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 가득 콜라 한잔

푸드 에세이 #3

by 정우


참 대쪽 같은 여자

네 편의 푸드 에세이는 공모전에 수상해 상금을 벌어보고자 했던 노력입니다. 총 4편을 썼지만 입선도 못하고 광탈했습니다. 역시 글은 아무나 쓰는 게 아닌 모양입니다. 3000 자라는 분량에 맞춰 나름 재미있게 잘 썼다고 생각했는데 사람의 마음은 역시 어렵습니다. 모든 일이 그렇듯이 첫 술에 배부를 수 없고 또한 스마트해야 합니다. 끝없이 개선점을 찾아야 합니다. 개선점을 찾기 위해 가장 중요한 1원칙은 개선점을 찾아낼 수 있는 완제품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글이라면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는 글이라도 마감시간 내에 제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혹시나 이 글을 읽으시는 분이 계시다면 이 푸드 에세이에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 알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유야 차고 넘치지만 타인에게 잔소리 들어야 더 성장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얼음 가득 채운 차가운 유리잔에 맥주를 따라 마신 적 있나요? 전 맥주를 마실 때 항상 얼음 가득 채운 잔에 따

라 마셔요. 싱겁지 않냐고요? 맞아요. 조금 싱거워져요. 근데 아주 약간 싱거워지고 조금은 가라앉은 탄산이 저는 좋더라고요. 무엇보다 맥주를 아주 시원하게 마실 수 있다는 게 최대 장점이죠. 실제로 동남아 지역에서는 맥주와 얼음을 같이 주문해서 먹는 방식이 보편화되어 있을 정도죠. 코로나가 풀리기 전 방콕 카오산 로드 옆 람부뜨리 거리에서 마신 얼음맥주의 싱겁고 쌉쌀한 맛이 지금도 생생하게 느껴지네요.



오늘 할 이야기는 사실 맥주가 아니라 얼음입니다. 그것도 얼음 가득 채운 콜라 한 잔에 대해서 말이죠.



제가 어린 시절인 1990년대 초반에는 1리터 크기의 유리병에 담긴 콜라를 팔았습니다. 500원짜리 두 개로 살 수 있는 거대한 병콜라였죠. 지금도 분명히 기억나는 게 그 시절에는 아무리 어린애라도 아무렇지 않게 병콜라 심부름을 시켰습니다.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심부름이죠. 어린이에게 1리터 병콜라는 생각보다 무겁고 위험한 물건이었죠. 그러나 그 시절에는 그런 경각심이 없던 시절이었죠. 적어도 저의 집에선 말이죠. 이때의 콜라는 보관하는 용도는 아니었습니다. 1리터였으니까 저희 가족 네 식구가 한잔씩 마시면 한 병 금방 비워 버리니 말이죠. 이때만 해도 얼음은 귀했습니다. 얼음 먹은 기억도 없습니다. 얼음은 여름에 팥빙수 먹을 때나 먹는 거였죠. 대구라는 도시에 살면서도 산동네에 살았던 우리 집은 가난했고 그나마 가끔 고기파티를 할 때 콜라 한잔씩 마시는 게 행복이던 시절이었죠.



제 얼음에 대한 기억은 초등학교 1학년 아파트로 이사 오면서부터였습니다. 리모컨이 있는 tv가 생겼고, 가스레인지가 생겼고 무엇보다 큰 냉장고가 생겼습니다. 냉동칸이 따로 있는 이 냉장고에는 얼음을 만들 수 있는 얼음틀이 있었습니다. 큰 변화가 하나 더 생겼습니다. 병콜라가 사라지고 페트병 콜라가 생긴 거죠. 즉 이제 심부름하면서 행여나 콜라를 놓쳐 바닥에 떨어져도 콜라가 깨지는 불상사를 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슈퍼도 바로 코 앞에 있었습니다. 다섯 동의 5층짜리 작은 아파트 단지였던 아파트 상가에는 작은 슈퍼가 하나 있었는데 그 슈퍼가 1층에 사는 저희 집 바로 앞에 있었기에 문만 열고 살짝만 걸어가면 바로 도착할 정도였죠. 심부름은 식은 죽 먹기보다 쉬웠습니다.



