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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우 Jun 12. 2023

글쓰기 vs 다이어트

가난은 가난을 초래한다


100일간의 다이어트


100일간 15kg을 감량했다. 그 기간 동안 정말 힘든 시간을 보냈다. 사람이 본능을 억제하고 생리를 거스르는 일을 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5대 2 간헐적 단식


이 방식은 5일간 1일 4식 단식을 시행하고 이틀간은 하루에 1시간만 식사를 하고 나머지 23시간을 절식하는 방식이다. 주어진 1시간의 식사시간동안은 평소 한 끼 식단의 두배를 먹는 것이다. 그 외에는 오로지 물만 마셔야 한다. 물만... 그 100일 동안의 나는 뭔가 결핍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 결핍에선 일종의 카타르시스가 느껴진다. 


공허함


일주일에 이틀간을 극한의 공복상태에 있었다. 그리고도 5일간은 절제된 식사를 했다. 식단은 먹어도 공허한 느낌이 든다. 그 느낌이 무엇일까. 확실하진 않지만 아마도 도파민 결핍이 아닐까. 다이어트할 때 유일하게 즐거운 시간이 있다면 그것은 아침 공복에 체중과 복부 둘레를 확인하는 시간이다. 그리고 인증샷. 거울 속에 달라진 내 몸을 보면 그 짧은 시간만큼은 극상의 만족감이 밀려온다. 그러나 그뿐이다. 하루 24시간 중 고작 2분을 제외하면 나머지 23시간 58분 정도는 도파민 결핍 상태에 놓이게 된다. 다이어트가 진짜 힘든 이유는 배고픔이 아니라 도파민 결핍의 상태가 지속되어 세상만사가 재미없게 느껴지는 것이다. 



100일간의 글쓰기


지금 이 글은 100일간 매일 1시간 동안 총 100편의 글을 쓰는 것을 목표로 시작했다. 솔직히 제목만 쓰고 지나가버린 날도 있다. 제목도 글이라면 글일까? 글 일리가 없다. 그럼 왜 쓰지 못했나? 일단 쉬는 날은 빼는 걸로 해야 했다. 주 5일도 아닌 주 6일을 일하면 남은 하루는 정말 최선을 다해 쉬고 싶다. 집에서 퍼져 있다가 적당히 저녁 어스름 질 때 기어 나와 한적한 카페에서나마 글을 쓸 텐데 요즘엔 휴일에 외부 일정이 생긴다. 그리고. 여자친구와 함께 있으면 아무래도 그녀에게 집중해야 하기 때문에 글을 쓸 수가 없다. 다시 시작된 다이어트도 한몫한다. 운동은 딱 1시간만 하려고 하지만 그래도 전후로 탈의 시간과 샤워 시간과 약간의 휴식을 취하면 하루 운동에 2시간은 소요된다.



글 쓰는 시간을 바꿔야 할까? 예전 미라클 모닝을 할 때 나는 6시에 일어났다.  일반 직장인 기준으론 미라클 축에도 끼지 않지만 10시까지 출근인 나는 직장인들이 5시에 일어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볼 수 있다. 당시에는 일어나자마자 1시간 동안 요가를 했다. 요가가 끝나도 아직 7시다. 하루 식사를 준비하며 커피도 마신다. 10분간 독서 훈련도 했다. 그러고도 한창 시간이 남는다. 6시에 일어나면 정말 많은 걸 할 수 있다는 걸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물론 6시에 일어나려면 일찍 자야 한다. 11시에 자면 베스트지만 늦어도 12시에는 자야 한다. 12시가 넘어가면 아침에 일어나는 게 극도로 힘들어진다. 사실 12시 넘어서까지 뭐 할 일이 없다. 적어도 내게 12시 넘어서하는 일은 술 마시는 일 밖에 없기 때문에 나에겐 늦게 자는 건 언제나 최악의 결과를 초래한다.



