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만들어준 건 요리가 아니라 사랑이야

푸드 에세이 #1

by 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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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수육 부먹 찍먹 논란이 있는 이유는 빈부격차 때문이다


네 편의 푸드 에세이는 공모전에 수상해 상금을 벌어보고자 했던 노력입니다. 총 4편을 썼지만 입선도 못하고 광탈했습니다. 역시 글은 아무나 쓰는 게 아닌 모양입니다. 3000 자라는 분량에 맞춰 나름 재미있게 잘 썼다고 생각했는데 사람의 마음은 역시 어렵습니다. 모든 일이 그렇듯이 첫 술에 배부를 수 없고 또한 스마트해야 합니다. 끝없이 개선점을 찾아야 합니다. 개선점을 찾기 위해 가장 중요한 1원칙은 개선점을 찾아낼 수 있는 완제품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글이라면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는 글이라도 마감시간 내에 제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혹시나 이 글을 읽으시는 분이 계시다면 이 푸드 에세이에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 알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유야 차고 넘치지만 타인에게 잔소리 들어야 더 성장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제가 만든 음식은 말 그대로 먹을 것입니다. 요리라고 부르기 힘들죠. 19년 자취 인생 요리라고는 배워본 적도 없습니다. 유튜브가 대중화되기 전엔 물어볼 대라곤 엄마 밖에 없었죠.



-뚜루루-


“여보세요?”

“엄마 난데, 수제비 어떻게 만들어야 해?”

“아이고 야야 만다고 그걸 만드니. 다음에 집 오면 엄마가 해줄게.”

“아 됐고 만드는 법이나 알려줘. 지금 먹고 싶어서 그래. 그 왜 김치 넣고 하는 거 있잖아.”



가난한 자취생은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마트에서 밀가루를 샀습니다. 웬 밀가루냐고요? 집에서 간단하게 술안주로 라면과 1개 1천 원 행사하는 햄을 먹으려고 했어요. 그러던 중 가판대에서 밀가루를 보게 된 거죠. 마침 집에 육수용 멸치가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고 김치도 있었으니까요. 자취생 집에 왜 멸치가 있냐면 그건 저희 엄마한테 물어보세요. 의외로 자취생의 냉동실엔 멸치가 있는 경우가 많아요.



라면도 학식도 질리던 차에 엄마가 만들어준 수제비가 생각난 거죠. 어디서 본건 있어가지고 밀가루 반죽은 숙성을 시켜야 더 쫄깃해진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어요. 먼저 밀가루 반죽을 치대기 시작했습니다. 예상밖에 반죽이 너무 잘 됐어요. 요리 천재가 아닐까 생각했죠. 반죽을 냉장고에 집어넣고 대략 40분 정도 있어야 한다는 걸 기억해 냈습니다. 물론 엄마는 숙성 같은 거 하지 않았지만 말이죠. 엄마가 준 천하무적의 김치가 있으니까 맛이 없지 않을 거예요.



자취생의 첫 요리는 극단적입니다. 먹을 수 없는 것이 되거나 사실 맛은 없지만 뇌내 망막 세포가 어찌 된 건지 스스로 천재라고 생각할 만큼 맛있다고 여기는 음식이 나 오거라죠. 자취생의 음식은 정말 못 먹을 수준이 아니라면 스스로 맛있다고 생각하기 마련이에요. 그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자신의 요리에 대해 객관화가 될 수 없는 무슨 유전자라도 있는 게 아닐까요?



가난한 자취생인 저는 맛있는 음식을 먹어 본 적이 거의 없기 때문에 진짜 맛은 모릅니다. 삼겹살에 소주조차 과분한 음식이었죠. 간간히 형님들이 절 불러내 소고기를 사 줄 때면 황홀함에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쪽팔리니까 마음속으로 울었지만 말이죠. 미국산 소고기 구이집이 유행하던 시절이었어요. 그래서 삼겹살과 비슷한 가격으로 소고기를 먹을 수 있었는데 미국산이라도 소고기는 소고기라고 정말 맛있었던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취생의 영혼의 양식 통닭. 저는 통닭도 탕수육도 찍먹입니다. 개인적으로 탕수육 부먹 찍먹 논란이 있는 이유는 빈부격차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양념 통닭과 부먹 탕수육은 남기면 과도하게 눅눅해져서 튀김옷이 벗겨지고 식감이 기하급수적으로 떨어져요. 반대로 후라이드와 찍먹은 소스 없이 담백한 맛도 즐길 수 있으며 경우에 따라 소스를 찍어 변화구를 줄 수도 있어요. 그래서 전 후라이드를 선호합니다. 물론 짬짜면처럼 탕수육도 반 정도 부어먹으면 되고, 통닭도 후반양반으로 시키면 되기 때문이죠. 하지만 가난한 자취생은 탕수육은 거의 시키지도 않고 통닭도 후라이드만 시켜 먹습니다. 반반이 더 비싸기 때문인 죠.



