턱 괴는 여자 33. 부록
예전에 너한테 말한 적이 있었나? 나 고등학생 때 토론대회 준우승했던 거 말이야.
내가 자랑하려고 이 이야기를 시작하는 게 아니라는 걸 넌 이미 알고 있겠지. 사실 자랑이 맞았대도 너는 그냥 눈을 동그랗게 뜨고 뒤늦은 축하를 전하려 마구 하이톤이 되었을 것 같다. 그러고 보면 너는 늘 그랬어. 내 많은 부분들이 위선이 되어간다고 느껴지고 나중에 가서는 아예 민망해질 때. 너는 남아서 기념 케이크를 사야 된다며 떠들곤 했어. 물론 우리는 항상 라면을 끓여 먹었지만, 나는 통통한 면발을 우적우적 씹으면서도 너의 횡설수설한 일장연설을 소화시키느라 눈물이 나는 걸 참아야 했어.
아무튼 토론대회 말이야. 결승행이 확정되던 순간에 나 정말 기뻤다? 나는 그 대회에 내 최선을 걸어보려고 했었어. 한 달 동안 모은 자료들을 적재적소에 잘 쓰기 위해 특별한 분류법을 고안하는 것만 일주일이 걸렸을 정도였지. 기쁜 마음을 잠시 감추고 담담한 척 상대팀과 인사를 나눴다가 강의실을 나오자마자 춤을 췄어. 교실로 올라가 반 친구들에게 결과를 알리고 짐을 챙긴 다음 기숙사로 넘어가는 다리를 건너는 내내, 나는 표정과 다리를 모두 씰룩이며 걸었지. 근데 뒤에서 누가 부르더라고. 돌아보니 준결승 경기의 심사위원이었던 남자 교사야. 난 그 사람이랑 한 번도 말을 섞어본 적이 없었어. 뭐 때문에 불렀나, 궁금해하기도 전에 그 사람이 먼저 움직였어. 그 사람은 내 쪽으로 몇 발자국 걷더니 딱 한마디만 하고 등을 돌려 사라졌어.
"너 목소리가 너무 커."
그때 내 기분이 어땠는지 잘 모르겠어. 혹시 너는 알까?
결승 주제는 준결승까지의 주제와 달랐어. '낙태죄 폐지 찬반'이었지. 나는 찬반을 정하는 제비뽑기에서 '반대'가 적힌 종이를 뽑은 내 손이 아직도 그렇게 아쉬워. 낙태죄 폐지를 주장하는 논리들이 이겼다는 것은 기뻤지만 그날 마이크를 잡고 그 말들을 뱉은 게 나였으면 어땠을까, 가끔 미련한 상상을 하지. 그럼 나는 준결승 경기가 있던 강의실에서보다 더 큰 목소리를 낼 수 있었는데. 그 사람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말할 수 있었는데. 당신의 말이 아무 소용없다는 걸 보여줄 수 있었는데. 자꾸 아쉬워. 웃기지. 나는 그날 내 마음이 아닌 말들을 설득시켜야 한다는 게 이상했어. 내가 늘 반박하던 얘기들을 나의 진지한 논리로 펼쳐야 한다는 게 이상했어. 배우들은 늘 이런 기분인가? 그렇다면 많이 힘들겠구나. 어쨌든 그 일을 지나온 후에, 나는 문득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 그 사람처럼, 그렇게 살기는 싫다고.
졸업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친한 후배와 밥을 먹은 적이 있어. 그 후배는 체육대회의 유구한 전통이었던 '여장 대회'가 폐지되었다는 소식을 전해주었어. 나는 그걸 3년 내내 재밌어했던 내가 섬뜩하게 느껴지는 동시에, 그걸 영원히 사라지게 만든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큰 위안을 받았지. 그래도 나는 이제 지나고 나서야 알기는 싫었어. 국어 시간에 '여성적 어조'와 '남성적 어조'를 구분 지어 필기하던 걸 늘 못마땅해했으면서 결국은 그대로 시험 답안을 써 내려갔다는 것도 싫었고, 그걸 싫어하면서도 여장 대회는 아무런 생각 없이 받아들이고 있었다는 것도 싫었지.
그런데 돌아보니 얼굴이 뜨거워지는 일들이 더 많은 거야. 정말이지, 너무 많은 거야.
