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만들고 잘 파는 것

만족스러운 상태에 대해

by 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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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비워낼 것이 많았던가? 어제 그렇게 비워내고도 생각과 걱정 고민이 한가득이다. 일이란 나름대로 확정을 지었다면 좀 두고 볼 시간도 필요하다. 내 문제는 가만히 두고 보지 못하고 새로운 아이디어가 생기면 금세 적용해보고 싶은 욕망이 생긴다는 것이다. 음식을 만들 때도 그렇다. 모든 재료마다 조리 순서가 있다. 야채는 단단한 순으로 조리해야 한다. 두부는 조리의 가장 마지막 과정에 넣어도 되고 후추랑 참기름은 조리가 끝나고 살짝 두르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나는 기다리지 못하고 조바심 내다가 재료들을 슬쩍 냄비에 밀어 넣는다. 그럭저럭 먹을만한 음식이 나오긴 하지만 훌륭하지 않다. 당연하다. 순서를 지키지 않았고 때를 기다리지도 않았으니까. 어떤 일들은 냄비의 음식처럼 대충 만들어야 할 때도 있고, 반도체 공정처럼 나노단위의 먼지조차 허락지 않는 정교함이 필요할 때도 있다. 이 둘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콘셉트를 정했으면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어도 당분간은 두어야 한다. 진짜 큰 실수를 한 게 아니라면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고 해도 그대로 둬야 한다. 너무 일찍 바꾸게 되면 실제로 그 콘셉트가 적절했는지 아닌지 알 수 없게 된다. 뇌내망상으로 이렇게 하면 더 잘 될 거야 하다 제대로 된 통계도 얻지 못하게 된다. 그렇다. 통계다.


작년 그러니까 2022년에 독서모임을 나름 체계적으로 정리했다고 생각했고 올해는 그 체계를 강화하는 중이다. 이 체계에서 문제가 되는 건 인스타그램 계정을 더 활성화시키는 것과 이를 바탕으로 수익화시키는 것이다. 물론 수익화를 시키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최근에 들었다. 기버 giver 로써 순수하게 봉사하는 마음으로 임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렇게 나의 일을 하다 보면 나중에 나중에 어떤 행운으로 돌아오지 않을까. 그러나 결국 이 독서모임도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하나의 상품에 불과하다. 아무리 기버가 되고 싶더라도 받아주는 사람이 없으면 소용이 없으니까. 상품은 희소성과 비교우위 그리고 절대적 가치로 가격이 매겨진다. 단 하나의 상품만으로 성공할 수 없는 이유는 비교군이 없기 때문이다. 무료로 운영하는 독서모임은 그만의 한계가 존재한다. 모임원이 모임을 아끼지 않게 된다는 문제다. 그리고 절대적 가치. 왜 독서를 해야 하는지 왜 이 책을 읽어야 하는지 이유를 찾지 못하면 독서 모임은 존재 가치를 잃는다.


독서 모임은 흔하면서도 눈에 잘 띄지 않는다. 막상 찾으면 없는 것 중에 하나로 꼽을 수 있다. 그렇지만 수요 자체는 꽤 높은 편이다. 월평균 검색량이 8천 건이 넘는 건 충분히 활성화되어 있는 키워드라는 뜻이다.

비교우위에 대해서 꼭 짚고 넘어가야겠다. 내가 찾아본 바로는 오프라인에서 가장 활발한 독서모임은 독립적인 공간을 가지고 다양한 리더들을 섭외하고 월 7만 원 이상의 회비를 유지하고 있다. 그에 반해 클래스당 참여 인원은 6~12명 정도다. 한 사람이 독서모임을 진행할 수 있는 수준은 2시간 기준으로 6명 3시간 정도 했을 때 12명까지 해야 적당하다. 12명 이상의 사람들과 함께 하려면 독서 모임보다는 강연으로 넘어간다. 그렇다면 이때부턴 마이크와 스피커가 필요해진다. 그리고 리더가 해야 할 말의 분량도 훨씬 길어진다. 이때부턴 강연자의 영역으로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보다 많은 준비를 해야 한다.


이번에 나는 6년간 해왔던 목요일 저녁 독서모임 규칙을 깨고 화요일과 토요일까지 확장했다. 첫 술에 배부를 순 없지만 생각보다 순탄하진 않다. 3개의 날이 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목요일에만 몰렸다. 사실 기존에 있는 분들보다 신규 인원을 더 많이 확보해야 하는데 잘 안된다. 고작 14일 지났으니 아직 예단하기 이르지만 조바심이 난다. 사실될 대로 돼라 싶으면 상관이 없는데 시간은 더 투자되었고 자금 사정이 악화되다 보니 얼른 사람들이 늘어서 현금 흐름이 좀 나아졌으면 하는 바람이 섞이니 평정심을 찾을 수가 없다. 독서모임으로 월 천 버는 사람도 있는 걸 알게 된 이상 넋 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고 생각했다.


