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삼백 년의 노래 (1)

턱 괴는 여자 26.

by 구일삼

3. 선덕여왕


이야기는 '미실'로부터 시작한다. 미실은 오랜 세월 황후의 자리를 노리며 권력을 취해 인물이다. 결과 그는 입맛에 맞게 왕좌를 바꿀 만큼, 황실에 위협적인 권력을 가진 존재가 되었다. 하지만 그에겐 '명분' 없다. 성골만 왕이 있는 시대에 미실의 세는 진골 귀족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그는 나라를 호령하는 권력을 쥐고도 쉽게 황후가 없다. 그가 이용하려 하는 '어출쌍생 성골남진(왕이 쌍둥이를 낳으면 성골 남자의 씨가 마른다)' 예언이다. 쌍둥이를 탄생시킨 황실을 징벌하고 자리에 본인이 서겠다는 계획인 거다. 그런데 쌍둥이의 한쪽(덕만) 왕이 빼돌리는 바람에 미실은 증거를 손에 넣지 못하고 다시 세월을 기다리게만 된다.

그의 수족은 그에게 이렇게 묻는다. 황후가 아니어도 이미 모든 것을 가지고 있는데 그리 황후가 되고 싶어 하냐고. 그리고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모든 것을 가졌는데 황후가 아닌 것이 싫어서요.'

수족이 그의 대답을 어떻게 해석했게?

"여인이십니다."

황후가 되고 싶다는 꿈은 인간의 야망으로는 해석되지 않는 거다. 그저 왕의 여자가 되고 싶어 하는 소망으로 읽히는 거다. 말을 듣고 미실은 공허한 눈빛으로 웃고만다. 왜냐하면 미실은 신라 최고 권력자의 여인이 되고자 하는 아니니까. 그가 원하는 진골 여자에게 허락된 신라 최고의 권력이다.

그러니까 사실 그는 신라를 가지고 싶었던 거다. 그는 가장 높은 자리를 원했던 거다. 하지만 진골 여자로 태어난 그에게 주어진 무대, 그가 상상할 있는 최대치의 야망이 황후 뿐이었던 슬픈 사연. 아마 미실은 황후가 됐더라도 계속 답을 찾으려 애썼을 거다. 뭘까. 황후가 됐는데도 답답할까. 그런 생각들로 허무한 하루들을 보냈을 거다. 미실이 애초에 갖고 싶었던 황후 자리가 아니고, 그가 살고 있는 시대에는 그의 꿈이 정의될 수가 없으니까. 그리고 미실은 썩어가는 외로움을 견딘 채로 아주 오랜 세월을 보내고, 많은 시간이 흐른 직접 대신국(신라) 군주가 되겠다고 선언하는 덕만을 보고서야 알아차린다. , 내가 평생을 원했던 꿈이 이것이구나.


'천명' 쌍둥이 먼저 태어난 덕분에 안에 남아 자라는 인물이다. 쌍둥이가 태어나던 , 북두칠성이 잠시 북두팔성이 되었는데 이것이 '미실에 대적할 자는 북두의 일곱별이 여덟이 되는 날에 온다 예언과 맞물리게 된다. 그래서 천명에게는 미실에 대적할 운명을 이루기를 기대하는 황실의 압박이 가해진다. 그러나 궁은 이미 미실이 장악한 오래고, 천명은 무기력과 부담감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는 상태로 등장한다.

하지만 그가 결국 택하는 각성이다. 어쩌면 미실에 대적할 자의 운명은 같은 태어난 동생의 것이었는데도 천명은 그것이 자신의 것이라 말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무서워도 발을 내디딛는다. 그렇게 그는 살아온 동안 힘으로 미실에 대적한다.

그러다 자신의 뿌리를 찾아 신라로 돌아온 덕만이 쌍생의 직접 증거가 되어 황실이 궁지에 몰려있는 상황에서, 천명은 덕만을 구하려다 의도치 않은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덕만과 천명이 함께 숨어있던 곳에 여러 세력들이 몰리면서 난장판이 와중에 독화살에 맞아버린 거다. 나라의 공주가 살해당한 초유의 사태 앞에 미실은 잠자코 있을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미실은 또다시 증거가 품에서 빠져나가는 보고만 있게 된다. 천명은 결국 죽음으로서도 미실에 대적하는 운명의 흐름을 완성시키고 떠난 셈이 거다.

그리고 '덕만' 천명의 죽음을 목도하며 미실에게서, 신라에게서 스스로 벗어나려 했던 결심을 무너뜨린다. 도망치지 않고 분노하겠다는 결심을 새로 세우고, 신라를 차지하는 것으로 신라에서 살아남겠다는 어마어마한 선언을 해버린다. 이후 덕만은 정말로 신라의 가장 높은 자리에 서게 되고, 그렇게 미실 스스로도 몰랐던 그의 오랜 꿈까지도 무너뜨리게 것이다.

