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모는 사랑을 싣고 (3)

턱 괴는 여자 24.

by 구일삼

이제 네모가 실어야 하는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자. 상처받을 없는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자.


1. 삼진그룹 영어 토익반.


공적 영역에 진출한 한국 여성들의 90년대가 배경. 영화는 ‘Boys, be ambitious(소년들이여, 야망을 가져라)’ 우렁차게 따라 외치고 있는 여자들을 비추며 시작된다. 여자들이 세상에 나가더라도 거긴 여전히 남자들의 언어로, 시선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치다. 여자들에게 야망을 가지라고 가르친 역사는 이제껏 없었고, 삼진그룹 영어 토익반 친구들에게 주어진 예문은 그래서 남자들의 야망과 성공을 노래하고만 있는 거다.


언어와 시선의 문제는 영화 곳곳에서 드러난다.

첫째, 윗선이 책임을 물을 때마다 캐릭터들의 시선이 자기 다음으로 하찮은 존재에게로 단계적으로 휙휙 돌아가는 장면. 장면은 결국 가장 하찮은 '지영(또는 도로시)'에게로 도착한다. 조직이꼬리 자르기 가장 먼저 절단되는 부분은 주변부 끝단에 있는 여자가 되기 때문이다.

둘째, 상무가 폭력을 휘두른 사실을 알게 사장이 모두가 보는 앞에 사과하라는 명령을 내리는 장면. 상무가 사장이 만든 위압감에 이겨 꾸역꾸역 사과를 뱉어내는데, 근데 사과가 쏘리. 오직 미국인인 사장만이 장면을 만족스럽게 쳐다보고 있다. 그렇지. 이제까지의 수많은 반성들은 피해자의 언어가 아닌 사과, 자기들끼리는 해결됐네, 오케이 하지만, 사실은 정말로 사과받아야할 사람에게는 하나도 와닿지 않는 사과였다. 공장 폐수를 모른 체하고 있었던 회사의 잘못이 세상에 드러나자 부장은 사과를 요구하는 외부에 대해 “‘ 모릅니다 기저로 창의적으로 대처하라 지시를 내린다. 이것 역시 같은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있는 대목이다. 반성과 사과가 아니라 위기의해소만을 해결이라고 생각하는 세상의 흔한 착각.

셋째, 영화 초반부 내내 자영에게 호의적이었던 유일한 남자 캐릭터최대리 술에 취해서는 자영에게 위치를 알라면서 소리를 지르는 장면. 이때 최대리가 화를 이유는 자영이 회사 잘못을 계속 들쑤시려 해서다. 공장 폐수로 인해 마을의 강이 오염되고 주민들의 건강은 위태해져 가는 자영이 목격한 참이었다. 자영은 최대리가 서열 사회를 보고 배운 대로 어설픈 흉내를 내고 있다는 금방 알아차리지만 사실 나는 너무 놀라서 가슴이 철렁했었다. 그가 내는 큰소리와 깔보는 눈빛이 만들어내는 순간의 위압적 분위기에 압도됐기 때문이다. 성과를 위해서는 약자의 삶과 환경 파괴의 고통을 물고 늘어지는 움직임은 ' 것도 아닌 가지고' 설치는 일일 뿐이라는 폭력적인 언어. 약자를 무시하고 순식간에 제압하려드는 목소리와 눈빛과 손짓. 그런 너무도 쉽게 복제될 있다는 , 너무도 쉽게 대를 이어 전승될 있다는 보여주는 장면.


'싸니까' 부름을 받은 여자들에게 주어진 자리는 주요한 결정과 성취가 이뤄지는 중심이 아니다. '자영' 팀원들의 커피를 타고 부장에게 컨트롤 S+V 가르치고 최대리에게 지난 분기 주문서를 찾아주고 팩스 번호 보는 법을 알려주지만, 그렇게 회사가 정말로 돌아갈 있게끔 빈틈들을 메꿔주고 있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하찮은 일들로 여겨질 뿐이다.

그런데 영화는 바로 그런 것들로부터 반전과 전개를 이끌어낸다.

애초에 이야기 자체가 금붕어를 버리라는 미션에 자영이 작은 반항을 하면서부터 시작되는 거다. 상사의 사무실을 치우는 일에 동원된 자영이 거기 남아있던 금붕어를 발견하게 되는데, 자영은 금붕어를 변기에 버리라는 말을 듣지 않고 강에 풀어주려고 한다. 그러다가 그가 공장 폐수가 흘러나오는 장면의 목격자가 되고 폭로자가 되는 것이 영화의 주요 플롯. 그리고 엄청난 폭로 프로젝트의 주인공이 여성들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명확하다. 주요하지 않고 하찮은 일들, 주변부의 일들을 관할하는 여성이 사실은 범위로 세상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엄마'라는 존재는 지난여름에 샀는데 어디 갔는지 보이는 티셔츠의 위치를 알고 있는 존재로 그려진다고 적어둔 적이 있다. 그건 '아빠' 벌어오는 돈에 비하면 촌스럽고 대수롭지 않은 일인 같지만 사실은 집안 전체를 관장하고 있는 엄마 쪽이지 않은가. 그렇다고 대단한 일이니까 계속 여자들만이 그걸 담당해도 된다는 얘기가 아니다. 모두가엄마 시선을 가져야 한다는 거지.)