이 상태로 만족하느냐 변화를 주고 확장해 나가느냐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하지만 이건 고민할 가치도 없다. 현상유지는 도태니까. 나는 발전하고 싶다. 적어도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보다는 독서모임 쪽이 월등히 보람차고 재미있고 즐거운 건 확실하다. 내가 좋아하는 독서와 글쓰기로 생활비를 충당하고 사업으로 발전시켜서 한 명이라도 더 알아가고 그들에게 정신적으로든 물리적으로든 도움까지 줄 수 있다면 더 원할 바 없는 아름다운 삶이 될 것 같다. 그러니 이러니 저러니 해도 내 삶은 글과 함께여야 한다.


독서의 가치는 무엇일까. 최근에 내가 발견한 최고의 이유가 있다. 이 이유는 다른 어떤 상황에서도 이유가 될 수 있다. 그건 바로 "무한한 가능성"이다. 살아야 하는 이유, 행복해야 하는 이유,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 열심히 살아야 하는 이유 등등 모든 것의 이유는 바로 “가능성”이다. 심지어 그 가능성이 무한하다면 더할 나위 없다. 실낱 같은 수준이어도 좋다. 살아 있는 한 내 앞에 가능성이 주어진다면 더 살아야 할 가치는 충분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살면서 수 없이 많은 난간에 부딪힌다. 삶에 의욕을 잃기도 하고 권태기에 빠져 우울감을 느끼고 자살 충동까지 느끼게 된다. 종국엔 왜 살아야 하냐는 물음 앞에 놓인 우리에게 "무한한 가능성"은 아주 적절한 답이 되어 준다.


내 바람은 만족스러운 상태에서 무한히 즐기는 독서를 하다가 죽는 것이다. 만족스러운 상태는 아주 중요하다. 한 겨울에 노숙생활 하면서 노숙자 센터에서 겨우 끼니를 해결하고 도서관에서 독서를 하는 삶은 원하지 않는다. 즐길만한 위스키와 와인이 준비되어 있고 코지한 의자에 다리를 올려야 한다. 손이 닿을 거리엔 고급 메모지와 만년필 그리고 예리하게 손질된 마스 루모그라프 연필. 손의 피로를 덜어주는 좋은 키보드와 맥북, 장시간 독서와 글쓰기에도 몸을 잘 받쳐주는 허먼 밀러 체어 같은 것도 필요하다. 어떤 삶이 더 만족스러운 삶인지 더 말할 필요가 있을까.


그러나 만족스러운 상태를 만들려면 생계를 뛰어넘는 벌이가 필요하다. 유명한 작가가 되어 해마다 10만 권 정도를 판매하는 작가가 되는 방법이 있고, 10만 명 이상의 구독자를 가진 유튜버가 되어 조회수로 먹고 살 수도 있다. 직접적으로 뭔가 판매하지 않는 수단은 이 두 가지 빼곤 없어 보인다. 인스타그램도 1만 10만 팔로워가 있어도 결국 뭔가를 팔 게 있어야 하니 상품을 만들어야 한다. 결국은 상품이다.


요즘 내 머릿속엔 이것 하나만 남아 있다. 자본주의 세상은 결국 상품이 중심이다. 상품을 잘 만들고 잘 파는 것. 이것이 전부다. 그 어떤 고결한 이유를 갖다 댄다고 해도 원리는 하나다. 잘 만들고 잘 파는 것. 우리는 이 논리에 의해 살아간다. 이 시스템은 절대적이지 않아 보이고 강요하지도 않아 보인다. 그러나 우리는 이 시스템과는 떨어져 살 수도 산 적도 없다.


스스로 가난하다고 여겨진다면 자본주의에 대해 공부하자. 군부독재시절 막시즘, 즉 공산주의는 철저하게 배척되었다. 과연 그뿐일까? 우리는 그에 못지않게 자본주의에 대해서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민주주의는 어떨까? 가난을 벗어난다는 것은 권력가가 요구하는 미션을 훌륭하게 수행해 내는 걸로는 부족하다. 스스로 자본주의와 돈의 속성을 깨우치고 권력자들이 왜 권력자가 되었는지 알아내야 한다. 좀 가난하면 어떠냐고 말하는 이들이 혹시 있다면 가난해 보지 않아서 실없는 소리를 하는 걸로 알고 무시하자.


만족스러운 상태로 생을 마감하는 건 매우 중요하다. 충분함은 부족함이 없는 상태인데 이것은 시간과 돈을 아우르는 개념이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시간이 없으면 충분하지 않다. 시간이 아무리 많아도 돈이 없으면 부족할 수밖에 없다. 가난한다는 것은 시간도 돈도 없지만 무엇보다 여유가 없고 조바심이 나는 상태다. 만일 당신의 사지가 멀쩡하고 일상생활이 가능한 지능이 있는데도 가난하다고 느낀다면 지금 당장 변화가 필요하다는 신호다.


그래 바로 그거다. 지금 퍼뜩 떠오른 그 생각 그거. 그거부터 당장 고치자.


Right 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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