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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우 Jul 14. 2023

생각 쓰레기통

걱정 다이어트



내가 글을 쓰는 도구는 맥북의 페이지스와 네이버 블로그, 그리고 카카오 브런치와 아이폰 메모, 손글씨가 있다. 손글씨는 주로 불렛저널과 생각을 할 때 쓰기 때문에 글의 소스가 되는 메모나 간단한 생각들이 주로 쓴다. 실제로 가장 많이 쓰는 것이 아이폰 메모이고 최근엔 하루에 1시간씩 에세이를 브런치 툴을 이용해서 작성 중이다. 그리고 현재 작성 중인 이 글도 브런치 툴로 작성 중이다. 브런치 작가가 되지 못했기 때문에 내 글은 작가의 서랍에만 저장되고 노출되진 않는다. 그래서인지 정리되지 않는 썩은 글들을 한번 더 점검할 수 있어서 좋다.



나는 왜 글을 쓰고 있는지 생각하게 되었다. 초등학생인 나는 분명 방학숙제 일기를 개학 하루 전에 몰아 쓰는 아이였다. 그러니 어렸을 때부터 글 쓰는 걸 좋아하지 않았던 건 확실하다. 당시에 학급문고의 책을 다른 아이들보다 조금 열심히 읽긴 했지만 특별히 기억나는 책도 없고 딱히 칭찬을 받은 기억도 없는 걸 보면 독서도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다. 당시 진짜 공부도 못하고 덩치만 산만한 게 학급문고의 책을 수업시간에도 본 덕분에 독서상을 받은 짝꿍이 기억난다. 그래서 내가 독서로 칭찬받지 못했다는 게 뚜렷하게 기억이 난다.



중학생 때도 고등학생 때도 마찬가지다. 내 기억에 뚜렷하게 남는 책은 딱 세 작품인데 하나는 어린 왕자, 또 하나는 상실의 시대,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살만 루슈디의 <악마의 시>라는 책이다. 악마의 시의 내용도 어렴풋이 기억나는 이유는 상하권으로 이루어진 이 책을 거의 1년간 붙들고 읽어나갔기 때문이다. 책이 좋아서 읽었다기보다는 기왕에 시작했으니 오기로라도 오르는 산정상 같은 느낌으로 읽었다. 그래서 그 이후로 오랫동안 책을 읽지 않았다. 왜 산도 적당해야 다음에 또 오를 맛이 나지 진짜 심하게 고생하고 나면 다시는 산에 가고 싶지 않듯이 책도 그랬다. 그즈음 내 모든 관심사가 기타와 작곡이었으니 책에 대한 관심은 더욱 떨어지기도 했다. 



내가 에세이를 쓰는 이유는 소설을 쓸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서가 아니다. 아직은 내 고민과 생각들을 모조리 내뱉어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부끄러움 때문이기도 하고 실제로 이런 작업을 이번에 처음 해보기 때문이기도 하다. 모든 작가는 에세이부터 쓴다. 에세이는 수필의 한 종류인데 수필은 따를 수, 붓 필이라는 한자를 써서 붓 가는 대로 쓰는 글을 의미한다. 손 수가 아니라 따를 수다. 쉽게 말하면 의식의 흐름대로 생각나는 대로 마구마구 쓰는 글이다. 그래서 수필엔 한 사람의 생각이 고스란히 담긴다. 형식이 없다 보니 어떨 땐 세상 하잘데 없는 글이 되기도 하고 핵심을 관통하는 통찰이 담긴 잠언이 되기도 한다. 



한국말로 수필은 에세이 보다 상위 개념이다. 수필의 종류에는 설, 여행기, 유서, 일기, 자서전까지 포함된다. 한국과 일본에서는 보고서 형식의 대학 과제를 지칭할 때 리포트라고 하는데 알고 보니 이는 재플리시 즉 일본식 영어이며 실제로 영미권에서는 ‘텀 페이퍼'나 '에세이'로 통용된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리포트도 개인의 견해들을 담아야 하니 에세이로 보는 게 맞다. 에세이라고 생각하고 접근했으면 리포트도 더 잘 썼을까? 



에세이도 내가 맨날 쓰고 있는 경수필과 좀 더 논리적이며 객관적인 중수필도 있고, 학술적으로 쓰이는 학술적 에세이는 아카데믹 에세이 혹은 소논문이라고 정의된다. 흔히 유학을 갈 때 에세이가 중요하다고 하는데 이때의 에세이는 어드미션 에세이를 의미한다. 어드미션 에세이는 일종의 자기소개서로 cover letter와 같은 역할을 한다. 이렇게 보니 수필에도 수식어가 참 많이 붙는다. 결국 수필도 다 같은 수필은 아니고 얼마든지 구분해서 쓸 수 있다. 다르게 생각하면 형식 따위 집어치우고 막 써도 된다는 뜻도 된다. 지금 이 글처럼.



사람들이 읽기 좋아하는, 잘 썼다고 생각하는 글이 있는데 OREO 글쓰기 형식을 쓰면 그런 느낌이 든다. O.R.E.O는 opinion, Reason, Exsamlpe, Offer 네 단어의 첫 글자를 따서 이름 지은 하버드에서 가르친다는 글쓰기 방식이다. 