예를 들면, 동남아 사람이라면서 딱딱한 발음으로 영어 지문을 읽는 걸로 남들을 웃기려고 했던 거. 내가 떨군 말들. 수많은 말들이 땅에 박혀 시간을 먹고 자란 다음 덩굴이 되어 나를 아주 세게 옥죄어 오는 느낌이었어. 왜, 흑역사는 밤마다 이불을 뻥뻥 차게 만든다고 하잖아. 근데 이건 이불 차는 수준으로 해결되는 게 아니었어. 가슴이 너무 답답하고 숨이 잘 안 쉬어졌어. 그런데도 나는 자꾸 이불로 몸을 싸맸어. 머리끝까지 이불을 올리고 잔뜩 웅크리게 됐어.
그러니까, 계속 화만 쌓이던 때였지. 부끄럽기만 하고. 그게 너무 싫었어. 잔뜩 긴장한 채 살자는 결심을 하게 만드는, 곳곳으로 썩어있는 세상이 싫었어. 그리고 내가 그것과 다를 바 없는 사람이라고 느껴질 때마다 괴로움이 내 손가락과 폐 따위에 스며들었어. 그렇게 화만 내다가, 속이 곧 망가지고 있었어. 내가 그 끔찍한 것들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니. 나는 오래 앓았지.
내 마음이 어느 정도로 연약했냐면, 길을 걷다가 쓰레기 더미 주위에서 부리를 쪼아대고 있는 까치를 보고 울어버린 적도 있어. 우리 사이엔 아주 예전부터 까치를 발견한 날에는 행운이 찾아온다는 규칙이 있었잖아. 그래서 나는 그 언젠가부터 까치를 볼 때면 잠시 눈을 감고 속으로 소원을 빌고는 했었거든. 나중에 그 소원이 이루어졌는지를 딱딱 따져가며 계산해 본 적은 없지만 그래도 그 순간만큼은 충만한 기분이 될 수 있었지. 그런데 그날은 봉지가 터져 나와 떨어진 쓰레기들을 먹고 있는 까치를 본 거였어. 내 소원이 처음부터 망가져있다는 게 서러웠는지, 먹을 걸 찾아 시내의 쓰레기 더미까지 와버린 까치가 안쓰러워 그랬는지, 나는 내가 우는 이유도 정확히 알 수가 없었어. 그런데 살아보니 알게 된 희한한 법칙에 따르면, 이런 경우에는 대개 둘 다 이유더라고. 나도 망가져있고, 언젠가 쓰레기를 삼킨 저 까치도 망가져있을 것이고, 그렇게 세상이 온통 엉망 이더라. 나는 울면서 쓰레기더미 쪽으로 걸어갔어. 가서 떨어진 것들을 주워 담아 대충이라도 구멍을 메꿔보려고 했어. 그러느라 까치는 자리를 뜬 지 오래였고 내 손은 아주 더러워졌지. 나는 그게 어떤 은유 같다고 느꼈어. 무엇에 대한 것인지 잘은 모르겠지만.
변신을 하려면 마법 주문이 있어야 하잖아. 나는 변신을 먼저 해버려서 그런지, 주문을 찾느라 허둥대는 시간이 좀 길어졌어. 맨 처음에 꺼내든 건 리베카 솔닛이 말한 'We're winning'이었고, 그다음은 정세랑 작가의 문장들이었지.
"폭력의 손잡이를 쥔 그들보다, 우리가 정교하다. 우리가 미래에 가깝다. 우리가 옳다" (정세랑 외, <나다운 페미니즘>, 46쪽)
"아무리 젊어도 그다음 세대는 옵니다. 어차피 우리는 다 징검다리일 뿐이에요. 그러니 까 하는 데까 지만 하면 돼요. 후회 없이." (정세랑, <피프티 피플>, 381쪽)
그런데 버틸만하면 바람이 뒤로 불더라고. 그것도 아주 세게. 그러면 나는 이 불편한 시간들 속에서도 내가 바람에 몸을 맡긴 채로 뒤로 밀려나지 않는다면, 그것도 앞을 향하는 하나의 걸음일 수 있다고, 그런 식으로 나 스스로를 위로하려 들었지. 오래된 주문을 꺼내고, 새로운 주문을 찾아 나서고, 쓰고, 되뇌고, 눈을 감고, 숨을 내쉬고. 그렇게 매일을 버텼어.
