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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규니 Dec 05. 2022

그만 둘게요.

여기까지 버텼으면 많이 버텼잖아요?

"저.. 퇴사하겠습니다."


 두 달이나 놀고서 회사에 돌아와서 가장 먼저 내뱉은 말이라니 퇴사라니? 그게 맞는거냐며 모두들 말렸고 회사에서는 3주의 시간을 더 주었기에 집에서 뒹굴거리면서 열심히 생각해봤지만 결국에 내 결정은 변하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21년 10월 31일. 회사를 다니기 시작한지 1734일째에 사직서를 냈다.

 오랫동안 생각해온 퇴사이지만 정작 그만 두는데에는 그리 오랜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은 회사에 있지 않았다. 회사 덕분에 여행을 시작했고, 사진을 찍게 되었지만 결국 나는 회사에 묶여 있어야하는 신세였다. 회사에 입사를 하고 첫 현장에 들어갔을 때에 내 상사가 나에게 말했다.


"너는 여기에 생각이 없는 것 같다고, 매일 매일 출근하지만 배우거나 알아간다는 데에 열정이 없는 것 같고, 곧 있으면 그만 두고 떠날 사람 같다고"


 물론 그 때 상사가 말하고 싶었던 의미랑은 다르지만 지금의 상황과는 맞는 말인 것 같다. 나는 건축에 뜻이 없었다. 지금까지 배운 것이고, 제일 잘 아는 것들이기에 자격증을 따고, 회사에 취직하고, 경력을 쌓아왔지만 그 이상으로 나아갈 길이 아니 열정이 없었다. 그렇기에 가족과 친구들이 만류했지만 내가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은 결국 퇴사라는 선택지 하나 뿐이었다.




 나는 살아오면서 내가 무언가를 해보고 싶다고 생각한 것들이 없었다. 좋아하는 것들이라고는 아무 생각 없이 읽던 소설책들, 온라인 게임들이었지만 그것들로 내가 무언가를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저 살아온대로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 하고 싶은지 생각할 필요 없이 살아갈 수 있다고 믿었다. 그렇게 대학에 들어가고 졸업하고 건축을 배웠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왔을테지만...


 세계일주, 살면서 스스로 무언가를 해보고 싶어졌다. 사실은 이것 또한 코로나 직전의 사회의 풍조였을지도 모른다.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그 당시에 가장 멋있던 일이, 누군가가 부러워할만한 일이 여행이었거든. 그러다보니 여행을 좋아하기 시작했던 나는 자연스럽게 세계여행이라는 것에 매료될 수 밖에 없었다. 내 꿈인지 사회의 꿈이었는지 모를 꿈을 가지고서 돈을 모아야지라는 생각으로 회사를 다녔다. 코로나 때문에 2년은 더 다니게 됐지만... 이후 코로나가 활개를 치고 있을 시절의 사회의 단어는 퇴사와 노마드였다. 퇴사를 하지 않고 회사를 오래다니는 사람은 멍청한 사람이 됐고 모든 사람들이 퇴사 후에 유튜브나 인플루언서로 세상을 질타하는 꿈을 꾸었다. 나 또한 그 중의 일원이었을 뿐이지만, 그렇게 계속해서 바라고 꿈꾸다보니 세계로 가는 것은 결국의 사회의 꿈이 아닌 내 꿈이 되었다. 나는 그렇게 꿈을 가지게 되었다.


 이후 결국 코로나가 시들해졌을 무렵 나는 퇴사를 하며 런던행 아시아나 티켓을 끊었다. 세계일주라는 원대한 꿈을 가지고 카메라와 가방을 챙겼다. 그 당시의 나는 여행이라는 것을 우상시하며 내가 반드시 이루어야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너무나도 오랜만에 혼자 떠나는 해외여행이기에 두려움 반 설레임 반으로 준비를 시작했다. 장기여행자라는 타이틀을 달고 캐리어 따위는 짐덩이라고 생각하며 배낭여행자의 백팩을 샀다. 짐보다는 겉멋이 더 많이 들어간 것 같은 모습이지만 나는 꽤나 만족스러웠다. 


그렇게 나는 5년간 다닌 회사를 떠나 세계를 향한 첫 발을 내딛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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