첫 번째로 오피니언, 즉 내 주장을 먼저 제시한다. 두 번째로 리즌, 주장을 제시하는 이유 등을 제시한다. 세 번째로 이그젬플, 주장에 대한 이유를 설명한다. 마지막으로 오피니언/오퍼, 다시 한번 주장을 어필하고 요약 갈무리 한다. 이 방법을 써서 수필을 쓰면 읽는 사람이 받아들이기 쉽고 잘 썼다고 느끼게 만들 수 있다. 학술적 에세이는 대부분 이런 형식으로 쓴다. 아니 써야 한다. 실제로 말을 잘하고 또 말이 쉽게 이해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이 보통 이런 방식을 쓴다. 내 주변 사람들이 내 주장을 지루해할 때가 많은데 알고 보니 나는 주장을 늦게 제시하고 예시를 그럴듯하게 제시하지도 않고 이유만 장황하게 늘어놓기 때문이다. 이런 방식은 보통 정치인들이나 권력자가 대답을 회피할 때 기자회견이나 청문회에서 쓰는 방식인데 나는 그걸 일상적으로 쓰고 있었다. 왕이 될 상인가…



사람들은 일단 머리말이 솔깃해야 다음 말을 듣게 된다. 그리고 예제들이 쉽고 재미있으면 더 오래 그 사람을 붙들 수 있고, 예제까지 다 들었으면 다시 주장을 어필함으로써 나의 생각을 마무리까지 지을 수 있다. 상대가 내 말을 끝까지 들어주지 않거나 내 글을 끝까지 읽어주지 않는다면 십중팔구 형식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아니면 정말 재미가 없거나 사회성 부족한 어투나 태도가 문제일 수도 있다.



30분 넘게 글을 쓰고 있는데 처음엔 글도구에 대해, 그리고 학창 시절 독서에 관해 이야기하다가 뜬금없이 에세이와 수필을 설명하고 좋은 글의 형식으로 이야기하는 것까지 넘어왔다. 이게 정말 의식의 흐름이다. 지금까지 읽었다면 "아 그렇구나"하고 넘어갈 수 있지만 독자들이 이 문장까지 읽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괜찮다. 글은 창작보다 퇴고가 중요하니까 필요에 따라 없앨 내용은 없애고 주장은 당겨 올리면 된다. 무엇보다 제목이 곧 주장이기 때문에 제목을 붙들고 늘어지면 된다. 



글은 제목이 중요하다. 왜 저런 문장을 제목으로 삼았는지 1분 안에 설명하면 끝날 일이기도 하다. 생각 쓰레기통은 감정 쓰레기통 이란 말에서 따왔다. 사회적인 이슈인 감정 쓰레기통 문제는 자신의 감정을 타인에게 모조리 내뱉어 버림으로써 자신의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것을 말한다. 감정 쓰레기통 당사자는 일반적으로 약자이며 무기력한 상태에서 온전히 타인의 감정을 받게 된다. 감정 쓰레기통 이야기를 하면 1시간으론 턱도 없으니 이 이야기는 다음에 하자. 



우리는 생각과 고민과 걱정이 너무 많다. 물론 사람이라면 생각과 고민과 걱정을 해야 한다. 문제는 너무 많이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특수 상대성 이론을 연구하는 아인슈타인만큼 생각하는 시간이 많다. 하지만 보통은 쓸데없는 해결되지 못하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생각에 목적이 없다. 뉴튼의 고전역학법칙도 떨어지는 사과에서 힌트를 얻었듯이 생각만 가지고는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 생각하기를 멈추고 실행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우리 모두에게 각자의 실행 컨베이어 벨트가 있어야 한다. 벨트로 밀려드는 부품들이나 재료들은 내 분량만큼 반드시 처리해야 한다. 수학 문제라면 하루에 반드시 100문제 풀기가 될 수 있고, 운동이라면 하루 1만 보 걷기라는 것들이 실행 컨베이어 벨트가 될 수 있다. 물론 효과적으로 문제 풀기나 1만보를 더 운동이 되게 걷기 위해 연구하고 고민하고 생각할 필요는 있지만 우리는 1만보를 걷지도 수학문제를 풀지도 않았으면서 어떻게 걸어야, 어떻게 풀어야 효과적일지 고민과 생각만 하고 있다는 게 문제다. 재료들은 밀려들고 있는데 말이다. 일단 처리해 나가는 사람들이 성공한다. 



요즈엔 성공보다는 무한한 가능성이라는 표현이 참 좋다. 어떤 일들이 닥쳤을 때 내가 왜 해야 하는지 묻는다면 성공보다 무한한 가능성이 효과적이다. 어떤 이들은 "나는 성공 같은 거 안 해도 되는데" 같은 말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가능성 없어도 되는데"라고는 결코 쉽게 말하지 못할 것이다.