그때는 너한테 하나도 웃기지 않은 농담들을 참 많이 했던 것 같아. 오늘 물고기자리 금전운 1위였네. 근데 나 오늘 집에서 잠만 잤는데. 그러면 이 운은 다 어디로 가지? 내게 주어진 몫을 내가 놓쳐버린 것이니 투덜댈 수도 없는 건가. 행운이 모아두었다가 쓸 수 있는 아이템 같은 거면 좋겠다. 정해진 하루만 결정하는 게. 아니라 언제라도 다시 꺼내서 필요한 때를 붙잡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웃음소리는 어떻게 결정되는 걸까? 태어나기 전에 머무는 세상이 따로 있고, 거기에서 채널 돌리듯 1번부터 쫘악 훑고 난 다음 고를 수 있게 하는 거면 재밌겠다. 내 생각에 나는 239번쯤 되는 웃음소리를 골랐던 것 같아. 소리를 지르듯이 시작했다가 나중엔 거의 숨이 넘어갈 듯 웃어젖히는 건 왠지 꽤 흔한 소리 같아. 너는 301만 5892번째 채널에 대고 리모컨의 멈춤 버튼을 누르지 않았을까? 저승사자는 인생에서 제일 사랑했던 사람의 얼굴을 하고 찾아온대. 그럼 슬퍼질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 죽음이 오고 나서야 아, 내가 이 사람을 사랑했던 거구나, 깨닫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 저승사자의 얼굴이 그런 식인 이유는 망자가 빨리 저승길을 따라가게끔 만들기 위해서라는데, 어떤 사람들은 허망한 얼굴로 한참을 멍하니 서있기만 하지 않을까? 사람은 죽을 때도 30초가량은 청각세포가 살아있어서 우리는 떠나보내는 사람한테 따뜻한 작별 인사를 해야 한대. 그러니까, 죽기 전에 귓속에 남은 마지막 말은 얼마간은 영원히 살아있는 거지. 그럼 너는 무슨 말을 듣고 싶을 것 같아? 무슨 말을 들어야 따뜻하게 떠날 수 있을 것 같아? 벌써 작별을 생각하는 건 좀 그런가? 아무래도 좀 그렇지. 있잖아. 이미 알고 있는 걸 모른 체 말하는 것과 모르는 걸 아는 척 떠드는 것 중 뭐가 더 어려울까? 아니, 사실 둘 다 쉬울까? 있잖아. 도저히 잠에 들 수가 없어서 새벽을 맞이한 적이 있니. 과제도 다 끝내고 정해놓은 범위의 공부도 다 했는데, 마음이 편하지 않아서 침대 위로 온통 생각들이 너저분하게 쌓인 적 있니. 밝아오는 하늘을 보면서, 그 어스름을 보면서, 내가 미리 아침에 가 있는 이 시간만은 투명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니.
너는 내 어깨를 주물러 주거나 머리를 쓰다듬어주거나 휴지를 건네주거나 아니면 급하게 네 상상을 지어내며 건네주느라 늘 바빴지. 어지럽게 이런저런 말들을 늘어놓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딱 하나였어. 너도 알고 있었지?
내가 슬플 때마다 조용히 분주해지는 너. 너는 내게 딱 맞는 따뜻함이야.
예전에 너한테 말한 적이 있었나? 어느 날 집에서 밀린 과제나 하고 있었는데 밖에서 계속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던 소리가 났다고. 땅에서부터 올라오는 목소리가 무척 우렁차서, 애초부터 어설프게 쥐고 있던 집중력은 금방 흩트려졌어. 창문을 열어 저 밑의 놀이터 쪽에 귀를 갖다 대니까 이름이 훨씬 선명하게 들리더라.
"박준우!" "박! 준! 우!" "박준! 우~"
초등학교 3학년쯤 되어 보이는 애들 서넛이서 그 한 명의 이름을 계속 불러대고 있었어. 그 애들의 시선이 향하는 쪽을 따라가 보니 박준우는 바로 앞 동에, 우리 집보다는 2층 정도 더 위에 살고 있더라고. 한 1분쯤 이름이 불렸나? 나는 시끄럽다는 생각도 안 들고 그냥 창문 너머만 빤히 보게 됐어. 곧 박준우가 베란다 문을 열고 창문의 안전바 사이로 1층의 애들과 눈을 맞추는 게 보였지. 아파트 15층가량의 높이를 극복하고도 그 애들은 대화를 하더라고. 자세히 듣진 않았지만 대충 캐치볼 하러 내려오지 않는 박준우가 오늘 같이 못 노는 이유를 설명하는 중인 것 같았어. 나는 그 번거롭고 오밀조밀한 대화가, 심지어 선명하지도 않은 그 대화가 무딘 채로 예뻤지.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너를 만나 같이 밥을 먹었는데 그날 우리는 우리가 함께 다닌 초등학교 교문 앞까지 걸었어. 코로나 방역 수칙 때문에 그 안은 들어가지 못했고, 대신 매일 가던 문방구에서 손바닥만한 사이즈의 '괴담 모음집' 책자를 하나씩 샀어. 그리고 카페로 가서 그걸 내내 읽었는데, 옛날에는 '내가 아직도 네 엄마로 보이니' 따위의 글을 진심으로 무서워했다는 게 어이가 없어서 계속 키득거렸어. 그때는 그런 것들이 무서웠는데 말이야. 지금 그게 아무렇지 않게 된 것은 다른 두려움이 더 커져서일까? 나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게 이유인 것 같아.
