썩어가는 외로움

드라마 <선덕여왕> 리뷰 5편 : 13부, 14부

by 구일삼

김서현을 죽이려 한 보종의 성급한 실수가 수습된 후, 미실이 그에게 이렇게 말한다.

“내가 만약 모든 정적들을 죽여서 해결했다면 설원공도 이 자리에 없습니다.”

그렇다. 애초에 설원 역시 진흥의 사람이었다. 진흥은 죽는 마지막까지도 그가 자신의 사람인 줄로 믿고 있었으나 이미 설원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미실에게 건 다음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미실에게 사랑은 아니었다. 강한 자를 자기의 것으로 수집했을 뿐. 이는 설원도 정확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김서현을 탐내는 미실을 두고 보종이 김서현은 진평과 천명의 사람인데 설마 그러겠느냐는 말로 달래니, 설원은 살아 돌아오는 자를 취하는 것이 미실임을, 천운을 따르는 자를 모으는 것이 미실임을 말한다. 강한 자만을 손에 넣는 미실의 곁에 머물 수 있는 방법은 강한 자가 되는 것밖에는 없으므로, 설원은 오랜 시간 발버둥을 쳐 온 셈이다.


2편에서 미실의 세력을 설명할 때, 나는 설원과 아들 보종이 미실의 왼팔, 세종과 아들 하종이 미실의 오른팔이라는 설명을 했었다. 이제 이 설명만으로는 부족해지는 지점이 드러난 것이다.

설원과 세종의 기싸움은 극 초반부터 차곡차곡 쌓여왔다. 만노군의 난도를 진압할 중앙군의 수장으로 미실이 하종을 지목하자 설원이 떨떠름해하는 장면, 미실이 그런 식으로 하종을 챙기자 문노를 죽이러 간 우리 아들 보종은 걱정이 안 되냐고 설원이 애처롭게 묻는 장면, 전쟁 때 하종이 위기에 처하자 부여장이 직접 이끄는 백제군이라면 하종만으로는 무리이고 설원이 직접 나서야 한다고 아뢰는 미실을 보고 세종이 당황하는 한편으로 설원은 그 신뢰에 들뜬 눈빛이 되는 장면, 설원의 반간계 전략을 미실이 어린 시절 함께 전장을 누빈 사이답게 바로 알아채며 즐거워하자 세종이 괜히 맥을 끊으려 드는 장면 등…. 드라마는 설원과 세종의 경쟁 구도를 공을 들여 묘사해 온 것이다.

그러나 설원은 세종과 애초에 경쟁조차 할 수가 없다. 세종은 진골이라는 골품으로 미실의 뒷배가 되어주고 그를 ‘부인’이라 부르지만, 설원은 미천한 신분으로 미실이 뒷배가 되어주는 관계로 그를 ‘새주’라고 지칭한다. 세종은 궁에 남아 이것저것을 지시하는 상대등이지만 설원은 목숨을 알아서 챙겨야 하는 무인이다. 설원이 “살아야 한다. 살아 돌아가야 한다. 그래야 미실 곁에 남을 수 있다”라고 아들에게 말하는 장면이 있기도 하다. 그러니 미실의 군왕으로는 처음부터 세종이 유리한 형세였던 것이다. 이 진실은 세종이 김서현을 탐내는 미실을 보고 아들 하종에게 하는 노골적인 대사로 가감 없이 드러난다.

“너희 어머니는… 더 키우실 생각일 게다.”

“키우는 다른 개들이 불안해할 만큼은 키우지 않을까? 원래 개란 것이 너무 배고파도 너무 배 불러도 개 역할을 못하는 법이거든.”