이 컨베이어 벨트가 효과적으로 돌아가려면 생각과 걱정, 고민을 처리해 줄 컨베이어 벨트도 필요하다. 나는 그걸 수필 쓰기로 한다. 즉 글쓰기가 내 생각 쓰레기통인 셈이다. 이 쓰레기통은 저장도 되고 언제든지 재활용도 가능하다. 그리고 효과적이다. 키보드로 두드리기만 하면 된다. 브런치 서랍에 넣으면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으면서도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공개할 수 있다는 가능성까지 열려있다. 여차하면 작가가 될 수도 있다. 



나는 글쓰기라는 생각 쓰레기통이 현대인에게 필수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들은 글쓰기에 앞서 이런 걸 써도 되나 하고 고민한다. 그러고 나서 한다는 말이 "누가 보면 어떡하냐"다. 진짜 쓸데없는 고민이다. 인스타 계정조차 없는 언노운 #1 주제에 누가 보면 어쩌나 하고 걱정한다. 어릴 적 내 일기를 훔쳐본 부모님이 원흉일까? 만일 내 생각 쓰레기통을 누군가 봐주고 댓글까지 달아준다면 이는 감사할 일이다. 그 사람 덕분에 작가가 된 셈이다. 적어도 카카오 브런치의 작가 서랍은 본인이 공개하지 않는 이상 타인은 그 글을 보지 못한다. 그러니까 마음껏 내뱉어도 된다. 이는 소리 없는 아우성이며 글로 된 쓰레기를 버리는 통이다. 누구에게 피해를 줄 것도 없다. 단지 1시간 정도 타자를 칠 수 있는 환경 정도면 충분하다. 키보드도 싸구려 말고 무접점 키보드나 기계식 키보드처럼 타자감 쫀득한 거 하나 있으면 더 글 쓸 맛이 난다. 글쓰기 도구에 대해서도 더 이야기해야 하는데 시간이 부족하다. 내 쓰레기통 이용시간이 이제 6분 남았기 때문이다.



나처럼 가난한 사람도 글쓰기에는 투자를 좀 했다. 100만 원 가까이하는 몽블랑 만년필은 엄두를 못 내도 5만 원대의 질 좋은 독일제 카웨코 만년필이라도 있으면 손글씨 쓰는 맛이 있다. 1만 원짜리 샤프도 좋고 한 필에 1천 원이 넘는 연필이라도 있으면 손 글씨 쓰는 맛이 난다. 그런 게 내 눈에 밟혀야 만져라도 보고 그러다 글도 쓴다. 이 방법은 정말 효과적인 방법이니까 나는 당신이 이 글을 읽었다면 하루에 1시간씩 꼭 컴퓨터 앞에 앉아 타자를 두드렸으면 좋겠다. 글감들은 내 손으로 쓴 메모들과 혹은 스마트폰에 기록한 메모들이 될 수 있고 정 안되면 오늘날 하루종일 괴롭힌 상사의 욕을 1시간 동안 써도 좋다. 해보면 안다 1시간 동안 욕하려면 지식도 필력도 필요하다. 그러면 신박한 욕을 찾기 위해 포탈 검색도 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유튜브에서 욕의 기원에 대한 2시간짜리 다큐멘터리까지 보게 될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당신은 욕에 관한 한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박식해져 있을 가능성이 크다. 고작 1시간 글쓰기 덕분에 말이지. 시간은 1시간이 딱 좋다. 



무라카미 하루키도 매일 1시간씩 에세이를 쓴다. 나도 쓴다. 그러니까 당신도 쓸 수 있다. 10분? 너무 짧다. 당신의 생각이 터지기도 전에 닫혀 버린다. 운동에만 세컨드 윈드가 있는 건 아니다. 인생에도 있다. 그리고 생각 내뱉기도 그렇다. 언젠가 기도원에서 방언 터지듯 내 생각도 터진다. 그러려면 한 시간은 필요하다. 해보면 느끼겠지만 초반 10분이 지나면 아직도 50분이 남았냐고 생각 들것이다. 그러나 막상 10분 정도 남을 때가 되면 10분밖에 남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을 토로하게 될 것이다.



하루에 1시간씩 에세이를 쓰다 보니 글이란 어쩌면 내 생각을 버리는 쓰레기통이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생각과 걱정 고민이 너무 많다. 그리고 그걸 너무 길고 오래 하곤 한다. 하루 어쩌면 며칠씩 그 것에 사로잡혀 있기도 한다. "생각 세상"에서는 실행이라는 친구가 힘을 쓸 수가 없다. 그래서 현실에서 자꾸 불행하게 되곤 한다. 생각 없이 살라는 말은 아니지만 당신은 지금 생각 비만, 걱정 비만일지도 모른다. 당신에겐 걱정 다이어트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별 것 없다. 어렵지 않다. 지금 당신이 하고 있는 그 생각을 글로 쓰기만 하면 된다. 종이와 펜이 없으면 스마트폰 메모도 좋다. 워드도 좋고 페이지스도 좋다. 타이머를 켜두고 딱 1시간만 하면 된다. 1시간이 어렵다면 10분도 좋지만 1시간은 생각보다 매우 짧은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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