그날 너에게 말하지는 않았는데, 나는 그때 우리가 카페에 도착하기 전에 만난 꼬마를 한참 떠올렸어. 여덟 살 즈음되어 보이던 그 애는 교문 앞에 멀뚱히 서 있다가 어른 행색을 한 우리가 지나가니 냅다 고개를 숙였었지. '안녕하세요' 존댓말로 인사를 해왔어. 그래서 우리는 걸어가던 와중에 잠시 멈칫 서서는 똑같이 고개를 꾸벅 숙였었는데.
언젠가의 우리도 꼭 그 애 같았을까? 이름도 모르는 사람이 단지 어른이라는 이유로 인사를 건넨 적이 있었을까? 그럼 어른들은 그 맑음을 덜컥 받아놓고도 아무렇지 않았을까? 괴담 모음집보다 더 무서운 일들을 아직도 세상에서 영영 지워내지 않은 것에 대해서 조금의 미안함도 없었을까? 나는 그 무하함이 무척 겸언쩍었거든.
그래, 나는 그런 생각을 했어. 아가야, 네가 더 커서 나누게 될 말들은 훨씬 예쁜 색이었으면 해. 그리고 알았어. 내가 원하는 건 이 시절들이 따뜻했으면 하는 거라고. 멋대로 행운을 상상해서 미안하지만, 지금까지 까치들을 보고도 바빠 지나쳐 빌지 않은 소원들을 이 순간에 끌어다 쓸 수 있다면, 나는 그 하나를 바랄 거라고.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불편함이었어. 그리고 따뜻함이었지.
따뜻한 사람이고 싶은 마음으로도 세상은 움직일 수 있는 거였어. 언젠가 식어빠질 미적지근한 온도가 아니라 오래도록 뜨끈한 그런 마음 말이야. 이다음에 올 사람들과 그 땅의 시절들을 위해서, 지금의 불편함에 맞설 용기를 만들어내는 그런 마음 말이야. 그러니까 따뜻한 사람은, 늘 뜨겁지 않아도, 언제든지 가슴을 뜨겁게 달굴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인 거야. 겁내지 않고 가슴 뜨겁게 달려들 줄 아는 사람인 거야.
만약 내게 화만 계속됐다면 내 마음은 불같이 타오르기만 반복하다 결국엔 지금쯤 재만 남아 있었겠지. 그런데 너는 매일을 화내는 데에만 쓰지 말라는 말을 한 번도 나에게 또박또박 전한 적이 없어. 그 말이 그때의 나에게는 어떤 식으로든 칼이 되어 이미 타고 있는 마음을 찌르기까지 했을 거라는 걸 너는 이미 알았기 때문일 거야. 대신 너는 나에게 화만 남은 게 아니라는 걸, 네가 내 곁에 남아있음으로 알려주었어. 그러니까 나한테 화만 남은 게 아니라서, 따뜻한 네가 계속 곁에 남아있어 주어서, 너의 검정과 빨강이 뒤섞인 못생긴 우산이 여전해서, 나는 마음을 편히 먹을 수 있었어. 그렇게 나는 내내 따뜻하다가, 필요한 순간에 끌어다모은 불같은 화를 냈다가, 다시 또 따뜻하다가. 그런 마음이 될 수 있었어. 이제는 뒤로 부는 바람에 대고 ‘그래도 세상은 변하지롱’하고 대꾸한 다음 앞으로 걸어갈 수 있게 되었어.
그래. 좋은 시절은 올 거야. 따뜻하고 뜨거운 마음들이 모여서, 우리를 감히 심판하고 함부로 갈라놓는 선들을 지워낼 거야. 파도가 모래를 씻어내듯이 말이야. 미움이 안개처럼 자욱해도, 이기는 건. 사랑이잖아. 있지, 이게 내 새 주문이야. 눈 감고 숨 내쉴 필요도 없이 나는 이제 사랑이야.
길고 긴 편지지만,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딱 하나야. 너도 알고 있지? 그래도 말할게. 선명하게 전할게. 사랑해.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