솔직히 글 쓰는 것 자체는 크게 힘들진 않다. 그도 그럴 것이 자료 조사가 필요한 것도 아니고 문학적 목표가 있는 것도 아니다. 일기 수준의 글을 쓰면서 생각을 정리하는 수준의 글이기에 가능하다. 이 글이 책이 된다면 글이 좋아서가 아니라 노력이 가상해서가 아닐까. 이렇게도 글을 쓸 수 있고 이렇게도 글이 되는구나 라는 걸 확인하고 싶었다. 알리고 싶은 게 아니고 확인하고 싶었다. 이게 되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그래서다. 지금도 타자를 치며 어떻게 쓰면 문장이 좀 더 고상해질까. 더 아름다워질까. 운율을 만들 순 없을까 같은 생각을 한다. 최근엔 문장이 “~다.”로 끝나면 지루하다는 의견을 들었다. 그런가?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지금처럼 의문문을 쓰거나 대화문을 만들어야겠지. 아니면 이렇게 ~지라고 끝내도 좋을지도.라고 써도 나쁘지 않군.



어디 가서 명함 내밀 다독가는 아니지만 그래도 독서에는 꽤 열심인 편이다. 그래서 독서모임도 운영하고 있고 똑같은 책을 세 번씩 반복해서 읽는다. 첫 번째 읽으면 책의 목차가 그려지고 두 번째 읽으면 처음에 느꼈던 인상과 다른 인상의 문장들을 발견하곤 한다. 세 번째 읽으면 행간을 파악하게 되고 작가의 의도를 이해하게 된다. 이걸 단 한 번의 독서로 할 수 있을까? 아무리 천재라도 쉽지 않을 것 같다. 아무리 기억력이 좋고 분석력이 뛰어나다고 해도 책이 주는 물성과 거기에서 피부로 전해지는 시퀀스 그리고 한번 읽고 씹어 넘긴 다음 시간이 지나 다시 한번 접할 때 독자의 감정이나 심리적 상태에 따라 글은 다르게 읽힌다. 그래서 어떻게든 책은 두세 번 읽는 것이 좋다. 적어도 그 책을 세 번 읽었다면 그 책에 대해서 꽤 잘 안다고 자랑해도 좋을 듯하다.



그러나 글은 아무리 고쳐도 모자라다. 심지어 오타는 아무리 찾아도 나온다. 글을 쓰는 것도 어렵지만 책을 만드는 것도 참 어렵다. 한 권의 책을 만들기 위해 총 몇 글자를 써야 할지 목차는 어떻게 할지 결정해야 한다. 사진을 넣을지 말지도 정해야 하고 원고가 최종 수정 되고 나서야 다음 단계인 표지 만들기에 들어간다. 책이 몇 쪽이냐에 따라 책등의 치수도 달라진다. 책날개는 책의 1/3 정도로 할지 2/3로 할지도 정해야 한다. 세상 모든 선구자들이 다시 한번 위대하게 느껴졌다. 다행히 지금은 참고로 삼을 만한 책들이 서가에 많이 꽂혀 있다. 진짜 다행이다.



내 첫 책은 마무리 표지 작업을 하고 있다. 상업용이 아니기에 저작권의 영향을 받지 않아서 조금 욕심을 냈다. 그러나 단가 때문에 컬러책은 선택할 수 없었다. 컬러책을 낸다는 것은 그만큼 판매력에 자신이 있어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자서전 같은 걸 내는 것도 보통일이 아니란 걸 알게 되었다. 대필 작가 수고비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고 풀 컬러로 사진을 포함하고 1천 부 정도 인쇄하면 족히 2천만 원은 넘어간다. 자신을 홍보하기 위해 2천만 원을 쓴다니 어지간히 돈이 많은 모양이다.



정식 출판을 해야 진짜 책이라고 할 수 있는건 아니지만 어쨌든 공식적으로 출판업계에 기록되는 책은 아니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면 내 첫 책은 법적으로 출간도서가 아니고 나도 출간 작가가 아니다. 출판 등록을 하고 isbn이란걸 부여받고 바코드도 부여받아야 진짜 책이 되고, 검색이 가능해진다. 내 책은 일종의 서평집이면서 에세이다. 단원마다 책의 문장들을 삽입했는데 그 때문에 저작권에 걸릴 수도 있다. 유튜브 영상으로 만들면 괜찮을까?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너무 없어도 문제지만 준법정신이 너무 투철해도 문제다. 이 준법정신이 항상 내 발목을 잡는다. 엄밀히 말하면 법을 요리조리 피해 가는 사람들 때문에 법 잘 지키는 내가 피해를 본다. 사회에 들키지 않아도 스스로가 스스로를 감시하는 준법정신. 이게 맞는 건가 잘 살고 있는 건가 싶기도 하지만 생겨먹은 게 이래서 별 수 없다. 김훈 작가 말대로 이런 생각하는 것도 너절하다.



