턱 괴는 여자 29.
2. 어떤 나라에 자신을 왕세자로 책봉시켜 달라 건의한 공주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그런데 그가 국왕의 적통도 아니고 조카였다면 어땠을까. 우선 국왕은 애 교육을 어떻게 시킨 거냐고 자신의 여동생에게 화를 낼 것이다. 나중에는 애를 직접 불러서는, 좋은 짝 골라 줄 테니 조금만 기다리라고 했던 게 엊그제인데 어떻게 이렇게 뒤통수를 칠 수 있느냐며 또 화를 낼 것이다. 공주는 가만히 왕의 말을 받으며 반성하는 척하면서도, 자신의 말이 신경 쓸 가치도 없는 우스운 말이 아니라 왕과 여타 사람들의 심기를 건드리고 있다는 데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었을 것이다. 전하가 저리 화를 내는 이유는 내가 왕세자가 되고 장차 본이 되는 것이 혹여 실현될지도 몰라 겁나기 때문이라는 걸 알아차렸기 때문에. 그럼 그녀는, 왜 나는 세자가 될 수 없냐는 물음을 속으로 삼키고 말았을 언젠가의 다른 공주들을 떠올려보았을 거다.
그의 오래된 물음과 야망은 이제야 세상에 드러난 것이지만 이미 왕세자로 내정되어 있는 국왕의 적자는 처음부터 모든 걸 알고 있었다.
너 커서 뭐 될 거야? 아바마마 같은 성군이 될 거야. 나도 그거 될 건데. 넌 공주잖아. 나중에도 계속 공주면 무슨 재미야. 공주는 공주밖에 못해. 두고 봐, 내가 뭐가 될지.
어린 시절의 이 대화는 아주 쉬이 왕세자가 될 그 몸에 진득히도 붙어있었고, 그래서 공주가 공주에게는 권해지지 않는 책들을 몰래 수집해 독파한다는 흉흉한 소문이 궁 안을 돌 때마다 왕자는 그게 소문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을 거다. 국왕은 공주가 잠시 몸살이 들어 헛소리를 했던 것으로 정리해 여론을 잠재우고 형식뿐인 왕세자 책봉 논의를 시작한다. 조정에 적자가 왕세자가 되는 게 맞다는 전통적인 헛소리가 퍼져 나오던 때에 딱 맞춰 공주가 납신다. 논의가 과열되는 무렵이 되면, 어떤 신하 하나가 나서 지금껏 계승 1순위가 전부 아들이어서 문제 될 게 없던 지난날을 들먹이며 이번에도 마찬가지이니 혼란을 야기하지 말라고 이른다. 그러면 공주는 계승 1순위가 전부 아들이었던 이유는 본인도 늘 궁금했다고, 태어나지 못한 아이들이라도 있는 것처럼 너무 깔끔하고 너무 완벽해서 그동안 너무 신기했다는 답을 내놓으며, 헛기침이 섞인 침묵을 만들어낸다.
내 상상력은 세세한 설정까지 완벽히 해둘 수 없으니 대충 넘어가고, 공주와 내정자는 본격적인 후계 경쟁 구도에 돌입한다. 시간이 조금 흘러 공주를 옹립하는 이들이 하나 둘 죽어나가던 때가 오면 공주는 그냥 다 포기하고 싶어지고 만다. 몸살 때문에 헛소리한 게 맞다고 할 걸, 그런 생각 때문에 심지가 약해져 괴로워진다. 그러면 죽은 모친을 대신해서 싸우는 어떤 애가 공주를 찾아와 대화를 시작한다. 공주가 먼저, 나 때문에 네 어미가 죽었는데 왜 아직 나를 위해 싸우냐 물으면, 당신 때문에 내 어미가 죽었으니 반드시 살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당신이 살아야 내 어미의 죽음이 명예로울 수 있고, 당신이 살아야 내 어미는 고작 겁쟁이 따위를 지키다 죽은 사람이 아닐 수 있고 당신이 살아서 버텨서 이 나라의 군주가 되어야 내 어미는 이 나라의 근간을 지킨 이가 될 수 있으니 더 이상 약해지지 말라고 말한다.