세종은 ‘키우는 개들’에 자신은 절대 속할 리 없다는 것이 전제되어 있는 평온한 얼굴로 여유롭게, 자신의 반대편에 앉은 설원이 사실은 그럴 수가 없다는 것을 관전하는 것이다. 설원은 김서현과 충성 경쟁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그 치욕을 참을 수 없었고, 그 불안이 보종에게 옮겨가게 만들었다. 김서현을 죽여 일을 그르칠 뻔한 보종을 다그치며 설원은 미실에 사죄하는데, 미실은 별 반응을 하지 않고 곧 지루하다는 듯한 표정을 만들어낸다. 그리고는 동생인 미생의 아들 ‘대남보’를 은밀히 불러 호위를 그에게 맡기고는 보종을 뛰어넘으라 명한다. 설원에게 벌을 주는 것일 수도 있겠고, 커져가는 그의 욕심을 누르려는 수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때, ‘사다함의 매화’가 외국 상단을 통해 들어온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사다함의 매화’는 미실이 상천관 서리와 미생에게만 비밀스럽게 맡겨 온 어떤 일의 은유이다. 소식과 함께 미실이 크게 기뻐하는 모습이 보이고, 세종과 설원이 동시에 초조해하기 시작한다. 그들 모두 이 일의 정체조차 알 수 없어 상황에서 아예 배제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각각 하종과 보종을 보내 도대체 그 일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아오라 시킨다. 또한 천명 역시 본격적으로 유신과 덕만을 자신의 양 날개로 삼아 미실에 대적할 준비를 하면서, 대등 ‘을제’와 함께 이 ‘사다함의 매화’를 조사한다. 을제는 진흥과 진평을 보필하며 황실의 충직한 신하로 남아있는 자이다.

그가 전하길, 사다함은 “미실의 첫 번째 연모” 상대이다. 사다함은 전쟁에서 돌아오면 혼인을 하기로 미실과 약조했었지만, 전쟁에서 돌아온 그가 보게 된 것은 세종과 혼인한 미실이었다. 사다함은 자결하였고, 다음과 같은 유서를 남겼다.


IMG_2360.PNG 사다함이 화랑으로서의 자신의 상징인 매화와 함께 미실에 남긴 유품


‘청조의 선택이 그러하다면, 청조의 꿈이 그와 같다면, 청조의 꿈에 더 이상 내가 필요 없다면. 장래엔 단지 이것이 필요할 것이오. 나 때문에 부질없이 눈물짓지 말고, 나 때문에 마음 아파 여의지 마시오. 사다함은 청조와 함께 행복한 꿈에 살았소.’

더욱 위를 향해 황후가 되고 싶다는 꿈을 꾼 미실을, 사다함은 진작 알았던 것이다. 그리고 세종과 혼인한 것 역시 그 꿈을 이루기 위한 단계 중 하나라는 사실을 그는 받아들였고, 자신의 존재 자체가 방해가 될 것임을 알았기에 죽음이라는 종류의 퇴장까지도 선택하였다. 자신이 아니라 단지 ‘이것’이 필요할 것이라며 사다함이 전한 물건이 바로 ‘사다함의 매화’인데, 이는 다름 아닌 ‘책력’이다. 가야 정벌 후 진흥까지 속이면서 미실에게 빼돌린 사다함의 마지막 선물.

책력을 만들고 하늘을 읽는 것은 본래 가야인들의 전유물인 것으로 묘사된다. 별과 관련된 진흥의 계시를 받았던 ‘문노’도 가야 출신이고, 미실이 책력을 주어 계산을 맡기는 이 역시 ‘월천대사’라는 가야 출신 인물이다. 가야를 멸망시킨 후 신라 황실은 그 힘까지 손에 넣었어야 맞으나 사다함이 이것을 미실에게 바친 것이다. 이제 책력은 황실의 이름으로도 감히 구하기가 어려운 것이 되었으며, 진평이 사신단에게 그것을 요구했다가 뻘쭘한 응대를 받는 장면이 나오기도 한다. 반면 미실은 사다함이 준 이 책력을 시작으로 하늘을 계산할 수 있었고, 백성들에게 비를 내려주는 ‘천신황녀’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입지를 키워오는 데 이용할 수 있었다.


미실이 가장 처음 가진 ‘사람’인 사다함이 지금의 미실이 있는 데에 큰 공헌을 한 셈이며, 이 ‘사랑’을 기억하기 때문에 미실은 모든 것을 건다는 설원의 말 역시 같잖을 수가 있는 것이다.

“다른 사내들은 모두 제게 무언가를 얻고자 했지요. 제게 준 만큼 받아가길 원했어요. 허나 그분은, 사다함 공만은, 제게 온전히 주기만 한 분이었습니다.”

