턱 괴는 여자 31.
주룩주룩. 비가 내린다. 말들이 내린다. 어떨 땐 목소리들이 정수리나 어깨 따위에 묻은 다음 그대로 흘러내린다.
요즘은 그 목소리가 다시 내린다. 고3 때 살이 찌면서 들었던
몸이 너무 크다, 너,
그거. 그런데 좀 더 생각을 해 보니까 내 몸에 씌워진 말들은 그게 처음이 아닌 거다. 시간이 내가 열한 살 때로 돌아간다.
어느 날 샤워를 하려고 옷을 벗고는 거울 앞에 멀뚱히 서 있기만 했던 적이 있다. 아무 생각 없이 멀뚱히 서 있기만 했던 건 아니고 내 배 모양을 한참 보고 있던 거였다.
튀어나왔나? 앞으로 좀 볼록 나온 거 같은데⋯ 왜 이러지. 설마 살찐 건가. 안되는데. 아니겠지⋯.
나는 일부러 배를 내밀고 있으니 튀어나와 보이는 거라고 이상한 합리화를 마치고 나서야 욕실로 들어갔다. 그때 나는 배가 튀어나온 게 맞았고, 살이 붙은 게 맞았고, 그걸 애써 부정하고 싶었다. 그리고 열한 살이었다. 말이 되는가?
열한 살이었다.
꼴랑 열한 살짜리가 몸매 걱정을 했었다. 사실 난 그때 이후로 쭉 아랫배가 튀어나와 있는, 소위 말하는 똥배 체형으로 살아왔다. 유독 하체가 길고 상체가 짧은 몸이라서 지방이 쌓이면 다 아랫배로 갔다. 사람들은 잘 모른다. 겉으로 보기에 배를 제외한 다른 곳은 다 마른 모습이라서, 배 쪽을 유심히 보지 않는 이상 아무도 내가 이런 몸을 가지고 있다는 걸 모른다. 샤워 전 거울 앞에서 매번 좌절하곤 한다는 것도 마찬가지로 아무도 모른다.
중학교 때는 교정을 시작하면서 이가 불편해 간식도 잘 안 먹게 되고 식사 양도 줄게 돼서 얼굴살이 죽죽 빠졌고 다리는 더 말라갔다. 똥배는 볼록 튀어나와 있었지만 옷을 입으면 크게 티가 나지 않았고, 그래서 그 당시의 나는 마르고 날씬하다는 말을 밥 대신 먹고살았다. 딴 건 몰라고 다리는 진짜 예쁘다는 말, 원래도 날씬했는데 교정해서 못 먹으니 더 말라 보인다는 말, 일단 몸매는 되니 나중에 얼굴만 고치면 되겠다는 말. 그 말들을 칭찬으로 먹고살았다. 일단 하나는 건졌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얼굴은 몰라도 몸이라도 예쁘게 태어났으니 정말 다행이다!
그런 끔찍한 생각으로 하하호호 행복해했다. 하지만 아랫배는 계속 신경이 쓰였고, 나는 수학여행 사진들을 예쁘게 남기겠다는 명목으로 칠판에다가 다이어트를 선언하는 글을 적으며 내가 매점으로 향하는 걸 목격하면 말려달라는 말을 하고 다니는 애가 됐다.
