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 에세이 #4
밥인지 콧물인지
네 편의 푸드 에세이는 공모전에 수상해 상금을 벌어보고자 했던 노력입니다. 총 4편을 썼지만 입선도 못하고 광탈했습니다. 역시 글은 아무나 쓰는 게 아닌 모양입니다. 3000 자라는 분량에 맞춰 나름 재미있게 잘 썼다고 생각했는데 사람의 마음은 역시 어렵습니다. 모든 일이 그렇듯이 첫 술에 배부를 수 없고 또한 스마트해야 합니다. 끝없이 개선점을 찾아야 합니다. 개선점을 찾기 위해 가장 중요한 1원칙은 개선점을 찾아낼 수 있는 완제품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글이라면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는 글이라도 마감시간 내에 제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혹시나 이 글을 읽으시는 분이 계시다면 이 푸드 에세이에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 알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유야 차고 넘치지만 타인에게 잔소리 들어야 더 성장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사실 지금도 제가 왜 그랬는지 기억나지 않습니다. 왜 그리도 무심히 페달을 밟았는지 모르겠습니다. 기분은 나빴다기 보단 오히려 좋았습니다. 지하 차도를 지나갈 때는 진짜 모험을 떠난 것만 같아 설레었습니다. 땅거미가 지고 건물숲 뒤로 해가 숨을 때쯤 되면 슬슬 겁이 날만도 한데 울었던 기억도 무서웠던 감각도 생각나지 않습니다. 너무 어렸기에 아는 게 없어서 무서운 게 없었던 걸까요?
여섯 아이가 있었습니다. 꽃샘추위가 물러나고 한낮은 제법 더위를 느낄 만한 시기였죠. 집 근처 산에 올라 뛰어놀며 땀으로 흠뻑 적시기엔 충분한 시기였습니다. 3월이면 이제 뒷산 개울에 도롱뇽이 알을 깔 시기이기도 합니다. 아이들은 그 소식을 누구에게 들었는지 겁도 없이 도롱뇽알을 찾아 나섭니다. 그리고 사라졌습니다. 도롱뇽 알도 아이들도 그리고 그들을 애타게 찾던 어른들의 고함 소리도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오직 한 아이만이 부모님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아이는 겁이 많은 게 아니라 부모말을 잘 들었을 뿐입니다.
저는 부모 말을 잘 듣지 않는 아이가 아니었습니다. 그저 아빠 공장 골목 치킨집 아들의 자전거가 타보고 싶었을 뿐이었죠. 또래에 비해 덩치가 컸기 때문에 자전거를 잠깐 빌리는 데는 큰 문제가 없었습니다. 바람을 느끼고 페달을 굴리는 게 너무 신기하고 재미있고 그래서 그 느낌이 지나치게 좋았던 것 같습니다. 더 멀리 가고 싶었던 게 아니라 조금 더 자전거의 안장을 느끼면서 재미있게 신나게 페달을 밟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아이의 체력은 무한에 가깝습니다. 비글도 쓰러져 헥헥거려도 아이는 더 놀 수 있습니다. 그렇게 저는 페달을 밟고 또 밟았습니다. 주변을 돌아보니 모든 게 낯설더군요. 태어나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동네에서 그만 외톨이가 되어 버렸습니다. 사실 그보다 조금 더 일찍 외톨이였지만 자기가 외톨이가 된 것도 모른 체 달렸나 봅니다.
기억은 파편처럼 남아 있습니다. 보조 바퀴가 달린 나보다 조금 더 큰 어린이 자전거, 전화기, 그리고 아줌마의 손. 그리고 아줌마의 딸입니다. 제 기억이 맞다면 전 아무나 따라가면 안 된다는 교육을 받은 기억이 없습니다. 제가 기억을 못 하는 거겠죠? 아주머니의 손은 엄마의 손만큼 따뜻했습니다.