지금의 세종과 설원을 보자. 혼인 약속을 지키지 ‘않은’ 미실을 여전히 사랑한 사다함과는 달리, 혼인을 하고 아이도 낳은 다음에까지도 이들은 세력을 더 나눠달라 떼를 쓰는 꼴이다. 미실의 야욕이 어디까지인지 몰라서 허둥대고, 그런 처지에 그것까지도 견제하고자 아들들을 보내 뒤를 밟으라 시키고 있다. 사다함은 권력을 향한 욕망이 미실에게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을 먼저 알고 사랑을 바친 사람이다. 그런 사랑을 받았는데, 미실에게 그다음 연정이 가당키나 할까? 나는 사다함이 죽은 날, 사랑, 연모, 그런 것들 역시 미실의 마음에서 함께 죽은 것이라 생각한다. 을제가 사다함을 미실의 첫 연모라 소개했으나 나는 그것이 미실의 마지막 연모이기도 했다고 본다.


아들들을 시켜 미실과 사다함의 매화의 뒤를 밟는 꼬리가 길어진다. 곧 하종과 보종이 미실에게 발각되기에 이른다.

“이 깊은 밤에 참으로 정겹습니다. 두 아드님께서 숨바꼭질을 하고 계십니까?”

하종과 보종이 바로 무릎을 꿇어 사죄하는데, 미실은 돌아가 있으라는 말만 할 뿐이다. 잠시 후, 아예 집무실에 세종과 하종, 설원과 보종이 모두 모여 미실에게 문책받는 장면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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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다함의 매화는 미생공의 일입니다. 그것을 아시려면 서로의 일을 다 알려야 하는 것 아닙니까. 세종공께서 화백 회의를 장악하고 통솔하시기 위해 대등들을 상대로 어떤 일을 벌이고 계시는지 모두가 다 알아야 합니까. 또 설원공께서 그 미천한 신분에도 불구하고 병부령에 대장군이 되기 위해 검보 2년 정월에 무슨 일을 하셨는지 다 얘기할까요. 오직 미실만이 모든 걸 알고 있습니다. 오직 이 미실만이 모든 걸 알고 있어야 하는 겁니다. 여기 계신 분들이 그걸 모두 알고자 한다면 바로 이 미실이 되겠다는 것 아닙니까. 천하에 미실이 둘일 수 없으니, 미실이 되고 싶다면 이 미실을 베면 될 것 아닙니까.”

화가 난 미실에 하종과 보종은 두려워하며 또다시 무릎을 꿇고, 세종과 설원 역시 고개 숙여 용서를 빈다.

그런데 곧바로 나오는 장면들이 굉장히 흥미롭다. 미실이 모두 앞에서 모두를 꾸짖어놓고, 세종과 설원을 따로 만나 달래는 것이다.


세종의 품에 안긴 채, 미실은 투정 부리듯 그를 달랜다.

“공께선 어찌하여 저를 이리도 외롭게 하신단 말입니까. 공을 탓하는 것이 아닙니다. 공을 비난하는 것이 아닙니다. 공은 제게 산 같은 분이십니다. 늘 지켜주셔야 합니다. 제가 활개 칠 수 있는 모든 것은 모두 낭군께서 제 버팀목이 돼 주시기 때문입니다. 모르십니까. 제가 얼마나 의지를 하는 지를.”

이 ‘투정’으로 미실은 그를 달래는 데 성공한다. 원론적으로 세종은 미실이 사다함을 버리면서까지 택한 사람이다. 그의 가문과 권력이 말 그대로 미실이 놀 수 있는 물의 규모를 키워놓은 것들이기 때문이다. 특히 미실은 세종을 상대등의 자리에까지 올려두었고, 상대등은 후계자가 없는 왕의 다음이 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위치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언뜻 미실에게 세종이 쩔쩔매는 듯 보이지만 사실 미실이 가장 애써야 하는 사람이 세종인 것이다. 세종의 자존심은 살살 다뤄야 하는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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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미실이 남자가 아니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이다. 미실의 세력은, 권력을 전유한 남성들의 카르텔에 여성이 군림하고 있는 독특한 구조를 하고 있다. 그런데 미실이 그 위치까지 가기 위해서, 그러니까 권력을 취하기 위해서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슬프지만 하나였다. 누군가의 여자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그가 권력을 취하면 취할수록, 높이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미실의 사람들은 주군에게 충성을 다하는 수족이 되는 것이 아니라 미실이 ‘내 여자’여야 한다는 생각에 불만을 축적하게 된다. 세종과 설원의 ‘불안’ 역시 이러한 불만과 같은 결일 것이다. 만약 미실이 누군가의 여자가 되는 것을 경유하지 않고 쉽게 군주가 될 수 있었다면, 다시 말해, 애초에 자신의 꿈을 정확히 정의할 수 있는 시대에 살았다면, 미실은 권좌에 올랐을 것이고 그 자리에 기어오르려는 겁 없는 움직임은 없었을 것이다. 미실은 세종을 상대등으로 만들어둘 정도의 영향력을 가졌으나, 상대등이라는 명분을 직접 가질 수는 없어서 세종의 불안과 불만을 가라앉히는 데 공을 들여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확실히 어떤 종류의 '투쟁'이다. 용으로 태어났지만 다만 시대를 잘못 고른 불운한 사람. 미실 앞에 덕만이 대적하겠다며 나설 때가 오면, 어쩌면 그때 미실은 덜 외로울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러나 아직은 미실의 외로움이 계속해서 썩어가는 중이다.