저의 20대의 식사는 대부분 이랬습니다. 맛있는 음식보단 배부른 음식, 저렴하고 푸짐한 음식을 찾아다녔습니다. 어쨌든 고기면 좋다는 시절이었고 대충 비슷하게 만들었죠. 주방 이모님들의 음식솜씨는 대부분 훌륭하지만 한국 음식들은 보통 짜고 쓰고 달고 맵기만 한 편이라 그분들의 맛을 흉내내기란 어렵지 않습니다. 숙달되지 않아 그렇지 두어 번 따라 만들면 곧 잘 만들게 됩니다. 마법의 가루 조금만 뿌려주면 파는 맛은 그냥 나와버리는 게 한국 대중 음식이죠.



맛있는 음식이 뭔지도 몰랐던 저의 입맛은 뭐든 입에 들어오기만 하면 대충 다 맛있는 황무지 같은 혀를 가졌었죠. 그래서 최근에 깨달은 게 내가 만든 건 요리가 아니라 단지 먹을 것이었다는 거예요.



자취하면서 즐겨 먹었던 음식들을 여자친구에게 많이 만들어 줬습니다. 혼돈의 자취 음식들 말고 나름 요리라고 자부했던 음식들이요. 여자친구가 특히 오일 파스타를 좋아해서 알리오 올리오도 만들어 주고 봉골레 파스타도 만들어 먹고 바질 페스토 파스타도 먹었어요. 바지락 술찜을 해주었을 때 그녀가 얼마나 기뻐해 주었는지 그 사랑스러운 미소를 생각하면 저절로 입꼬리가 올라갈 정도입니다. 그러나 이내 부끄러움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가난한 20대를 거쳐 30대가 되어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고 그에 따라 식비 규모도 제법 커졌습니다. 지금 여자친구를 만나 난생처음 오마카세라를 먹었습니다. 고급 와인바에서 셰프가 만들어주는 와인 안주로 나오는 양 적고 비싼 음식도 먹었습니다. 미국산 소고기가 아니라 투쁠 마블링 9등급의 꽃등심을 먹었습니다. 일본 여행에서 장인들이 국물을 10시간씩 우려낸 라면을 먹었고 한 그릇에 1만 원이 넘는 카레도 먹었습니다. 1만 원 이하의 편의점 와인을 한 두 번씩 마시다가 처음으로 5만 원이 넘는 와인을 마셨을 때 입안에서 요동치던 향의 축제는 글을 쓰는 지금도 입안 가득 펼쳐지고 있어요. 한우로 만든 LA갈비 먹어 보셨나요? 1인 10만 원이 넘는 한식 코스 요리도 먹어 봤고 미슐랭 가이드에 선정된 레스토랑에서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레어 스테이크도 먹어 봤습니다. 살기 위해 먹어 왔는데 이 정도면 먹기 위해 사는 것도 괜찮은 삶이겠다 싶었습니다.



이런 음식을 먹고 지내던 그녀가 저의 먹을 것을 맛있어해 주었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제 음식이 진짜 맛있는 게 아니라는 걸. 그녀는 저의 정성을, 마음을, 그리고 사랑을 먹었습니다. 그렇다고 그녀가 무분별하게 다 먹는 건 아닙니다. 맛없는 건 솔직히 맛없다고 얼굴에 다 쓰여 있거든요. 젓가락 움직임은 시원찮아지고 말이 많아집니다. 그래도 웬만큼 먹을만한 음식은 다 맛있다고 사진 찍고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난리도 아니에요. 맛은 속일 수 없지만 사진은 어느 정도 사기 칠 수 있잖아요? 실제 음식의 맛보다 더 맛있게 사진이 나오더라고요. 여자들의 sns 실력은 놀랍습니다.



저는 음식을 만들어 주었는데 그녀는 사랑을 먹었습니다. 숨김없는 그 표정을 보며 “이 사람은 날 정말 사랑하는구나.”라고 생각했죠. 오늘도 전 사랑을 만들러 갑니다. 그 사람의 행복한 미소가 보고 싶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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