아버지의 심부름은 항상 수지 타산이 맞았습니다. 아버지의 담배 심부름을 하기 위해 1천 원짜리 지폐를 받으면 적어도 200원의 동전이 내 몫으로 떨어졌기 때문이죠. 어머니의 심부름도 좋았습니다. 대가가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죠. 슈퍼에서 뭔갈 사 오면 내 것도 하나 사 올 수 있었죠. 그래서 심부름이지만 비교적 기분 좋게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누나의 심부름입니다. 세 살 터울의 누나는 어릴 적부터 엄청 심부름을 시켰습니다. 누나의 심부름에는 대가가 없습니다. 대신 심부름을 하지 않으면 엄마에게 이른다는 공포가 있을 뿐이었죠. 이 여자는 뭐든지 자기 마음에 안 들면 엄마한테 이른다고 합니다. 저는 어릴 적부터 누나 말을 잘 들어야 한다고 교육받았기 때문에 그것을 어기면 혼난다는 인식이 있었습니다.



누나의 심부름 중에 가장 부조리하다고 여긴 심부름이 두 개 있습니다. 하나는 tv위에 있는 리모컨을 가져다 달라는 거였습니다. 저는 작은 방에서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하고 있는데 “정우야 잠깐 와봐”라고 외치는 식이죠. 저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저 소리는 진짜 하찮은 심부름을 시키기 위함이란 걸요. 그리고 전 애써 외면합니다. 누나 오빠, 언니라는 존재는 하는 짓이 다 똑같은 것 같습니다. 아무튼 저 외침을 수십 번 들으면 결국 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럼 이렇게 말하죠. “저기 tv위에 리모컨 좀 가져다줘.” 벽에 베개를 두고 기대어 누워 고작 발 밑의 tv까지 움직이는 게 귀찮아서 작은 방에 있는 저를 큰 방까지 부른 겁니다. 리모컨으로 인중을 때리고 싶은 욕망을 참습니다. 씩씩거리며 뒤 돌아가는 저에게 두 번째 심부름을 주문합니다. “온 김에 콜라 한잔만.” 이 여자는 저만 보면 콜라가 당기나 봅니다. 아니면 애초의 목적이 콜라였을지도 모르죠. 그랬다면 아주 지능적이고 교묘한 여자입니다. 동생을 귀찮게 하는 것에는 천부적입니다. 공부도 못하는 게… 저는 또 씩씩 거리며 콜라를 컵에 한잔 따라서 가져다줍니다. 가져다줄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계속 절 부르거나 엄마에게 일러바칠 거리를 읊어 대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순순히 콜라를 가져다주면 저를 째려봅니다. “왜 얼음이 없어? 내 스타일 몰라? 얼른 얼음 넣어와.” 얼굴에 콜라를 부어버리고 싶습니다. 사실 알고 있습니다. 저의 누이는 무조건 콜라에 얼음을 타서 먹습니다. 그러나 냉장고 문을 열고 얼음틀을 비틀어서 얼음을 꺼내 컵에 옮겨 담는 건 정말 귀찮은 일입니다. 심지어 얼음이 가득 찬 잔에 콜라를 따르면 빈 잔에 따르는 것보다 거품이 많이 생기기 때문에 콜라를 따르는 것도 더 까다로워집니다. 그래서 콜라 심부름을 시키면 일단 콜라만 가져가고 봅니다. 혹시나 오늘은 넘어가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말이죠. 그러나 예외는 없습니다. 참 대쪽 같은 여자입니다.



벌써 30년이 지났습니다. 누나는 세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얼음 콜라는 하이볼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이 얼마나 좋아졌습니까. 이젠 얼음 정수기가 있기 때문에 얼음틀을 비틀어서 얼음을 꺼낼 필요도 없고 빈자리에 다시 물을 채워 불안하게 냉장고까지 이동하지 않아도 되니 말이죠.



원수 같던 누나와는 이제 서로 의지하고 챙겨주며 지내고 있습니다. 남들은 형제간에는 절대 친해질 수 없다고 하지만 저희 남매는 누구 보다 서로를 잘 챙겨줍니다. 돌이켜보면 참 이상합니다. 스무 살 이전에는 그렇게 꼴 보기 싫었는데 그 이후론 서로 각별해졌으니 말이죠. 시간은 참 많은 걸 바뀌게 합니다. 없던 철을 들게 만드는 것도 정신을 차리게 하는 것도 시간이고 이가 시려서 얼을 콜라를 즐기지 못하게 하는 것도 모두 시간 이더군요. 덧 없이 흘러가는 시간이 야속하기만 합니다. 김 빠진 콜라처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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