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스트하우스]
여행자들이 저렴하게 묵을 수 있는 숙박 시설.
나는 어떤 하나에 빠지면 다른 것들은 다 제쳐놓고 그것 하나만 파고드는 사람이었다. 그런 내가 여행을 좋아하게 된 이후로 내 모든 관심사가 여행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늘상 해외여행지를 검색했고 비행기표를 찾았으며 관광지 사진을 둘러봤다. 그렇게 여행에 빠져들면 빠져들을수록 해외에 있는 시간이 늘어났고 그에 반비례하여 가볍던 내 통장 잔고는 더욱 말라갔다. 낯선 곳에서 다른 사람을 만나는게 불안했던 나는 깨끗하고 안전한 시설만 찾아다니며 숙박했기에 대부분은 호텔이었다. 매번 이용하기에는 가격이 부담되는 호텔들이기에 점점 돈의 압박으로인해 숙소는 변했고 그에 맞춰 내 여행스타일도 변화되기 시작했다. 호텔이나 좋은 숙소를 좋아하던 나는 혼자 떠났던 홍콩에서 우연히 묵게 되었던 게스트하우스에서 변하기 시작했다.
그 곳은 홍콩의 중심부라 할 수 있는 침사추이 지역의 한 구석에 위치하고 있는 게스트하우스였다. 사실 처음부터 여기에서 묵을 생각은 아니었지만 묵고 싶었던 호텔에서 숙박을 취소당하자 갈 곳이 없어지기도 했고 홍콩으로 떠날 날이 얼마 남지 않아서 많은 숙소들이 풀부킹인 상태였기에 어쩔 수 없이 숙박하게 되었다. 홍콩에 도착하니 느껴지는 것은 지인들에게 들었던 가을날씨의 시원함이 아닌 여름의 습도와 더운 날씨였다.
그 날은 유독 더웠던 것 같다. 하늘을 찌를 듯이 높게 올라가있는 마천루들, 빽빽하게 자동차와 2층 버스들, 그리고 바삐 걸어다니는 사람들은 홍콩의 첫인상을 안좋게 기억하기에 충분했다. 힘겹게 길을 찾아 게스트하우스가 있는 건물로 도착했지만 낡디 낡은 문과 쓰러질 듯이 쌓여서 복도를 막고 있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짐들, 어디가 길인지도 모를 정도로 어두운 전등은 이 곳에 게스트하우스가 있다고? 라는 생각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그런 사이를 헤치고 게스트하우스로 들어가니 카운터에서 스탭이 반가운 얼굴로 나를 맞이해줬지만 더운 날씨와 습도에 지친 나는 반가워할 수가 없었다. 힘든 얼굴로 예약을 진행하고 있으니 다른 스탭이 마시라며 시원한 물을 가져다 주며 "어서와 많이 덥지?" 라 말했다. 친절하고 웃는 낯으로 나를 맞이해주던 스탭, 갈증을 씻어 내려주던 시원한 물, 이때부터 나는 안 좋았던 홍콩의 첫인상이 바뀌기 시작했던 것 같다.
시원한 물로 목을 축이자 그제서야 주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홍콩은 좁은 지역에 많은 사람이 모여살다보니 창문이 없는 곳도 많고 있어도 무척이나 작은 집들이 많다던데 그것에 맞다고 호응하듯이 사람들이 모일 공용공간에는 밖을 볼 수 있는 창문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그 거실에는 호스트의 애정, 지나간 게스트들의 기억, 새로 오는 게스트들을 반기는 따뜻함이 있었다. 홍콩의 모습, 환히 웃는 게스트들의 사진들이 한쪽 벽면을 빼곡하게 채우고 있었고 따뜻한 담요들이 올려져있는 소파는 앉으면 일어날 수 없을 것 같이 푹신해보였다. 잠시 뒤 예약을 확인한 스탭은 내가 이용할 도미토리로 안내해줬다. 그 곳은 게스트하우스는 싸기에 시설이 별로 좋지 않겠지 라는 내 생각을 깨부숴버렸다. 깔끔하지만 오래된 향기를 내뿜는 갈색의 나무인테리어, 각 침대의 사생활을 보장해주는 작은 흰색의 커튼, 깨끗하고 푹신했던 침구류 등은 과장을 조금 더해 호텔과 비슷했다. 늦은 시간에 홍콩에 도착했던 나는 관광은 할 수 없었고 게스트하우스에서 간단하게 맥주를 먹는 것을 택했는데 이 곳을 잊지 못하게 해줄 존을 만났다. 거실에서 혼자 맥주를 먹으며 멍때리고 있던 나에게 다른 친구들과 있던 존은 영어로 어디서 왔냐, 어디 갔다 왔냐 등 여행에 대해 물어보기 시작했고 평소 낯을 가리지만 너무 편하게 다가오는 존에 나는 자연스럽게 대답해주기 시작했다. 다른 곳이었으면 경계하며 넘어갔을지도 모르지만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나서 그런지,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상태여서 그런지 그와는 너무 자연스럽게 대화를 시작했고 나중에 생각해보면 그게 존의 매력이었다.
어디서 왔어? 아 한국! 나도 좋아하는 곳인데! 오늘은 어디를 여행했어? 등의 여행객의 말은 자연스럽게 나의 경계를 풀게 되었고 점점 그에게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거실의 문을 닫을 때까지 나는 그와 다녀온 여행지와 가고싶은 관광지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시간을 보냈고 지금의 게스트하우스를 좋아하게된 나의 성격의 일부는 그의 영향이 컸다고 생각한다.
그와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많은 영향을 받았고 나는 대부분의 여행을 게스트하우스를 통해서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물어보고는 한다. 어디서 왔어? 오늘은 어디를 여행했어? 거기는 좋았어? 나는 이 곳을 다녀왔어, 내일은 어디갈거야? 등의 여행에 대하여 궁금한 것들이 늘어났고 이전보다 조금 덜 낯을 가리게 된 것 같다. 어차피 타지에 온 여행객들은 모두 똑같고 여행에 대해 진심인 것들은 같으니 그의 영향으로 나 또한 낯 가리는게 좀 덜해진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나는 게스트하우스를 좋아하게되었다.
호텔과 같은 질 좋고 비싼 숙소도 좋다. 다만 나는 다른 여행객을 만나고 그들의 여행이야기를 듣는 등의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들을 더 좋아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사람들은 각자의 여행 스타일이 있지만 나는 자랑스럽게 이야기할 것이다. 게스트하우스를 여행하는 것을 또 다른 매력이 있을 것이라고, 이전의 여행과는 다른 만남이 있을 것이라고, 언제라도 기회가 된다면 놓치지 말라는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