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오르는 여인

턱 괴는 여자 30.

by 구일삼

시대의 종말이라는 , 네모만 바뀐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닐 거다. 그건 진짜 세상이 바뀌어야 하는 문제니까. 그렇다면 진짜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 내가 있는 일이 뭘까? TV 나오는 것들을 직접 주무를 수는 없는 내가 세상에서 있는 일이 뭘까? X 같아, 하고 주저앉는 ? 주저앉아서 과거만 들여다보는 ? 사실 지금까지 해온 그게 다이긴 하다.

나한테는 문득 과거의 기억이 밀려오는 순간들이 종종 있다. 지나왔기 때문에 더는 중요하지 않은 줄로만 알았던 것들이, 세수를 하던 아침이나 자려고 이불을 펴던 순간에 불현듯 뇌리를 스치는 식으로. 갑자기 닥쳐오는 과거에 나는 당당히 맞서야 하고 있는 힘껏 부끄러워져야 한다. 이불킥을 말하는 아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체면이 깎이거나 민망해진 일을 회상하는 아니다.


얼마 전에 내가 초등학교 6학년에서 중학교 1학년으로 넘어가던 겨울에 서예에 빠져 있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학교 미술시간에 서예를 배웠는데 그때 문방구에서 서예 세트를 주구장창 가지고 놀았더랬다. 나는 난방이 돌아 따뜻한 바닥에다 검은 천을 깔아놓고 종이를 올려 길쭉한 문진으로 고정한 다음, 벼루에다 찬찬히 먹을 갈곤 했다. 그리곤 한자로 이름을 번이나 쓰기도 했고 엉성하게나마 난과 나비 같은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삐죽빼죽한 선들이 별로 없다 싶은 작품들은 문에다가 붙여놓기도 했고. 귀했던 종이들을 언제 버렸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고, 시간을 길게 이어갔던 이유조차 정확히는 모르겠다. 고요한 분위기를 좋아했던 건지, 붓으로 뭔가를 쓰고 그린다는 생경해서 그랬던 건지, 대충 짐작만 뿐이다.

나는 조용한 취미에 대한 기록이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는 것에 대해, 다들 지루해하기 바빴던 수업 내용을 여전히 붙들고 있다는 민망해서 누구로부터든 숨겼을 거라는 짐작을 다시 해본다.

그러다 주위의 누군가도 나처럼 서예를 재밌어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렇게 우리가 같은 시간에 각자의 방에서 담담하게 먹을 갈았을 순간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내가 단소 불기 싫다고 아무렇게나 떠든 바람에 다른 누군가는 마음을 고이 접어두었을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 누군가 역시 한참의 시간이 흐른 다음에야 단소를 좋아했었다는 사실이 문득 떠올라 없는 기분이 되어버렸을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도 본다. 그런 생각들이 문득 따라오면 나는 지난날이 부끄럽다가, 애틋하다가,

그냥 이불을 뒤집어쓰고 만다.


누군가가 붓을 잡고는 이걸 하는 거냐고 고함치는 와중에 나는 싱겁게 '', '', '' 쓰고만 있었을 거다. 그리고 내가 단소를 들고는 이게 인생에 필요하냐고 투덜대던 와중에 누군가는 아늑하게 퍼지는 소리들에 집중하고 있었을 거다. 그러다가, 혼자서 차곡차곡 지켜오던 취미를 마음이 닳을 때까지 해보는 아니라 들리던 말들이 신경 쓰여 마음을 막아보려 했을 거다. 내가 앞의 종이들을 떼어내고 서예세트를 버렸던 것처럼, 누군가도 단소를 서랍 속에 처박아 뒀다가 언젠가는 버렸을 거다.

사실 서예를 좋아하고 단소를 좋아하는 친구들은 많았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누구든 그걸 좋아할 리가 없다는 막연한 믿음이 서예를 좋아하고 단소를 좋아하는 애를 이상한 사람으로 만들었고, 애들로 하여금 사실을 숨기게 만들었다. 역시도 단소를 좋아했을지도 모른다. 큰소리로 투덜댔던 치고 풍성한 소리를 곧잘 냈으니까. 어쩌면 내가 서예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서 단소를 싫어하는 것처럼 소리쳐 주위 시선을 거기로 돌렸을지도 모른다. 이유가 어찌 됐든, 서예를 좋아하는 사람은 이상하다 말했던 어느 발화자들과 단소를 좋아하는 사람을 이상하다 여겼던 나는, 아무리 서예와 단소쯤의 이야기라도, 분명 어느 누군가들을 입막음시켰다. 좋아하는 것들을 포기하게 만들었다. 어떤 어린 영혼들을, 좋아하는 것을 숨기고 그것이 한 번도 일어난 없는 일인 양 굴게 만들었다. 그건 잘못이다.


