거나 극단적으로 이기적이거나 극단적으로 사회성이 부족하다거나 하는 경우다. 아니면 폐를 끼치더라도 자신의 목적을 달성해야 하거나 암묵적인 룰이 있는 경우일 수도 있다. 폭력배들이 일반인들에게 엄청 폐 끼치는 한편 그들만의 세계에서는 마찬가지로 룰을 엄격하게 지키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내가 주목하는 경우는 이런 마음을 역이용하는 사람들이다. 내가 상대에게 위협을 느끼거나 또 폐를 끼친다는 마음이 든다는 것은 반대로 상대방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은 이런 상대방의 심리를 잘 이용하는 사람이지 않을까. 미안한 마음을 일으키는 것 그리고 그것을 하는 것 그러면서 스스로는 미안함을 감추는 것. 그리고 그것이 일상화가 되어 무뎌지는 것은 굉장한 무기가 된다. 이러나저러나 상위의 폭력과 재력 그리고 권력은 모든 것을 압도한다. 힘이 세고 돈이 많으면 폐 끼치는 마음이 없어도 된다. 드라마에서 상류층 자제들이 그런 모습으로 많이 풍자된다. 그래서일까. 폐 끼치는 마음과 사소한 것에 미안함을 느끼는 건 언제나 가난하고 약한 자들의 것처럼 느껴진다. 가난은 죄도 아니고 패배도 아닌데. 어쩌면 부자가 된다는 것은 폐를 끼치는 것보다 부자가 되고 싶은 욕구가 더 크기 때문이 아닐까. 뼛속까지 세겨져 있는 가난의 유전자는 남에게 피해를 주거나 상처받게 되는 게 두려워 기꺼이 자신의 이익을 포기한다. 그러나 부자가 되고 싶은 갈망을 가진 이들은 뭔가 달라도 다르다. 나는 부자가 아니라서 잘 모르겠지만 그들에겐 빈자들에게 없는 무언가가 있음은 확실하다. 아니면 우리가 생각하는 폐를 그들은 폐라고 느끼지 않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폐가 아니라고 교육받으며 자라왔을지도 모르겠다.



여행에서 딱히 배려받지 않았지만 나는 왜 그렇게도 배려하려고 했을까. 왜 내가 원하는 대로 하지 못했을까. 그들이 나보다 더 많이 가졌다는 사실 그리고 더 바쁘다는 이유로 나는 내 시간을 써가며 그들의 즐거운 여행을 위해 기꺼이 나를 희생했다. 같은 시간에 그들은 돈을 벌었고 나는 여행 계획을 짰다. 그게 내가 가난한 이유다. 내가 내 시간에 이미 가난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내가 모르는 돈 되는 일을 내가 배려하고 있는 시간에 했다. 그들은 자신을 위해 열심히 돈 되는 일을 했지만 배려받았고, 나는 돈도 안 되는 일을 하며 그들을 배려했다. 뭔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메이와쿠"다. 여행 기간동안 단 한 글자도 적지 못하고 제대로 가이드를 못해 준 것에 아쉬움을 느끼고 스스로는 제대로 된 여행도 하지 못했다. 여행 전부터 개인 시간을 사용했고 여행 중에는 개인시간을 누리지 못했다. 그리고 마음껏 여행하지도 못했다. 안 쓰는 것과 못 쓰는 건 다르다. 그래도 다행이다. 이제라도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책을 더 많이 읽는다고 부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글 써서 부자가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무엇보다 그들을 배려하는 것도 부자가 되는 길에서는 영 벗어나 있다. 가진 건 시간밖에 없는 나는 무엇보다 그 시간을 지켜내야 한다. 그게 가지지 못한 자가 해야 할 최우선 과제다. 



가난이 가난에게 한마디 하고자 한다. 폐 끼쳐도 된다. 타인의 호의는 기꺼이 받아들이고 미안해하지 마라. 그 미안함은 받은 호의에 보답할 자신이 없어서에서 비롯된 것이니 받은 만큼 값을 수 있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해라. 당신의 하루에 최소 30만 원의 가치를 미리 부여해라. 당신이 고민하고 폐 끼치지 않으려고 들이는 그 시간이 모두 돈이다. 당신이 폐 끼치지 않고 배려하는 시간에 부자들은 까르띠에, 샤넬, 벤츠를 살 수 있는 돈을 번다. 당신의 메이와쿠에 부자는 더욱 부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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