미실은 결국 오랜 세월 동안 전력을 다해도 아무것도 가질 없었던 거다. 나라를 사랑해서 나라를 갖고 싶었을 뿐인데, 그는 나라를 가지려 할수록 '간악한 계집년' 따위의 말들이 쏟아지는 가운데를 담담히 살아야 했다. 악을 자처해야만 시대를 견딜 있었던 그녀는 왕이 되겠다 선언하는 덕만을 보며 완전히 균형을 잃는다.


그런데 그때부터가 진짜다.

미실이 무너져놓고, 쓰러진 포물선 그대로 일어나는 것이다.

그렇다. 역시 왕이 되겠다는 선언을 한다. 황후라는 꿈에 가까워지는데도 답답함을 느껴야 했던 것인지, 그는 답을 망설이지 않고 있는 힘껏 고집부린다. 미실은 그동안 '성골' '남자' 왕이 있다는 명분을 위해 흐름을 계산하고, 기다리고, 숨죽이는 일만 반복해왔지만 명분들이 다름 아닌 족쇄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드디어 깨달았다.

이때의 후계 구도는 여성인 덕만과 진골인 '춘추', 각각 성별과 골품제라는 억압구조가 족쇄가 되는 인물들이 경쟁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미실은 가지 모두가 족쇄임에도 불구하고 기어코 싸움판에 뛰어든다.

"누군가를 내세우는 일을 하려 합니다. 내가 하겠어요."

미실은 지금 당장은 세상 모두가 시대의 주인이 미실이라 떠들어도, 역사의 기록이란 명분에 따라 적힌다는 알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은 성골도 남자도 아니라는 이유로, 그래서 명분이 없다는 이유로, 미실은 자신의 이름이 천년 후에도 기억되는 이름일 수는 없다는 깨달아버렸다. 지난 세월이란 그저 자신이 내세운 사람이 천년의 이름을 가질 있도록 도와주고 있던 시간에 불과했다는 , 미실은 이제 알아버렸다. 시대는 이름 글자로 기억되는 마땅하다는 생각. 그런 꿈으로, 그녀는 시대에 대한 처절한 복수를 시작한다.

이제 미실은 명분을 얻기 위해 그간의 대업들에서 유지하고 있던 차분함을 버린다. 반란을 일으키고 내전에 돌입한다. 그는 지금까지 공들여온 자신의 모습에는 이미 관심이 없다. 시대가 자신을 가둬왔음을 이상, 미실은 족쇄를 어떤 방법으로든 부수려드는 거다. 설령 그게 자신이 부서지는 길이라도. 나는 이게 미실이, 끝내 찬란하지 못할 알면서도, 한풀이를, 분풀이를 해야 했다고 그래야 떠날 있을 같았다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슬펐다. 그렇게 미실은 날개가 꺾일 것을 알고도 날갯짓을 한다. 그의 마지막 비상은 후회없이 추락하기 위한 선택일 뿐이다.


미실의 '라스트 댄스' 그가 자신이 초래한 내전이 만드는 혼란들을 두고 없어 끝을 맞이한다. 자신을 돕겠다고 자처한 세력들이 나라의 국경까지도 저버린다는 소식에 결심이 선다. 자신이 지켜오고 가꿔온 나라의 혼란이 없어서, 오래된 외사랑을 그저 덮어두는 엔딩을 선택하는 미실. 결국 미실은 신라를 포기하는 것으로 신라에 대한 사랑을 완성하는 셈이 된다.

독약을 마시고 찬찬히 죽음을 소화하며, 미실은 자신을 찾아올 덕만을 기다린다. 하지만 몸에 독이 퍼지는 시간이 빨랐다. 뒤늦게 도착한 덕만은 그렇게 잠에 시대 앞에 예를 갖추고, 자신의 시대를 시작한다.

굽힐 수가 없어 완연한 죽음을 맞이한 미실. 그가 남긴 잔해들을 수습하며, 덕만은 가장 높은 자리에서 패도를 걷게 된다. 삼국통일이라는 대업을 위해, 덕만은 미실을 따랐던 반란 인사들에게도 기회를 최대한 활용하고, 가야를 완전히 흡수하고, 농업과 무기 생산에 주력하고, 춘추를 준비시키고, 신하들의 세를 견제하는 일련의 일들을 차근차근 해간다.

그리고 덕만은 다른 왕들은 하지 않아도 됐던 일을 견뎌야 한다. '여왕'이라는 이름에 대한 모욕과 부정을 버텨내야 한다. 그럴수록, 애써 사람의 마음을 지우고 왕의 이름으로 아무렇지 않게 걸어야 하는 패도가 계속될수록, 덕만의 이름은 옅어지고 외로워져 간다.


여기서 문제.

Q. 이것은 그저 드라마인가? 여자들의 이야기는 과연 네모 안에만 있는가?


<27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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