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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규니 Apr 22. 2021

어쩌다. 여행

 나는 원래 여행을 좋아하지 않았다. 성격이 변하고 변해서 사람을 만나는 것을 좋아하게 됐지만 예전에는 아무도 만나지 않고 집에서 게임만 할 정도로 히키코모리와 비슷했다. 그렇게 변한 성격도 기본 틀이 변하는 것은 아니었는지 친구들과 만나서 술 먹고 노는 것은 좋아하지만 어디로 여행을 떠나는 것은 싫어했다. 내가 지내온 환경과 다른 낯선 곳에서 무언가를 마주하는 것이 싫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렇게 나를 표현할 수 있는 것을, 또는 나를 이루는 것을 만들지 못 한채 하루하루만 보내며 살아왔었다. 




 그런데 두 번의 해외여행을 겪고 난 이후에 나는 혼자 여행에 도전할 정도로 여행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좋아하게 됐다. 내 생의 첫 번째 해외여행은 대학교 졸업여행으로 떠난 보라카이였다. 사실 나는 아직도 덥고 습한 동남아를 좋아하지 않는다. 이렇게 말해놓고 가볍게 여행 가기 편한 동남아를 제일 많이 나가본 것은 비밀이다. 처음 가본 보라카이는 낯선 환경은 마주할 수 없는 패키지여행이었다. 같이 간 동기들과 떨어질 시간은 없었고 어디를 갈 때마다 가이드와 같이 동행했기에 아직도 뭘 했는지 기억은 잘 안나는 여행이었다. 다만 기억나는 것은 내 생에 첫 해외여행이었고 지금의 깨끗한 화이트비치와 달랐던 예전의 더러운 화이트비치뿐이었다.

 두 번째 해외여행은 학교의 여행경비 지원을 받아 떠난 졸업 직전의 바르셀로나 여행이었다. 이 행사는 매년 하는 거였는데 작년에 다녀온 동기들의 도움을 많이 받아서 같은 바르셀로나로 다녀올 수 있었다. 나는 처음으로 나 스스로 비행기표를 찾아보고, 시간대를 정하고, 숙소와 관광지를 검색했다. 물론 혼자 가는 게 아니라 같은 과 친구들 10명과 함께 떠났다. 모든 것을 우리가 정하고 계획했던 여행이기에 몇몇 투어를 제외하고는 우리 스스로 해결해야 했고 언어의 난관, 길 찾기, 연락의 부재 등 많은 난관에 부딪히며 하루하루 바르셀로나를 즐기고 있었다. 바르셀로나에는 유명한 야경 명소인 벙커가 있는데 여기서 바르셀로나 전역을 볼 수 있기에 현지인과 관광객들 모두 많이 찾는 곳이다. 내가 그곳에서 처음으로 맞이한 야경은 지금까지 여행을 다니며 맞이한 야경 중 손에 꼽을 정도로 기억에 남는 곳이었다.




 몇 년의 학교생활과 짧은 사회생활을 겪으며 변한 내 성격과 사회에서 마주할 수밖에 없던 낮은 내 자존감, 취미생활의 부재 등은 나를 여행에 빠져들게 하기에 충분했다. 낯을 많이 가리던 성격 덕에 다른 사람들을 만나기 싫어했고 낯선 곳에서 헤매며 나의 부족함과 한계를 마주하기 부끄러워했던 나는 어느새 조금씩 변해갔다. 물론 아직까지는 낯도 가리고 나를 부끄러워하기는 한다. 

 혼자서, 때로는 여럿이서 여행을 가기 위해 더 싼 비행기표를 찾아 헤매고 누구는 먹을 것을 좋아해서 맛집을 찾아다니고, 나는 관광을 좋아해서 걸어 다니기를 좋아했고, 다른 이는 잠자리가 중요하다며 멋지고 편한 숙소를 검색했다. 계획은 0부터 시작했지만 하나둘씩 차근차근 쌓다가 허물고 다시 쌓기를 반복하며 우리만의 멋진 모래성을 완성했다.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나만의 힘으로 모든 것을 계획하고 준비해낸 것이다. 그렇게 여행을 즐기며 나는 나를 이루는 무언가를 하나둘씩 채워 넣기 시작했고 나에게 여행은 나를 이루는 근간이 될 수 있었다. 지금 내가 하는 사진, 블로그, 글쓰기 등은 여행으로 인해 시작했고 여행을 위해서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게 나는 여행 덕분에 변했고, 태어났고, 살아가기 시작했다.




 지금 여행을 떠나기에는  예전처럼 해외로 나가지도 못하고, 국내도 조심스러운 시국이기에 어딘가로 훌쩍 떠나기에는 힘든 것이 사실이다. 보통 여행이라고 함은 해외여행 또는 쉬러 떠난 국내여행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멀리 떠나지 않으면 어떤가? 집 앞의 작은 공원도, 자주 가는 편의점도, 이제는 단골이 되어버린 카페를 가는 것도 모두 여행일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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