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모는 사랑을 싣고 (2)

턱 괴는 여자 23. 여자 아이들

by 구일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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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신데렐라 스토리는 이미 너무나 많은 구박을 당해서 이상 등장하지 않는 구닥다리 소재로 전락한 것이 맞을까? 아니면 파티장에 엄연히 들어와 있는데도 화려한 드레스로 갈아입은 그를 우리가 알아채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사실 재벌 남주와 가난한 여주가 격차를 극복하고 사랑에 빠지는, 극과 극에서 출발하는 로맨스가 기반인 스토리들은 이제 거의 찾아볼 없다. 하지만 경제적 영역에만 문제가 없다고 만사가 오케이일까? 여전히 남성이 이야기의 중심에서 전개 과정을 통제 하거나 연애 전반을 중점적으로 리드하는 남성 캐릭터가 여성보다 우위를 점하고 있는 모습이 여전히 TV 그대로 전시되고 있는 경우가 상당수다. 특히 로맨스 드라마의 경우 하나의 러브라인이 성사되기까지 여성 캐릭터는 삼각관계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데도 실제 스포트라이트는 절대 여주 쪽으로 향하지 않는다. 남주와 서브남주의 신경전이 얼마나 치열하냐, 오로지 그것만이 문제로다!

여주는 자신을 둘러 소용돌이를 티끌만큼도 눈치채지 못한다. 그리고 아무것도 모르는 그런 채로 내내 상처받거나 치유받는다. ? 그가 남자 캐릭터들이 만들어내는 소용돌이의 이유임에도 불구하고, 여주의 감정은 별로 중요하게 다루어지지 않는다. 전통적 여성상에 가까운 이런 여성 캐릭터들은 사랑에 있어서 수동적으로 그려지고 이들이 능동적인 순간마저도 '그저 귀엽게 까부는' 것쯤으로 치부되어 왔다. 물론 시대가 바뀌며 이른바 쎈언니, 걸크러쉬 등으로 소개되는 여성 캐릭터들도 속속들이 나오고 있긴 하다. 그런데 이들은 대부분 빡센 메이크업과 하이힐로 대표되거나, 주요 인물이 아니거나, 사랑에 있어서는 서툴러야 하는데, 여기서부터는 다름 아닌 상대역의 꿀이 뚝뚝 떨어지는 달달한 눈빛만이 중요해진다. ? 큰소리 내는 여성 캐릭터들의 등장에 환호했던 시절도 잠시, 새로운 여성 캐릭터들도 결국 전형화되거나 남성적 시각에 매몰되어버렸다. 모든 진일보는 결국 과거에 남게 되니, 길은 아주 멀도다!


그래도 새로운 여성 캐릭터가 많이 등장하고 있는 추세니, 여기서 발생하는 문제들만 해결하면 이제 괜찮은 걸까? 전통적인 여성 캐릭터들은 어쨌든 아주 과거에 있으니 들여다볼 필요가 없는 걸까? No!

요즘은 지나간 작품을 소비하는 것이 무척이나 쉬운 시대다. TV 켜서 재방송 타이밍을 맞추지 못하면 영영 작품을 놓치는 과거와는 전혀 다른 시대가 와버렸다. 이제는 OTT 통해서 5, 10, 20 전의 작품들도 언제든지 있게 되었다. 세상에!

문제는, 지나간 것들을 새로운 시대에도 무난히 받아들이기엔 문제가 많다는 사실을 알려 주는 어른이 별로 없다는 거다. 작품을 기억하는 어른들이 '그때 시절' 말하며 '지금 보니 말이 되기는 하는데, 그래도 재미는 있었다'라고 평하는 식으로 얼렁뚱땅 넘어가게 되면, 과거의 작품을 처음 접하는 새로운 세대는 그걸 어떤 필터도 없이 무분별하게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까, 16 전의 이야기라도, 아직 살아있는 거다. 꾸짖어주는 어른이 없는 상황 아래, '어쨌든 명작' 탈을 작품들과 전통적인 여성 캐릭터들은 이렇게나 끈질기게 살아있는 된다. 그렇다 보니 수동성에 몰입하는 '여자 아이들' 시대를 막론하고 대다수로 존재하게 되는 거고. 몰입을 이용하는 미디어는 또다시 과거에 머무르는 작품들 을생산하고. 새로운 세대는 전의 세대가 쓰다 남긴 구닥다리 세계관을 양분삼아 자란다. 길은, 정말 멀다.


물론 세상에 무결한 것들만 존재하기는 어렵겠지.

그렇다고 이런 무심한 흠들이 늘어만 가는 지켜만 없는 거잖아.

너머로 여자들을, 약자들을 치워버리는 미묘하고 은근한 선들을 우린 계속 드러내고, 설명하고, 마침내는 지워버려야 한다.


네모가 실어오는 '여자들' 다양하고, 자유로워야 한다.

네가 잘못했는지 얘기해보라며 예민하게 굴어서 남자의 기를 죽이는 존재라는 것인지 아니면 둔하게 굴어서 자신을 둘러싼 남자들의 기싸움을 끝까지 모르는 존재라는 것인지, 이중의 잣대를 보고 여자 아이들이 헷갈려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쎈언니는 레드립과 하이힐로 완성되는 거라는 착각이 계속되는 일이 없어야 한다.

아이들은, 결혼하지 않고 늙어가는 여자들은 한심하고 불쌍하다고 설명하는 드라마가 진작에 버려진 구닥다리 세계관이라고 일러주는 어른들 옆에서 자라야 한다.

여자도 극을 이끄는 주인공이 있음을, 여자 아이들은 보고 자라야 한다.


네모가 실어오는 '사랑' 역시 다양하고, 자유로워야 한다.

폭력이 애정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로맨스로 다가가는 일이 없어야 한다.

여자를 설레게 하는 남자와 남자에게 사랑받는 여자의 모습만이 로맨스의 자격을 얻어 아이들에게 닿는 일이 없어야 한다.

여자에겐 사랑이 백마 왕자의 구원이 되어버리는 장면들이 영원한 맥을 유지하는 결말은 없어야 한다.


네모는, 지금의 어른들이 공유하는 유희보다, 네모가 실어오는 것들을 보고 자랄 아이들의 미래를 우선으로 둬야 한다.

아이들은 네모를 통해 다양성을, 자유를, 그리고 모두를 갖춘 사랑을 배울 있어야 한다.


재미없니? 진지해서 벌레같니?

그렇지만 말을 뭉개고 도착한 세계에서는 분명 이런 장면도 가능해질 거다.

-옛날 옛날에 ' 아를 낳아도' 로맨스인 시절이 있었어요.

-에이, 거짓마알~

그리고 세계에서는 상처 받을 사람이 아무도 없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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