그리고 써두었듯 고3이 되고 나서 급격하게 체중이 늘었다. 허리가 늘 아팠고 다리는 매일 부어있었다. 하지만 또 써두었듯, 입시만이 최우선인 시기였기 때문에 나는 내 몸에는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살이 찌기 전보다도 더 무심한 상태였다. 그러다 이내 살이 찐 내 몸이 웃음거리가 됐고 그렇게 마음이 문드러졌던 거다. 그제서야 내 몸의 변화를 확인한 나는 너무 놀라고 당황스러웠다. 전에는 살이 붙어도 다리는 여전히 마른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다리에까지 살이 붙다니, 그걸 확인하는 순간
이제 난 끝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얼굴은 못생겨도 다리는 예쁘다는 농담을 나를 설명하는 말로 믿고 산 게 불과 몇 년 전이었던 나에게는 허벅지끼리 딱 붙어서 인사하는 광경이 너무 충격적으로 느껴졌다. 샤워는 괴로워졌고 팔뚝에도 살이 붙어 교복을 입는 일이 부끄러워졌다. 마이는 꽉 끼여서 아예 입을 수 없었고 나는 와이셔츠에 우람한 팔뚝이 그대로 드러나는 걸 보이고 싶지 않아서 품이 큰 후드 집업을 찾아 무작정 가리기 급급해했다. 그리고 수능이 끝나고 다이어트를 했다. 급격히 불어난 체중이 빠지며 허리의 통증이 자연스레 나았지만 나는 그것보다
허벅지 사이가 나빠졌다
는 하나도 재밌지 않은 우스갯소리가 다시 내 몸을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에 더 기뻐했다. 끔찍하게도.
난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내 몸의 일부를 언젠가 사라질 것으로 미루면서 살고 있었다. 팔뚝과 배를 뚝 떼어내고 싶다는 상상을 하고 지금 당장 거울로 마주하고 있는 내 몸을 부정하면서. '여기가 쏙 들어가면', '여기만 좀 없으면', 그런 생각들로 부분들을 잘라낸, 실재한 적 없는 몸이 내 것이어야 한다고 믿고 있었고 그렇게 난 내 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던 거다. 그러니까 '몸'을 내 것이라는 감각 대신, 보정 어플로 슉슉 손대면 그만인 이미지로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내 몸이 진짜 어플에서처럼 슉슉 바뀌지 않으니 실망하게 되고 화가 나게 되고 저주하게 된 거다. 내 몸을 내 것으로 대한 적이 없는데도 이게 내 몸이라는 결과를 거울로 목격하게 되는 그런 굴레. 나는 이게 무척 기괴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한동안 놓지를 못했다. 세상에 못생긴 여자는 없고 게으른 여자만 있는 거라던 그 말은 나를 오래 괴롭혔다.
몸에 진득히도 남아 닦이지 않는 빗물이 되었다. 몸에 붙은 물 자국은 수건에 닦여 나오지도 않았다. 옷을 입어 가릴 수만 있었다.
내가 내 몸뚱이만 혐오하고 있던 건 아니다. 거울에서 더 자주 보이는 목 위로는 미워할 구석이 더 많았다. 나는 내 까무잡잡한 피부를 아주 심하게 미워했다.
내 피부의 색이 남들보다 짙다는 자각이 생긴 건 중학생 때였다. 친구들이 나한테 너는 왜 선크림이나 미백크림을 바르지 않는 거냐고 물어온 게 그때였으니까. 그전에는 내 피부가 어떻고 말고에 대한 생각이 아예 없었다. 초등학생 때 남자애들이 나를 놀린답시고 '아프리카 아줌마'라며 아주 여러 가지로 문제가 많은 명칭으로 부를 때도 주먹으로 응징하거나 꺼지라고 대답하는 게 다였는데 한창 사춘기라 그랬던가, 그 순간에는 내 피부가 부끄러워지는 거다. 나는 피부가 까무잡잡한데도 하얗게 만들려는 생각을 하지 않는 이상한 애가 됐고, 스스로도 그냥 그렇게 믿어버렸다. 유독 피부가 하얀 친구와 나를 끝없이 비교하고 결론적으로는 내가 그 애보다 나을 게 하나 없는 사람인 걸로 끝을 맺었다. 돌이켜보면 그 모든 것들이 분명 상처였다. 하지만 내가 갖고 있는 무언가가, 바꿀 수도 없는 무언가가 다른 이에 의해 잘못이라 지적되는 경우에 대한 내 대처법은, 그게 정말로 내 잘못인 양 만들어 (비)웃음을 만들어내는 정도밖에 안 됐다. 내 기지가 그 정도밖에 안 됐나 보다, 지금에 와서는 딱 그 정도의 감상으로 넘길 수도 있었겠지만 그 시절 나에게는 너무 확실하게 괴로웠던 장면이 있다.