오늘 하려 했던 말은 다이어트만큼 글쓰기도 참 어렵다는 거지만 사실 반만 맞고 반은 틀리다. 글 쓰는 건 크게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솔직히 재미있다. 다행히 키보드가 존재하는 세상에 태어나 개똥 같은 글이라도 얼마든지 싸지를 수 있기 때문이다. 김훈 작가님은 지금도 연필로 글을 쓴다고 하는데 나는 연필로 쓴다면 진작에 작가 되기를 포기했을 것이다. 퍼스널 디바이스가 인류에게 날개를 달아주었다. 이젠 누구나 작가가 되고 포토그래퍼가 되고 뮤지션이 된다. 스마트폰 하나만 있어도 다 되는 세상이 되었다. 이젠 이 디바이스를 누가 어떻게 쓰는지에 따라서만 결과물이 달라질 뿐이다. 방송국 수준의 고가 장비가 물론 성능은 더 좋지만 그게 더 좋은 결과물을 내주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고가의 장비는 사고가 잘 나지 않는다는 점 즉 튼튼하고 안정성 있다는 게 장점일 뿐 스마트폰과 각종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하면 경우에 따라 엄청난 결과물을 내기도 한다. 그런 사람에게 더 좋은 장비를 주면 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겠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그건 알 수 없다고 말하겠다. 스마트폰 창작은 결국 손쉬운 환경에서 피어나는 야생화 같은 매력이다. 그런 사람들은 애초에 스튜디오가 맞지 않을 수 있고 고가의 장비가 부담스럽거나 무거울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사용법을 익히는 것에도 시간이 너무 걸릴 테고.



오늘은 모처럼 아이패드에 로지텍 키보드를 연결해서 글을 쓰고 있다. 불편하다. 나는 맥북의 가위식 키보드가 가장 손에 잘 맞는 사람인 모양이다. 다행히 맥북도 가지고 있어서 참 행복하다. 맥북에 아이패드에 좋은 키보드까지 20대 때라면 상상도 하지 못할 장비들이 내 손에 있다. 내가 글을 쓰지 못할 이유도 어려워할 이유도 전혀 없다. 쓰면 된다. 1시간이 없다면 10분이라도 쓰면 된다. 물론 나중에 정리하려면 애좀 먹겠지만 원래 똥은 싸는 거보다 치우는 게 더 힘들다. 다행히 치질 환자는 아니라 똥 싸는 게 힘들진 않으니 팔십여 남은 날 이후에 이 프로젝트가 완성되고 잘 닦으면 된다. 



20대의 나는 맥북 에어가 가지고 싶어서 하루에도 몇 번씩 장바구니에 담았다 놓았다를 반복했다. 지금 가지고 있는 아이패드 프로는 10년 전에 아이패드 2가 나왔을 때부터 가지고 싶었는데 작년에 아이패드 8을 거쳐서 결국에 아이패드 프로를 12개월 할부로 구매했다. 맥북 에어와 엄청 고민을 했는데 내겐 아이맥이 있었던 덕분에 아이패드로 결정할 수 있었다. 맥북 프로는 아이맥을 팔고 돈을 보태서 구매했다. 그래서 지금은 맥북 에어와 보조 모니터로 아이패드를 사용한다. 



적어도 글쓰기 환경에서만큼은 절대로 가난하지 않은 상태가 되었다. 그래서일까 적어도 글 쓸 때만큼은 가난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리고 독서를 할 때도 마찬가지다. 책을 붙들고 있자면 죽는 그날까지 밥걱정 집 걱정 안 하고 책만 읽을 수 있다면 좋겠단 생각이 든다. 춥거나 덥지만 않았으면 좋겠고 덜 아팠으면 좋겠다. 책은 도서관에서 보면 되니까 집은 단칸방이라도 좋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가난한 생각이다. 가난하니까 이런 생각을 하는 거다. 내 집에 도서관을 만들겠다는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 좀 더 처절하게 살아야 한다. 감사하고 만족하는 마음과 타협하고 받아들이는 마음은 다르다. 가난하지 않으려면 가난한 생각에 잠식되지 말아야 한다. 가난은 가난을 초래한다. 가난이 무서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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