누군가의 여자가 되는 방식으로 권력을 쌓을 수밖에 없던 미실은 자신의 세력 내부의 모순이 몸집을 키우지 않게 다스려야 할 뿐만 아니라 그를 보는 외부의 시선과도 싸워야 한다.

전쟁 중에 천명이 황실의 이름으로 만명과 김서현의 신분 복권에 힘을 써둔 것을 기억할 것이다. 이에 대해 만명과 김서현이 직접 새주인 미실에게 칙서를 받으러 오는 장면이 있다. 미실은 자신이 그들을 탐낸다는 것을 숨기지 않는다.

“그런데 왜 폐하의 곁에 계시려는 겁니까? 폐하는 태자가 아니 계십니다. 하여 서현공이 원하는 걸 가진 사람은 이 미실이 아닙니까?”

“가면을 벗으세요. 서현공은 저만큼이나 욕망이 크시질 않습니까. 설마 만명공주와 벌인 야합을 단지 연모 때문이었다 하실 요량이십니까?”

“서현공은 가문과 본인의 명운을 걸고 도박을 하셨습니다. 대단하세요.”

미실은 그가 김서현이 탐이 나는 이유까지 친절히 읊어준 셈이다. ‘출신’에 대한 열등감,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명을 바꾸기 위해 과감한 결정을 내리는 배포 같은 것들은 그 자신과 닮아있고, 미실은 이것을 정확히 꿰뚫어 본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만명에게는 모욕으로 들렸을 터, 그가 미실에게 이렇게 대응한다.

“내 신분이 복귀된 이상, 미실 궁주는 선대왕들의 인첩이었을 뿐이고 난 황실의 공주요. 내게 예를 다해주길 바라오.”

이때 미실의 표정은 그냥 우습다는 반응이다. 황실의 사람들이 미실에게서 자존심을 세울 수 있는 유일한 것은 황실 혈통이라는 사실밖에 없으니 말이다. 그러나 두 사람이 떠난 자리에서 미실은 이내 이런 얼굴이 되어버린다. 아주 슬퍼 보이는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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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식으로 자신이 ‘인첩’이라는 것을 확인받을 때마다 그는 어떻게 마음을 갈무리해온 것일까. 뛰어난 화랑이었고 원화의 자리에까지 올랐던 미실인데, 화랑도가 남성의 영역으로 고정되며 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 달리 없었다. 관직을 얻을 수도 없었고 공주로 태어난 것도 아니다. 특히 만명은 같은 여자이기 때문에 ‘인첩’이라는 말이 얼마나 모욕적인 지 더 잘 알았을 것이다. 이 미운 대사는 역설적으로, 미실이 고된 세월을 뚫고 온 쓸쓸한 인물임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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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미실은 ‘미실’이다. 외로움이 그를 좀먹게 두었다는 안쓰러운 시선을 직접 마다할 인물이다. 사다함이 떠났어도, 그 자리에 사다함의 매화가 남았다. 미실은 손에 넣은 책력으로 다시 한번 하늘을 계산하고 원하는 바를 쟁취해 낼 것이다.

다시 말해, 미실은 세상을 한번 더 겁에 질리게 할 참이다. <6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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