그렇게 한바탕 혼란과 눈물이 지나가고 공주는 정말로 왕이 된다. 내정자였던 왕자가 사망하는 바람에. 자신의 힘으로 이룬 결과가 아니라는 우울감이 그녀를 덮쳐온다.
그리고 즉위식에서 머리 모양을 어떻게 할 것인지부터, 아주 많은 고난들이 그녀 앞을 기다리고 있다. 평소의 모습만 하더라도, 상투를 틀어 그 위에 익선관을 얹을 것인지 아니면 궁중 최고 여인인 황후의 복식을 따라야 하는 것인지 여러 논쟁이 오가는 와중에, 그녀는 머리를 다 풀어 내린 채 조정에 들어서 모두를 경악하게 한다.
기존의 내정자가 갑자기 피살당한 뒤 등극한 왕이라는 꼬리표는 그가 여자라는 꼬리표와 함께 붙어 다니면서, 마침내 그녀가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도 지겹도록 그녀를 괴롭힌다. 그녀가 다른 것도 아니고 왕좌에 앉아있는데도 인정 투쟁은 계속될 거고 사람들은 피살 사건의 진상이 밝혀진 바 없다는 핑계를 앞세워 어떻게든 여자를 왕좌에서 끌어내리려 한다. 늘 긴장하고 늘 지쳐있을 젊은 그녀는 언젠가 텅 빈 조정에 대고
대신들은 그 누구도 아닌 내가 본임을 기억하라
며 소리를 지르고 만다. 아마 나는 그 장면에서 펑펑 울고 있다.
하지만 끝끝내 무기력과는 손을 잡지 않은 그녀는 직선으로만 이루어진 날카로운 얼굴로, 갖가지 희롱과 조롱을 권태롭게 쳐내는 중년에 다다른다. 대신들이 혼사 얘기를 꺼내며 살림과 국정을 전부 돌보셔야 하니 참으로 바쁘시겠다, 뭐 그런 말을 굳이 얹을 때 국왕은 아주 건조한 목소리로 경은 이게 재밌냐고 되묻는다. 그러면 저들끼리 재밌다며 허허 웃던 소리들이 단숨에 먹혀들어 갈 거고, 일국의 신하라는 자들이 되물으면 곧장 부끄러워질 말 들을 농이랍시고 주고받고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재밌다고 국왕이 혼자서 마구 웃어댄다. 그렇지만 그 눈은 아주 잠깐도 접히지 않는다.
이 상상 드라마는 가장 최신의 드라마다. 아직 결말은 없지만 나름 제목은 있다. <죽은 왕녀의 파반느>. 프랑스 작곡가 모리스 라벨이 작곡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에서 따왔다. 라벨은 옛 스페인 왕녀의 초상에서 힌트를 얻어 그 곡을 썼다고 한다. 그렇지만 내가 멋대로 지어내고 감상하는 이 이야기 속의 왕녀는 누군가에게 파반느를 받지 않고 스스로 춤을 춰 노래를 만드는 사람이다. 훗날 그녀의 초상을 본 누군가는 그의 파반느가 눈부시고 고단했음을, 그래서 외로웠음을 짐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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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속에 있던 상상들, 심지어 욕실 안에 갇혀 둥둥 떠다니기만 하던 상상들. 백마 탄 왕자를 기다리는 구원의 객체를 자처하며 로맨스 드라마를 써내려 가던 어린 날의 샤워 몇 개들이 너무 억울해서 내 상상들은 다른 것이 되어 간다.
어떤 어린 시절들은 괜찮은 기억으로 남을 수 있어야 하잖아. 앞으로의 시간들은 틀에 맞춰 흘러가지 않을 수 있어야 하잖아. 몸에 물이 닿는데도 퍼져 나오는 상상들은 고체마냥 오랜 시간 동안 변하지 않는다면, 그건 너무 이상하잖아.