엄마는 늘 집에 없었습니다. 엄마는 밥도 안 챙겨주고 늘 어디 나가 있었습니다. 때로는 아빠 공장에서 같이 일을 하고 있었고 때로는 동네 아줌마들이랑 화투를 치고 있었습니다. 저는 반찬이 가득한 밥상을 본 적이 거의 없습니다. 반찬은 늘 비슷했으니 투정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래 보다 덩치가 컸던 저는 더 많이 먹을 수밖에 없는데 햄은 없으니 말이죠. 그렇게 투정을 하면 어김없이 날아오는 등짝 매질과 잔소리. 저희 어머니 목청은 월드클래스입니다. 진짜 무섭습니다. 그러나 울먹거리는 저를 위해 엄마는 후딱 계란 프라이를 굽습니다. 먹지 않은 흰쌀밥에 계란을 올리고 참기름을 붙습니다. 그리고 간장과 참깨. 이상하게 엄마가 쓱쓱 비벼주는 간장계란밥은 왜 그렇게 맛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최정우. 눈물 뚝~! 어서 먹어.” 고기도 들어가지 않고 햄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비비면 맛있어지는 게 엄마의 간장계란밥입니다. 저는 지금도 똑같은 간장계란밥을 만들 수 없습니다.
그 집은 단독 주택이었습니다. 인테리어는 나무로 되어 있었던 게 기억나지만 그보다 놀라운 건 식탁이었습니다. 집에 식탁이 있다니 이 집은 얼마나 부자인 걸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그렇게 좋아하던 햄도 치킨도 거부했습니다. 아니 거부했다고 합니다. 하루 종일 쫄쫄 굶은 아이는 두려웠습니다. 그러나 뱃속의 거지는 밥 달라고 아우성이었죠. 그리고 식탁에 올라온 건 다름 아닌 간장계란밥입니다. 엄마가 생각났던 걸까요. 그만 울음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입속으로 들어온 간장계란밥 한입. 저는 콧물 날리며 우는 와중에도 꼭꼭 씹어 먹었습니다. 아줌마와 아줌마의 딸 앞에서 말이죠. 지금 생각해 보면 제가 먹은 게 밥인지 콧물인지 모르겠습니다. 눈물이 줄어드는 만큼 밥그릇의 밥도 줄어들고 있습니다.
“정우야~!”
엄마 목소리가 들립니다. 그리고 사이렌 소리. 아이가 없어진 걸 알게 된 부모님이 182번 실종신고를 하고 저를 하루종일 찾았던 겁니다. 그리고 절 데리고 있던 아주머니도 저를 데리고는 182번에 아동 보호 신고를 하고 저를 안심시키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썼던 겁니다.
당시는 개구리 소년으로 알려진 다섯 아이가 실종된 지 거의 100일이 되어 가던 시점이어서 가뜩이나 아동 실종, 납치로 민감하던 시기였습니다. 엄마는 절 붙들고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보다 더 훨씬 많이 우셨습니다. 그리고 우는 와중에도 계속 절 때렸습니다. 너무 무섭고 미안하고 두렵고 고마워서 아픈 건 하나도 몰랐습니다. 그렇게 전 치킨집 아들의 자전거와 함께 경찰의 봉고차를 타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몇 날 며칠을 혼날 것이라는 두려움과는 달리 반찬이 다양해졌고 치킨이며 삼겹살이며 원 없이 먹던 나날이 이어졌습니다. 아마도 아들만 찾으면 해주고 싶은 거 먹고 싶은 거 다 먹여 줄 테니 제발 살아만 있어 달라는 기도를 실천하고 계셨던 게 아닐까요.
아무리 자전거라지만 대여섯 살 남짓의 아이가 무려 5km 넘게 이동했으니 얼마나 힘이 넘쳤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머니는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철렁하다고 합니다. 아주 오랫동안 기억나지 않던 추억이지만 추억의 음식들을 떠올리다 보니 문득 그날이 생각났습니다.
생각해 보니 그 아주머니께 단 한 번도 고맙다는 생각을 가져 본 적이 없었네요. 그 아주머니의 친절한 손길이 없었다면 지금의 저는 없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죠. 이 글을 빌어 그 아주머니께 정말 고마웠다고 꼭 전하고 싶네요. 정말 감사합니다 아주머니. 덕분입니다.
지금도 궁금한 게 그 아주머니는 마가린을 썼는지 안 썼는지입니다. 저희 어머니는 마가린을 쓰지 않았지만 어린 기억에도 아주머니의 간장 계란밥은 뭔가 특별한 맛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립네요. 생각난 김에 엄마에게 레시피를 물어봐야겠습니다. 물론 따라 한다고 그 맛이 나진 않겠지만 말이죠. 엄마의 간장계란밥만큼 맛있었던 아주머니의 간장계란밥이 너무 생각나는 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