이리 많은 글자들을 쓰게 만든 질문도 마찬가지다. 그건 잘못이다.

여자로 사는 그렇게 다르고 힘드나?

말은 내가 페미니스트라는 알면서도 뱉어졌다. 말은 내가 살아온 인생과 페미니즘이 존재하는 이유 자체를 한 번에 뭉개버렸다. 모든 고통이

너에게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나의 삶과 투쟁은 아무것도 아니게 되어버렸다. 말은 여자들이 여자라는 이유로 겪는 무수한 지옥이 실존하지 않는 것마냥, 그래서 페미니즘을 외쳐대는 여자들은 없는 일을 지어내 떠드는 것마냥 만들어버렸다.


그래, 옛날이야기들이야. 그래도 되는 알았고 그래야 하는 알았던 시간들. 옛날. 이제 다른 옛날을 만들자. 문득 돌아보는 것들이 전혀 부끄럽지 않은, 그런 옛날을 만들자. 내가 있는 일이 뭘까? 도대체 내가 세상에서 있는 일이 뭘까?

과거를 내다보자.

뒤를 돌아 과거를 마주안고 속을 찬찬히 들여다본 다음, 어떤 방식으로든 타인을 해치는 말을 뱉은 시간선이 발견되면 우리는 거기서 잠시 멈춰 서자. 그리고 있는 힘을 다해 부끄러워했다가, 다시는 후퇴하지 않기 위해 마음을 가다듬자.

''으로 나아가기 위해 '' 향하자.










요즘은 코로나 사태가 과거가 되었을 시점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된다. 비상사태가 여자들에게 특히 좋지 않았다는 알고 있다.

코로나 19 창궐 이후 2020 상반기 자살 사망자 가운데 여성의 잠정치가 1924명이라고 한다. 통상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던 남성 자살률과 여성 자살률이 처음으로 각각 감소하고 증가하는 반대의 움직임을 보이기도 했다. 원인으로는 크게, 여성의 '취약한 경제 고리' '돌봄 부담의 가중' 꼽힌다. 그러니까 코로나 19 사실 젠더 불평등의 가장 논리들에 대한 힌트를 제공하고 있던 셈이었다.

하지만

죽음으로 설득해야 합니까?

지금이 성평등이 이상 지연되어서는 된다는 최종의 경고로 남을지 아니면 새롭지만은 않은 폐허의 전조가 되고 말지는 시기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똑바로 목격하느냐가 결정할 것이다. 그렇다면 세상은 과연, 지금을 '제대로' 통과할 있을까.

나는 자꾸 불길한 예감이 든다.

지금 바이러스가 문제지 여자들 힘든 문제냐?

이렇게 대꾸할 누군가들이 분명 있을 것이라는,

나라 전체가 위기인 상황에서 여성 인권 타령하는 질리지도 않느냐?

이런 말들은 공감을 얻고 것이라는,

불평등은 사실 번도 사라진 없다는 진실은 또다시 사라지고

지금이 그예 드러낸 것들은 사장되고 것이라는, 그런 예감.

여자들 힘든 문제가 아닌 적이 없다고 대들고 싶고, 오래된 타령을 세상이 완전히 받아들인 적이 있냐고 화내고 싶고, 무엇이 미뤄지거나 숨겨지게 될지 나는 벌써 막막하다고 울고 싶은데. 등한시된 문제들의 굵고 단단한 뿌리가 드러나는데도 이것의 해결이 우선순위가 되지 못할 거라는 예감, 살아온 역사가 그렇기 때문이라는 아주 직감, 무엇이 얼마나 지연될지 가늠하지 못하는 시간들. 그건 전부 안에 살아있지.

나는 오래된 직감과 오래된 우울이 민망해질 만한 반전이 있기를 원한다. 아주아주 훗날, 불평등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의 우리 후손들이, 인류가 당시의 최종 힌트들을 캐치해 냈다는 평가를 하기를 원한다.

하지만 정말

죽음으로 설득해야 합니까?

만약

죽음으로마저

설득되지 않는다면

정말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나는 홀로 적던 서예 종이들을 전부 구기고 찢어내 조각을 내야 하는 겁니까. 단소를 부러뜨려 짓뭉갠 다음 쓰레기통에 처박아 넣어야 하는 겁니까.

나는 .

모른 , 아닌 , 나는 .

이불을 뒤집어써야 하는 겁니까.


그러나 이것은 조용한 취미가 아닌 걸요. 속은 언젠가부터 시끄럽게 불타고만 있는걸요. 이불은 타서 반은 재로 변했어요. 불이 나를 죽일까요, 살릴까요. 기어코 목을 조르고 숨통을 막을까요.

, 비가 내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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