앞으로의 네모들은 더 이상 머무르지 않아야 한다. 기꺼이 과도기를 맞이해야만 한다. 시대는 이미 미래로 가기 위한 준비들을 하느라 불안정해진 뒤인데, 미디어는 그 흐름 속에 퍼질러 앉아만 있는 것 같다. 그건 단순히 멈춰있는 중인 게 아니라 후퇴라고 불러야 한다.
이제는 달라야 한다. 미디어가 양산하는 상상들이 언젠가 미래에 닿을 누군가들의 뿌리가 될 걸 생각하면, 어색하고 거북하다는 불평을 뚫고 이제는 정말로 불편한 얘기들이 자리를 잡을 때여야 한다. 네모들아 들어라!
생전 처음 보는 지구에 당도한 외계인의 시점으로 이 땅을 들여다봐라. 이 세계의 대부분이 얼마나 우습고 비열했는지를 드러내라. 지금을 사는 사람들이 더 크게 경악할수록 좋다. 없는 일들을 잔인하리만치 세세하게 보여줘 만드는 불쾌함이 아니라, 매몰되어 있던 잔인한 진실들이 '보통'의 가까이에 실재했다는 걸 드러내는 장치들이나 써라.
그리고 높은 곳을 향하는 여자는 그곳에 당도해서도 괴로워야 하는 시절이 존재했음을 남겨두어라. 먼 미래에는 태어날 때의 모습이 족쇄가 되는 이 모든 것들이 말도 안 되는 일이 되어있겠지만 (그래야 하겠지만), 지금의 수많은 괴로움이 곯아 만들어진 것이 그 미래라는 것을, 그러니 가치 있게 써달라는 메시지를 어딘가 적어둬라. 후손들이 후퇴를 선택해 다시 여기에 닿는 일이 없도록, 우리는 이 땅이 얼마나 끔찍했는지를 가감 없이.
그렇게 더 많은 사람들이 너머의 세계로 함께 건너갈 수 있도록, 더 많은 징검다리들을 탄생시켜라. 지금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시절일 수 있도록 징검다리는 특히 튼튼하게 만들어라. 그래서 이 시대를 이고 지는 작품들은 차별이 진리로 작동한 과거가 아니라, 폭력만이 답이 되는 허상이 아니라, 더 좋은 미래를 겨냥해 만들어져야 한다.
인간의 본성은 원래 추악하다고 떠들지 좀 마.
인간은 혐오의 굴레에 빠져있는 동물이라고 단념할 게 아니라, 지금까지 인류가 이만큼이라도 온 데에 이유를 찾고 그 마음을 동력 삼아 달려 나가야 한다. 시니컬한 척 차별과 혐오가 어쩔 수 없는 일인 양 떠들어대 봤자 그건 그냥 차별과 혐오가 추악하다는 걸 알면서도 본성이라고 단정 짓는 게으른 소리.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을 회피하는 하나도 쿨하지 않은 이야기. 어른들에겐 아이들이 더 나은 세상을 상상할 수 있도록 길라잡이가 되어야 할 책임이 있다. 그래서 TV는 지금이 얼마나 엉망인지를 제대로 가르쳐야 하고, 앞으로는 달라야 한다는 시대의 유언을 담아야 한다.
더 미룰 수 없는 시대의 종말은 와야 하고, 그것이 TV를 통해, 물방울을 통해, 상상들을 통해 기어코 오기를, 나는 간절히 바란다.
아이들이 엉망인 시대를 다시 배우는 일 없이 사랑을 꿈꿀 수 있기를.
그 사랑은 아이들을 새로운 시절로 보내주기를.
그 시절엔 이미 눈을 감았을 우리들도 언젠가 사랑이 되기를.
나는 간절히 바란다.
네모들아, 제발 같이 바라자. 나는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