양궁판 과녁을 떠올려 보자. 최대리는 '10'만큼의 가치를 부여하는 사회의 중심에 위치해 있다. 하지만 최대리의 시야는 노란색 부분만을 있고 그건 커다란 과녁판의 아주 작은 범위만을 차지하고 있다. 자영의 위치는 많아봤자 '3'만큼의 가치를 부여하는 주변부. 하지만 자영의 시야는 검은색, 파란색, 빨간색, 노란색 부분 모두를 있다. 그래서 최대리가 아무렇지 않게 금붕어 버리는 방법을 매뉴얼로 읊는데도, 자영만은 명령이 생명을 짓밟는 잔인한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거다.


자영의 그런 시선은 폭력과 파괴가 자행되는 사회의 모습을 목격할 때마다 그가 일일이 상처받는 이유가 되곤 한다. 그러나 그는 목도와 침묵과 좌절의 루트를 답습하지 않는다.

우리의 '도로시' 친구들은 무모하리만치 용감하다.

영어 회화가 완벽하지 않아도 보고서 종이에 전화번호가 나와있다는 이유 하나로 미국 연구소에 무턱대고 전화를 거는, 그런 친구들. 제목을 오해하면 이야기의 친구들은 대리가 되고 결정권을 있는 위치에 오르기 위해 우선 당장은 토익 공부에 힘쓸 것도 같지만, 이들은 위에 닿을 때까지를 차마 마음 편히 기다릴 없어한다. 그리고 이들에게 괴로움은 잠시이고, 행동 개시는 씩씩하다.

'대리님, 이게 대리님 업무예요.' 하며 자영이 써준 보고서를 최대리의 의견인 대신 보내야만 조사가 착수되는 이상하고 거대한 시스템 속에서, 친구들은 기꺼이 탐정이 된다. 만약 자영이 자신의 이름으로 공장 폐수 건을 보고했다면 그의 말은 말처럼 받아들여지지 않았겠지. 회사를 찾아온 검사에게 모든 밝히려던 자영이 '아가씨'라고 부름 받고 담배 심부름을 받는 장면이 친절하게 영화의 다른 결말을 말해주고 있듯이 말이다. 그래서 이들의 '맹랑'하고 눈부신 활약들이 계속될수록 공로가 이들에게로 가지 않을까 , 나는 내내 조마조마했다.

그러나 영화는 회사를 지켜낸 'Great' 토익반 친구들을 향해 찬사와 박수가 따르는 장면을 분명히 보여준다. 'Nobody' 불리는 사람들이 결국 '썁새끼'들을 몰아내는 결말을 그려낸다. 기다리지 않고 바로 행동한 친구들이 결국에는 대리가 되어 개혁과 변화의 중심에서 꿈을 이루는 주역이 되어가는 모습들로 영화는 끝을 맺는다.


나는 자영이 지하철에서 친구들에게 '고맙다고!'라고 소리치는 장면에서 울어버렸고, '송소라'라는 캐릭터의 탁한 척하는 연대가 뭉클해서 눈물이 났다. 중심부의 남자들이 해결되었다고 말하는 데에 대고 '해결된 아무것도 없잖아요'라고 대꾸하는 여성의 시선이 연대를 통해 . 움직임이 되는 일련의 과정들.

옛날이 좋았다는 말은 무책임한 말이라는, 지금이 누군가의 지나가는 좋은 시절일 있게 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대사를 통해 정직하게 흘러나와서 좋았다. 거창한 대의가 아니라도, '이러면 되는 거잖아' 뭉툭한 말로도 싸워내는 용기가 있으면 세상은 바뀔 있다고 말해주는 이야기라 좋았다.

영화는 정말 내가 하고 싶은 말이랑 닮아있다. 페미니즘은 세상을 지금까지와는 정반대로 만들어놓겠다는 말이 아니거든. 매일이 전쟁이었어도, 페미니즘은 '이제부터는 여자가 위에 서겠다' 전쟁 선언 같은 아니거든. 그건 같은 인간인데도 너무 다르게 살고 있는 인간들이 있다는 , 제발 모른 척하지 말자는 호소에 가깝다. 주변부의 언어와 시선으로도 세상을 들여다 보자는 거고, 그렇게 크고 넓은 시야로 뻗어나가자는 거고, "그렇게 다르고 힘든" 삶들을 이대로 두지 말자는 거다. 그래서 주변부를 이상 주변부로 두지 않는 이런 주인공들이 세상엔 많이 필요하다. 주인공들은 작품 속에서만 세상을 바꾸는 아니라, 가상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바꿀 거고, 그리고 사람들의 마음은 다시 세상을 바꿀 거니까.


<25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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