중학교 3학년 때. 당시 나는 지적당한 부분을 '고치기' 위해서 선크림이랑 미백크림을 사 모으곤 했다. 그리고 어느 날은 수업시간이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어수선한 분위기를 틈타서 가방에서 선크림을 꺼내 손등에다 바르고 있었다. 그런데 옆에 있던 애들이 그걸 보고 술렁이기 시작했다.
쟤 봐봐. 선크림 손에도 바른다, 뭔 핸드크림 바르듯이, 아이고, 많이도 바르네.
그 소리들은 중얼거리듯 흘러나오고 있었지만 내 귀에 정확히 꽂혔다. 아, 손에 바르는 건 안 되는 거였나. 이젠 또 이게 문제구나. 그런 생각이 들자마자 눈가가 시뻘겋게 달아오르고 있는 게 느껴졌고 곧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갑자기 고개를 푹 숙이고 울고 있는 나를 본 선생님이 주변 애들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고, 나를 보고 킥킥댔던 애들이 상황을 설명했다. 나는 못 참고 교실 밖으로 뛰쳐나갔다. 화장실 칸 안에서 그냥 엉엉 울고 있었는데 잠시 뒤 그 애들이 따라 들어와 문을 두드렸다. 선생님이 사과하라고 보낸 모양새. 그 셋 중 두 사람이 사과를 해왔고 남은 하나와는 영영 인연을 끊었다.
수업이 다 끝난 뒤엔 선생님이 나를 따로 불러 길고 긴 얘기들을 해주었다. 그중 ‘말도 안 되는 지적들을 사람 좋은 웃음으로 넘기려고 하다가 체한 거’라는 말은 구원이 되었다. 너 그렇게까지 까만 거 아니라는 옛날식 위로법이 아니라서 난 그 우울을 빨리 헤쳐 나올 수 있었다. 그러면 가끔 내리는 다른 비가 만든 물 웅덩이 안에서 나는 영원히 헤엄쳤다.
그래. 확실히 말들은 위험하다.
왜 나는 '그래도 다리는 예쁘다'는 말에 뿌듯한 기분이 되어야 했던 걸까. 왜 다리에 살이 찌자 모든 게 끝났다고 느껴야 했던 걸까. 왜 나는 눈 크고 하얀 여자애가 아니라서 괴롭다고 느껴야 했던 걸까. 왜 그토록 중요한 시기의 그토록 많은 대화들이 단지 '예뻐지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공유하는 것으로만 채워져야 했던 걸까. 왜 세상은 예쁜 여자와 못생긴 여자를 이다지도 꾸준히 구분하고 지목하고 양산하는 걸까. 여자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가 뭐가 그렇게 중요할까. 모든 답은, 내 몸과 피부가 ‘이 꼴’인 이유를 뒤적이고 원망하게 만든 세상. 나는 예쁘다는 말이 필요해서 고단했던 게 아니다. 내 외관에 대한 아무런 평가가 내려지지 않기를 바랐던 거다. 그냥 제발 내가 어떻게 생겨먹었든 다 신경 껐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던 거다.
그리고 확실히 어떤 말들은 꼭 필요하다.
나와 내 피부를 구원했던 그 선생님의 별 거 아니라는 듯 툭 던진 말투까지도 나는 여태 간직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별 거 아니라는 듯 툭 던져진 다른 어떤 말들 역시, 나는 아직 품고 있다. 누군가는 그냥 갖다 버리라는 말을 할지도 모르겠지만, 어떤 상처는 흉터로 남아 옅어지지도 않는다. 늘 갈리고 찢겨서 방금 다친 것마냥 생생하다. 그건 그냥 빗줄기였는데도.
자, 다시. 비가 내려요. 아주 센 빗방울들이. 결국 비가 이길까? 반전이 만들어져 속에서 나는 내 천불이 이길까? 아니,
결국 둘이 싸우다 나는 다 타버리고 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